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楓嶽號로 楓嶽山을 가다
2000.9.11(월) 맑음
<웬 개목걸이?>
추석 전날인 9월11일 오후, 생전 처음으로 가보게 되는 북녘 땅의 여행길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다대포 국제여객 부두에 집사람과 도착했다. 서둘러 점심 요기는 하고 나왔지만 뭔가 허전하여 다른 사람들도 먹고 있는 길거리 컵라면을 하나 씩 사먹고 승선 절차를 밟았다.
북한의 장전항에 내리고 탈 때는 물론이고 배 안에서도 늘 개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녀야 된다는 사진 붙은 패찰(승하선신분증)을 받아 목에 걸고 말만 듣던 풍악(楓嶽)호에 승선하려 건물을 나오니 건물 출구에서 승무원(필리핀인?)이 사진부터 찍어 준다. 웬 사진인지 나중에 알고 보니 승선자 모두를 찍어서 다음날 배의 로비에 진열해 놓고 원하는 사람에게 팔고 있었다.<사진: 풍악호>
<주니어 스위트>
배의 입구에서는 낮선 남녀 외국인 승무원들이 도열하여 맞이해 주고 있었다. 객실까지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가니 아니! 호텔이 따로 없군. 나중에 해산하러 내려오면 신세지겠다는 속셈이긴 하지만, 서울의 둘째 딸 내외가 먼저 휴가 차 다녀 올 때 작은 객실에서 불편하였다고 좋은 객실(주니어 스위트)을 잡아 준 덕분에 편한 여행이 되겠다. 트윈 침대에 TV에 응접 셋트에 냉장고에 과일 바구니까지.
선내를 두루 한바퀴 둘러보며 석양에 떠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다대포항, 송도, 영도 등을 뒤로하고 배는 동쪽으로만 계속 달렸다. 일단은 공해상으로 나간 후 북쪽으로 간다고.
<비상훈련과 조편성>
선내 방송으로 모두 강당(쇼공연장)으로 모이라고 하여 가보니 비상시 대처요령과 풍악호의 홍보 비디오 등을 보여주었다.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타본 배들보다 훨씬 규모와 시설이 좋은 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승선시 적어낸 코스별로 조를 구성하였다.
코스는 상팔담(구룡폭포), 만물상, 해금강의 세 코스가 있는데 이틀 동안 그중 두 곳을 선택하여 보게된다고. 우리는 상팔담과 만물상 코스를 택하였다. 각 코스별로 30명 내외의 승객이 타는 버스 10대 가량이 배정되어 각 버스마다 현대해상의 안내원(조장)이 동승하게된다고. <사진: 풍악호에서 보는 추석날(2000.9.12) 아침 장전항 앞바다의 일출>
<사연도 가지가지>
어두워 질 무렵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한식 뷔페로 포식하며 옆자리의 사람들과 얘기해보니 부산사람들은 300여명의 승객 중에 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사연도 가지 가지. 경인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동해항까지의 불편한 교통편이 원인인 사람도 있고 금강호와 봉래호는 표를 예약할 수 없어서 부산까지 왔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충청도, 전라도, 경북 등지에서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같은 규모의 선실인데도 내고 온 요금도 관광회사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쌍불알을 아시나요>
저녁 후 캄캄한 바다 멀리 보이는 아련한 육지의 불빛과 오징어 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을 관망하다가 쇼 관람을 했다. 이런저런 너스레 끝에 북한말 공부를 한다고?
먼저 전구를 북한에서 뭐라 하는지 아느냐고. 불이 켜지는 유리알이니 불알이라 한다고.
그 다음이 가관.
형광등은 긴불알, 두줄 형광등은 쌍불알, 두줄 형광등에서 하나가 없는 것은 짝(외)불알, 가로등의 아래위로 길게 설치된 형광등은 선불알 등등... 그러면 상데리아는 뭐라는지? '때불알(때낀불알)'이아닌 '떼'불알!이라고.
<큰일납니다.>
일출을 보고자 카메라와 켐코더를 메고 갑판으로 나가니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번했다. 서둘러 카메라에 몇 장 담고 켐코드로 일출을 촬영 중 뒤에서 '큰일납니다'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승무원이 모두 선실로 들어가라고. 이곳은 장전항에 가까운 북한 영해이니 모든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그러고 보니 북한 땅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사진: 금강산 원경>
<배에서 지내는 추석 차례>
객실내의 욕실에서 더운물로 기분 내어 샤워를 하고 식당의 창 너머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하니 감개가 무량하군. 고맙게도 차례 상을 차려 놓았으니 원하는 사람은 차례를 지내라는 방송. 구경 삼아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있군. 북한의 바다에서 북한 땅을 보고 지내는 추석 차례라.
