현충원의 정원수들은 오늘도 말없이 이곳에 잠든 영령들을 지키고 있는데
동기생 묘소앞에서
6.25에 참전 했다가 다른 장소에서 전사한 후 동생은 먼저 와 이곳에서 형을 기다리다가 전사자유해발굴의 결과로 형제가 65년만에 만나서 동생과 같이 이곳에 잠들다
사연이 적힌 비석( 내가 현충원 참배한 날자가 2015년 6월3일인데 이 비석에는 2015년6월4일로 되어 있어 사진을 올리면서 이상하게 생각 했는데 6월4일에 육군 참모총장 참석 하에 안장식 이 있었다는기사를 보고 이유를 알고 )
나란히 서있는 묘석 형은 하사 동생은 이등중사 이곳 전입도 동생이 빠르다
동생 집에 형이 늦게 합류한 듯 앞에 보이는 묘석이 동생 묘석
천안 함 46용사의 묘역인데 구별이 쉽게 스테인레스 울타리가 별도로 새워져 있었다
현충일을 맞이하여 미리 서울과 대전 현충원을 다녀왔는데 두곳 모두 행사 준비로 한창 단장 중이다
갈 때마다 이 곳에 잠들고 있는 영령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 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올 때 마다 늘어 나는 비석들 그래서 서울이 만원이라 대전으로 분산 했디고 하는데도 대전도 어느 덧 포화상태인 것 같다
현충원에 갈 때마다 말 없이 누워있는 영령들을 보면서 잠시 나마 이 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이 있음을 생각 하는데 특이 한 건 이젠 역전의 용사들이 노환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사망자들로 현충원이 만원이 되는 것 같다
묘역을 지나 느라면 수없이 많은 낯 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연이 있던 분들 중 근황이 궁금하던 분들의 이름을 발견 하곤 다시 한 번 인생의 무상 함을 느낀다
참배를 하다 보면 전사나 순직이 아닌 사망의 경우 장군이 죽으면 서거, 장교 이하가 죽으면 사망이라고 묘비에 기록하고는 장군은 넓은 곳에 매장 ,장교이하는 화장해서 손바닥만 한 곳에 묻고 거기다가 장교 묘비는 크고 병사묘비는 작고 모양도 다르다
수년전 현충원에 이 점에 대하여본인이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는데 살아서는 비록 계급이 있어 차별을 받었지만 죽어서까지도 차별을 받어야 하는지 그리고 솔직히 고생은 아랫 사람들이 더 많이 했는데 이 곳에 와서 까지 차별을 받는 건 너무하다고 한 적이 있다
어제는 참배 도중 많은 묘비 가운데 새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형제의 묘소를 보았는데 알고보니 6.25에 참전 했다가 전사한 어느 형제의 묘소인데 더욱 기가 막힌 건 형이 유해발굴로 먼저 이곳에 와 잠들고 있던 동생을 65년만에 해후 이곳에 같이 잠 들게 된 것 같다 그 동안 시신도 못 찾은 그 분들의 부모님의 심정을 해아리니 눈물이 난다
대전 현충원 한 모퉁이에 별도로 함께 모여 잠들어 있는 천안 함 48용사들의 묘역 앞엔 여러사람들이 추모의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