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환 저서 새롭게 고쳐쓴 하멜표류기
거기서 하멜은 강하나를 건너서 일본으로 탈출했다고 나온다.그 하멜이 탈추한 낭가사께이 흔히 일본어로 나가사키라 불리는 이지역은 양자강 하류의 진강현 동쪽의 狼山鎭랑산진 이다.
이 나가사키라는 말에서 처럼 이 일본어 지명은 그 발음 그대로 지금 현재 일본어의 발음이 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랑상진을 일본인들은 낭가사께이 즉 이때 일본 왜구들의 발음에서 ㄹ 을 ㄴ 으로 발음하는 두음법칙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이 우리가 쓰는 두음법칙은 이렇게 일본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을려고 했던 조선어를 이렇게 두음법칙이란것을 만들어서 대륙조선어를 쓰는 한국인들을 일본어식 어법으로 강요한 흔적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우리가 쓰는 두음법칙은 대륙조선을 잊게 만들기 위해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강요한 얼토당토치 않은 언어 도둑질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자.
과연 제주도에서 일본렬도로 그 넓은 해역을 겨우 뗏목같은 내지 작은 배로 횡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거의 자살행위인것이다.
하멜이 아무리 향수병이 심했어도 자기 목숨을 걸정도로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이등항해사였다.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그 누구도보다 잘 아는 선원이었다.
그가 탈출한 일본은 양자강을 건너서 일본 무역 항이 있는 곳으로 탈출한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본은 지금의 일본렬도가 아니다.그리고 당시까지 일본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륙의 동부지역이 일본 해가 뜨는 동쪽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적이 있는데 이것 마저도 후에 손문은 력사에서 지워버린다.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일본은 동시에 일본렬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동부 지역 사람들이 류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렬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렬도 자체가 류구국의 령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일본제국은 류구를 합병한 것이다.이때 당시 류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할때 먼저 류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당시까지만해도 류구국은 독립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일본제국을 지금의 남경에서 이룩했을때 가장먼저 한일이 류구국 침공이었다.그 점령은 곧 일본렬도로의 진공을 의미하는 것이다.류구제도를 리용해 일본렬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렬도에 본격적으로 진출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렬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탐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일본제국군과 아직 활쏘고 칼휘드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렬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일본제국군은 일본렬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들 일본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일본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당시 산동성의 일본세력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산동성의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일본의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일본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령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그래서 임진왜란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 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리운 지역이 이 남경이었으며 일본어에서 강을 에라고 발음하는데 고또 강도를 고또라고 발음하고
강호 동경 강도 다 같음 금릉이었던 남경을 말하고 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때 이때 일본렬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 막부의 에도는 오도 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 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도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일본은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력사상의 일본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을 한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인것이다.
강호를 떠돌고 헀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사실 미야모토 무사시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협지에 나오는 그 강호의 무사들은 사실 일본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렬도로 옮견 일본제국주의 세력들은 일본렬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라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렬풍에 편승한 성풍조였고 이 일본의 성풍조는 후에 일본렬도로 옮겨져 력사가 된것이다.
당시 대륙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일본 사무라이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일본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자신들의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 변발비슷하게 앞머리를 깍아낸것이다.
이것도 대륙의 풍속을 받아들여서 생긴 생활풍속이다.
아니 아예 일본이 대륙에 있었기에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일본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를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깍아버리는 것은 조선북쪽 올랑해들의 풍속이었으니 이 것만 봐도 일본은 대륙에 있었던 대륙국가였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짤라 버린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렬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때 이미 상투를 제거하였다.
메이지정권은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 들어서고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체 일본렬도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친일아니 전에는 일본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일본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 대만은 세계최고의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일본땅이었고 류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쫒겨오기 전까지 아예 일본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것이며 대만은 일본이었다.아예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리등휘총통이 퇴임후 야수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대만은 일본이었으며 한때는 류구왕국이었고 아예 일본이었기에 신사참배도 했던 것이다.
말만 중국 국민당땅이라고 그러지 사실 일본땅이었고 대륙일본의 일부였다.
대만이 그래서 일본과 합작하고 일본에 충성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반한감정을 가지고 있는것이다.그 반한감정은 곧 일본과의 공조이며 일본에 충성하는 대만독립세력 내지 반 대륙정서를 가진 대륙일본의 후손인 대만인들이 일본을 견제하고 쫒아가고 몇년지나면 일본을 앞지른다고 예상되는 한국을 그렇게 까고 있는것이다.
첫댓글 조선에 역사와 왜놈의 역사가 대륙이동한 사실이군요 하나는 반도땅으로 열도로 흩어진 역사조각 마춤이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에 왜곡된 역사까지 바로 잡아야 우리에 역사가 보여지니 ,,,,,,
아...의문이 조금풀렸습니다. 산동반도는 이후 독일이 점령하고 청도맥주가 인기있는이유죠!!
덕천가강....덕수이씨!! 같은 글자입니다.내천자나,물수자나....!
덕수이씨(전주이씨계열)집안에서는 조선은 물론 일본도 다스렸다는 가문의 업이 전해진답니다.
덕천가강이 이순신이었을수도 있다라는 의문이 일고있습니다.
왜 일제는 특히 이순신을 띠웠을가요?라는 의문....자신들의군대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도륙했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