<벌금 무는 여권 없는 외국인(?)>
승무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내려선 북한 땅!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부두 시설을 지나 셔틀버스로 500m거리의 출국 심사장으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정복 입은 북한 사람. 고성능을 제외한 카메라와 켐코더는 통과. 우리조의 진주에서 온 60대의 안과의사 부부 중 부인이 심사에 통과 못했다고 남편이 걱정하며 심사장으로 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와 10달라를 준비하여 다시 갔다가 부인과 돌아와 하는 말. "달라가 좋긴 좋군"
사연인즉 아들의 유학과 관련하여 부인의 국적이 미국으로 되어 있는 게 밝혀져 여권 미소지로 벌금을 물고 통과하였다고. (원래 내국인은 여권 없이 승하선신분증, 개목골이 만으로 출입국가능)<사진: 금강산 원경을 배경으로>
<철조망 속으로 달리는 버스>
한 조 20여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와 앞뒤로 북한의 안내 및 감시인을 태운 버스 등 20여대의 버스 행렬이 길 양쪽에 2m 정도 높이의 철조망이 쳐진 새로이 포장된 도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이사이 일정한 간격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으며 철조망 너머로는 추석음식을 머리에 이고 산으로 성묘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금지! 금지! 금지!>
버스 속에서 조장인 안내자의 안내 말이 계속되었다.
이동 중 촬영은 일체 금지며 내려서도 북한사람과 건물의 촬영도 안되며 위반 시에는 촬영기기를 압수 당한다고. 그러나 관광객과 경치는 촬영 가능하다고. 산에 오르는 도중도중 배치된 북한 안내인(감시자)에게 말도 촬영도 불가라. 휴지도 못 버리며 침도 못 뱉으며 담배도 못 피운다고. 그러면 어디서? 차가 대기하고 있는 휴게소와 도중에 두어 곳 있는 휴게소에만 가능하다고. <사진: 목련다리와 목련관>
<금강산의 네 가지 이름>
너무 금지사항만 강조하여 조장도 미안한지 금강산의 네 가지 이름을 설명해 주었다.
봄에는 경치 아름답기로 금강석과 같다하여 금강산(金剛山)이라 하고,
여름에는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사는 곳에 견주어 봉래산(蓬萊山)이라 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하여 풍악산(楓嶽山)이라 하며,
겨울에는 눈 덮인 산세가 동물의 갈비뼈와 같다하여 개골산(皆骨山)이라 한다고.
<구룡연, 상팔담 가는 길>
온정리 휴게소(현대에서 관광객을 위해 신축한 휴게실, 식당, 매점 등이 있는 곳, 조금 떨어진 곳에 북한의 금강산 호텔이 보임)를 잠시 둘러 본 뒤 신계사 터를 버스 속에서 바라보며 십 여분을 달려가니 상팔담 가는 길목에 주차 및 휴식공간이 나왔다.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 앞에서 조별로 조장의 설명을 듣고 출발.
<사진: 양지교>
-소요시간(버스,도보)과 거리(분/km)-
장전항-온정리(15/7)-신계사터(10/5)-주차장(5/3)-목란다리,목란관(15/0.4)-앙지교,앙지대(30/0.8)-삼록수(30/0.9)-금강문(10/0.4)-옥류담(20/0.6)-연주담(10/0.2)-비봉폭포(7/0.1)-구룡폭포(30/0.9)-상팔담(30/0.7)
<켐코더 수난>
체력이 부족한 노약자는 구룡폭포까지가 권장 코스라지만 여기까지 와서 조금이라도 더 볼 욕심에 상팔담까지 가기로 하고 가는 곳마다 카메라와 켐코더로 부지런히 찍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조장이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선생님 저기 북한 안내자(감시원)가 켐코더 가지고 오란다고. 내용인즉 자기들을 찍어서는 안되는데 켐코더를 자기들 쪽으로 향해 촬영했다고. 나는 그 쪽에 그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켐코더를 돌렸는데. 아무튼 카메라가 아니기 천만 다행. 켐코드는 되감아 내용 확인이 가능하니까. 그래도 나는 초조했다. 온정리 휴게소에서 찍어서는 안된다는 북한의 건물(금강산 호텔)을 찍었기 때문에. 다행히 그곳까지는 되감아 보지는 않은 듯. 조금 전에 촬영한 부분만 지우고 찍기로 하고 돌려 받았다.
<카메라를 압수 당한 관광객>
떨리는 가슴으로 계속 오르고 있는데 이번에는 먼저 출발한 조의 관광객이 카메라를 압수 당해 감시원에게 돌려달라고 통사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조의 조장도 가세하여 사정을 하고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올라가 상팔담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구룡폭포(상팔담 가는 길에서 갈라져 있음)까지 보았다. 내려오는 길목에는 아직도 카메라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사진: 상팔담 가는 길의 출렁다리>
<온정리 온정각휴게소>
주차장에 내려오니 벌써 오후 두시가 지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열대가 넘는 차들과 이차들의 운전기사, 북한측에서 나온 감시원들과 관광객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도 북한측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옆에서 귀동냥을 하니 제법 여러 가지 내용의 대화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조금은 지나친 것 같은 질문을 해도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지고 응대해 주는 게 예전보다는 많이 달라진 모습 같았다. 감시원들도 모두 하산하니 이들을 태운 호송차들을 앞뒤로 세우고 온정리 휴게소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식사를 서둘렀다.
이곳에는 두 곳의 식당과 기념품 가게, 옥내 휴게실, 야외 휴게소, 기념사진 촬영장, 교예 공연장 등 현대적인 시설이 마치 우리나라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달라라는 것말고는. 이곳의 시설들은 모두 현대에서 건설하였고 버스의 운전기사들을 포함한 근무자들은 대부분이 조선족들을 현대에서 고용하였다고. 팔고 있는 물품은 모두가 북한산이고 잘 팔리는 품목은 들쭉술과 송화가루라고.
※ 온정각 휴게소
온정각 휴게소는 온정리 마을의 개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 온정각 휴게소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공연을 볼 수 있는 금강산 문화회관을 비롯해서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북측의 상품들을살 수 있는 상점으로 이루어져있다.<사진: 온정각휴게소 내부>
<온정리 현대금강산온천>
설렁탕으로 점심을 끝낸 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버스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의 온정리 온천으로 출발했다. 지나는 길목에는 북한의 금강산호텔과 금강산온천이란 간판이 붙은 초라해 보이는 건물도 보였고 군인들과 민간인도 가끔 보였다.
현대에서 시설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금강산 온천에 들었다. 실제 온천이 나오는 곳은 여기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고 그곳에서 파이프라인을 매설하여 이곳까지 끌어 온 것이라고.
널따란 욕조에서 외금강의 원경을 조망할 수 있게 시설한 통 유리 위로는 보는 방향에 따른 설명문을 곁 드린 사진이 있어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안쪽 문으로 나가면 옥외 온천탕. 기분 좋게 하고 나온 온천욕이었지만 달라로 지불한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기분이 들었다.<사진: 온정리 현대금강산온천>
※ 온정리 현대금강산온천 ( 이용금액 : 12$ )
현대가 금강산 관광 1주년 기념을 맞추어 99년 11월 19일날 개장한온천장이다. 동시에 천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온천장이다. 라돈성분에 방서능 성분 함유로 피부미용과 피부질환에 좋다고 한다.
온천장은 1.8㎞ 떨어진 온정리 온천 지하 203m에서 쏟아져 나오는 섭씨40도의 온천수를 1일 680t씩 공급받아 사용한다.
* 유래 : 금강산 온천이 위치한 온정리(溫井里)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痲衣太子)가 이곳에서 온천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조선의 일곱 번째 임금인 세조(世祖)는 피부병에 걸려 고통을 당할 때 이곳의 온천수로 목욕을 하여 효험을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 주요시설 : 남녀 대중탕과 8인실 15인실로 분류한다. 그리고 노천탕있다.
- 옥돌 온탕 : 바닥 전체가 옥돌로 만들어진 온탕
- 게르마늄 온탕 : 바닥 전체가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진 온탕
- 맥반석 한증탕 : 맥반석으로 만들어진 습식 한증탕
- 폭포탕 :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을 수 있도록 만든 탕
- 황토한증탕 : 벽에 황토를 발라 만든 한증탕
<조선족 운전기사>
온천장 앞뜰의 선녀와 나무꾼 모양 앞에서 사진 등을 찍고 남는 시간에 버스 운전기사(조선족)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그의 고향은 연변이며 여기 오기 전에는 리비아의 공사 현장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고.
여기서는 1년 계약으로 일하며 쌍방의 의사에 따라 재계약 한다고. 재계약 전후로 휴가를 가며 숙소는 장전항 내 부두시설의 임시 숙소에서 기거한다고. 급여는 우리 돈으로 몇 십 만원 정도밖엔 안되지만 여기서도 관광객이 돌아갈 무렵 차마다 팁을 거두어 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승무원들이 꾸미는 볼거리>
풍악호가 정박한 장전항 부두로 돌아와 나갈 때와 같은 방법으로 수속을 끝내고 배로 돌아오니 승무원들이 도열하여 승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곧이어 저녁 식사. 이곳의 식당엔 외부 음식물 반입 금지라 술도 주문해 먹어야 된다고. 팩 소주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입장. 물 컵에 얼른 부어 반주로 하니 그 맛이 일품.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쇼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 오늘밤의 쇼는 승무원들이 꾸미는 각 국의 민속공연. 필리핀, 태국, 한국, 러시아 등의 민속 공연과 노래 등. 초대 가수의 노래 솜씨도 선보이고. 밤늦은 시간에 갑판에서 바라보는 장전항은 멀리로 가물거리는 불빛만 아련할 뿐 적막감만 감돌았다.
※ 선상공연
금강산 관광은 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산행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나니다. 부산에서 출항하는 풍악호로 장전항까지 총 17시간의 운행시간이 소요되고 금강호와 봉래호는 13시간이 소요된다. 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므로 선상공연을 적극 이용해보자 나름대로 추억의 시간이 될 것이다. 공연내용이 매일 바뀌므로 매일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2000.9.13(수)흐림, 비
<안개 속의 만물상 가는 길>
자고 나니 흐린 날씨. 지금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아 모두들 선내에서 파는 입는 우의를 사서 배에서 주는 배낭에 넣어 하선. 풍악호 맞은 편에는 동해항에서 어제 밤에 출항한 금강호가 아침에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
금강, 봉래, 풍악호가 번갈아, 아침에 한 대가 도착하면 저녁에 한 대가 출발하는 식으로 되어있어 낮엔 항시 두 배의 관광객이 관광을 하게 된다고 한다. 수속을 마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온정리 휴게소를 지나 만물상 코스로 향했다.버스 속에서 바라보는 만물상 가는 길은 흐린 날씨지만 창 너머로 보이는 하한계(곡)와 관음 연봉의 풍광이 볼만하였다. 교행이 어려운 소나무 숲이 울창한 하한계 계곡길을 따라 한참 달려 하한계 위쪽에 이르자 S자 급커브길이 만장정 주차장까지 계속되었다.
-소요시간(버스,도보)과 거리(분/km)-
장전항-하한계(하한계곡:문주담,곰바위,관음연봉,관음폭포,육화암)-만상정주차장(50/20)-삼선암(10/0.3)-절부암(30/0.9)-망양대(30/1)·천선대(30/0.8)
<안개 속의 만물상>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 위로 높이 올라와서인지 자욱한 안개에 빗방울이 섞여 심상치 않은 날씨가 될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위로는 화장실도 없다하여 서둘러 주차장 간이 화장실을 다녀왔다. 만물상의 입구인 이곳은 계곡과 관음연봉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만상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정자는 없고 빈터만 남아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만물상 구경이 시작된다고. 안개 속에 40여분 걸려서 절부암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오니 드디어 자욱한 안개가 빗방울이 되어 비옷으로 무장을 해야만하였다.<사진: 만물상 천선대 가는 안내지도>
<용감한 마누라>
절부암이 보이는 곳을 지나면 두 갈래 길. 목적지인 천선대로 가는 길과 망양대해가 보인다는 망양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남자들도 거의가 망양대 가기를 꺼리는 으스스한 길을 꼭 가보겠다는 마누라와 이별하고 나는 천선대로 마누라는 망양대로 향했다.
빗줄기가 굵어진 속에 급경사 길을 철제 계단과 씨름하며 겨우 오른 천선대.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군. 빗속에서나마 부지런히 카메라와 켐코더를 돌려댔다. 길목에서 한참동안 마누라를 기다리다 해후. 반쯤 내려온 천선대를 자기도 보고 가야겠다고. 내려오던 길을 기진맥진 다시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오자니 다리가 휘청거리군. 허겁지겁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사진: 금강산 만물상의 천선대 입구 하늘문(이곳을 지나야만 천선대로 갈 수 있음)>
<화장실이 탈의실(?)>
오후 두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온정리 휴게소에서 도착. 젖은 옷 때문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여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겠는데 갈아입을 옷도 마땅치 않고 갈아입을 장소도 문제였다.
격에 맞지 않는 복장이나마 화장실에서 갈아입은 후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마누라와 헤어졌다. 한참 후 만난 마누라, 속옷까지 갈아입었더니 이제는 살 것 같다면서 서둘러 허기를 메웠다.
<개목걸이 분실 소동>
식당을 나와 휴식을 취하던 중 내 개목걸이를 보더니 자기 것이 없다고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게 없으면 오도 가도 못한다고 항상 목에 걸고 다니라고 그만큼 주의를 받았는데. 허겁지겁 여자 화장실로 가봤는데 벌써 없어진 후였다.
속옷까지 갈아입느라 개목걸이도 함께 벗어 잘 보이는데 두긴 했다는데. 평소에도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 도리 없이 우리 차 조장을 찾아 하소연. 그런데 그 친구 정색을 하고 큰일났다는 게 아닌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고. 넋을 놓고 있는데 산행길에서 사진을 찍어 주던 배의 전속 사진사가 그 친구를 찾아오더니 문제의 개목걸이를 내놓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에서 주웠다고. 그땐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남자가 어떻게 여자화장실에서 그걸 주웠는지 지금도 의문.
<평양모란봉교예단>
요기도 하고 분실물도 찾고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에서 달라로 비디오 테입, 관광안내 책자(일어판:우리말판은 없음), 송화가루, 들쭉술 등을 산 후 달라로 표를 사서 공연장에 들어가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교예를 관람했다.
어쩌면 저렇게 기계같이 빈틈없이 할 수 있을까하는 측은한 마음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공연장도 현대에서 얼마 전에 준공한 돔형 건물이었다. 공연이 끝나 출연자가 모두 나와 예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인사를 하자 모두들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후레쉬가 터졌다. 공연 중에는 촬영 불가.<사진 :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공연 후 인사>
※ 평양 모란봉 교예단 ( 관람요금 : 특석30$, 일반석 25$, 좌석매진시 입석 20$ )
평양 모란봉 교예단은 북측에서 평양 교예단과 더불어 북한을 대표하는 쌍두마차격의 교예단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예단 관람은 선택관광이지만 개인적으로 꼭보라고 말하고 싶을정도로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라 통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러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내용 대부분이 공중에서 이루어지고 인체의 유연함을 교예로 형상화 했다.
<러시아 아가씨들의 쇼>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배는 서서히 움직이며 어둠이 긷든 장전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갑판에 나가보니 아침에 와서 정박하고 있는 금강호의 불빛은 휘황찬란한데 멀리 보이는 장전항에는 적막만 감돌고 있었다.
안내방송에 따라 공연장으로 가니 러시아 무희(?)들의 쇼가 시작되고 있었다. 머리에는 색색의 가발을 쓰고 몸매는 시원하게 생겼으나 전문 무희는 아닌 모양. 그저 눈요기 정도로 구색만 갖춘듯.
<태풍은 불어도>
쇼를 구경하고 있는데 제법 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일본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태풍의 영향이라고. 침실에 누워있는데 화장실에서 화장품 병들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갈수록 배의 요동이 심해졌다. 오늘 사온 북한의 들쭉술을 수면제 삼아 잠을 청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든 모양. 깨어 보니 아침.
2000.9.14(목)흐림
<유람선에서의 마지막 식사>
배가 제법 흔들리는 속에 갑판에 나가보니 멀리 육지가 어슴푸레 보였다. 이제 유람선 풍악호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시간. 배의 식사가 내 식성에 맞아 집에서 보다 포식한 셈. 마지막 식사도 후회 없이 하기로 작정하고 이것저것 많이 가져왔더니 과식한 모양.
<아침에 보는 쇼>
매일 저녁 쇼를 한다하여 빼 놓지 않고 다 보았는데 아침에도 또 쇼를 한다고? 이번에 하는 쇼에는 한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방송. 하선하기 전에 모든 객실을 승무원들이 점검, 정리하기 위해서 손님이 방을 비우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배는 아침 10시경에 다대포항에 닿았다. 야한 옷을 입은 러시아 언니들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출구에 도열하여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여 주었다.
|
첫댓글 세월은 흘러도 추억은 아름답다..
그때를 회상하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겠어요..
고문님의 여행일지.. 참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금강산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전 고성에서 육로로 금강산 가는 코스였는데~
그 때 생각이 나는군요.
너무 생생하게 기록해 두셔서 새록 새록 기억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