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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주일설교
본문: 고전 1:22-24
제목: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1.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고전1:22a)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그들이 말한 표적은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증할 이적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요6:30-31)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12:39-41)
예수님은 사복음서를 보면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
예수님의 표적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을려는 표적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행하신 표적들이었다.
그것들만으로도 그분이 그리스도이신 것이 분명하였지만,
유대인들은 귀신의 왕을 힘 입은 것이라 하였고, 호기심으로 또는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믿지도 않으면서 표적을 구하고 좋아한다.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있었던 것은 보여주기 위한 표적이 아니었다.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이었다.
지금 예수님 앞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요나처럼 사흘 동안 땅 속에 곧 지옥에 계실 것이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 사람을 정죄할 거라 하셨다.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왜 이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악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고 불의를 행하기 때문이요,
그들이 음란한 것은 육적으로 음란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표적은 호기심만을 충족할 뿐, 육적인 만족을 충족할 뿐, 믿음을 낳지 못한다.
열 문둥이를 고쳐 주었지만 돌아와서 믿고 감사한 사람은 하나 뿐이었다.
병이 나았다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복이 쏟아졌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 그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는 믿음은 표적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선물로 주셔야 한다. 그래서 믿어지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결단한 믿음들, 따라 말함으로 믿은 믿음들은, 결코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홍해를 건넜지만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멸망하였다.
표적과 이적으로 생긴 믿음은 다 그때 뿐이고 오래 가지 못한다. 역사가 증거한다.
그래서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2.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1:22b)
이방인의 대표격인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였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의 뜻이다.
사람의 지혜로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할려고 하였다.
세상 교육은 다 이 지혜만을 가르친다.
그런데 사람의 지혜는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사는 지혜이다.
자기 소견에는 옳긴 옳은데 제각기 달라서 서로 부딪치고 시기하고 다투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암흑시대로 만들고 말았다.
세상에 교육과 훈련이 그렇게 많은데도 세상은 날로 악해지고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지혜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고, 땅 위의 지혜가 있다.
땅 위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약3:14-15)이라 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고, 그것들이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낳는다.
뛰어나게 많이 배운 자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도둑질하여 심판을 받고 있다.
사람의 지혜는 귀신의 지혜이기 때문에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으로 끝이 난다.
땅 위의 지혜는 사람의 정욕에서 나오고, 귀신이 주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님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1-23)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그 질과 격이 다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7-18)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는 것이다. 거룩하다. 깨끗하다. 정욕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이기 때문이다.
성결이 없다면 그 지혜는 아무리 위선을 부려도 그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이고 자기 의일 뿐이다.
다음에 위로부터 난 지혜에는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이 있다.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편견과 거짓이 없다.
이 성결과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
이 위로부터 난 지혜는 구하면 주시는 지혜인데도 사람들이 구하지를 않는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1:5-6)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지혜를 안 구하기도 하지만,
세상 지혜 사람 지혜로 사는 것이 좋고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결한 지혜로는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없을 것이고, 불법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지혜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죄와 구원도 모르고 참다운 축복과 영광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이 지혜는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이 세상의 지혜,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들을
그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그 귀로 듣지도 못하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의 영, 곧 귀신의 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그 지혜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가 있다.
성경도, 죄도 구원도,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도, 교회도 종말도, 알 수가 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들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은 성령을 받아야 영으로만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것으로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만 영적인 것은 분별하고 알 수가 있다.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란과 암흑과 공허에 빠지게 하는 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 곧 성령의 진리를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고 섞고 혼잡하는 데서 온다.
사사시대, 중세 암흑시대, 종교개혁 이후 5백년 동안 교회들이 이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의 지혜와 말로 가르친 것을 버려야 한다.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전2:13)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전통은 구약 선지자들이 세웠고, 예수님이 오셔서 온전케 하셨다.
사도들이 그 전통을 이어 받아 신약성경을 이루었다.
초대교회와 교부들이 이어 받았지만 중세 카톨릭은 사람의 지혜로 교회를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그것을 바로 잡고, 청교도들이 그 전통을 온전히 종합하였다.
청교도들은 오직 성경과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자신과 교회와 나라를 개혁하였다.
많은 고난과 희생이 따랐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후손을 축복하셨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셨다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성령의 가르치신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요즘 교회 안에 사람의 지혜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지 실상을 알면 기절할 지경이다.
대세와 유행이 사람의 지혜이니 하나님의 지혜는 참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르침과 예배가 아니다.
순전한 말씀과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가르치고 예배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하신다.
땅 위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로 가르치고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경건과 불법을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행17:11)해야 한다.
아울러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해야,
이러한 사람의 지혜, 세상의 지혜들을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목사들은 물론 성도들이 얼마나 될런지요?
한가족교회가 청교도 아카데미를 함께 하는 목적이 이를 깨우쳐주고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교회 홈페이지와 청교도 카페와 블로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손만한 작은 구름”(왕상18:44)이 오는 기운을 맛보고 있다.
주님은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님이 오셔서 지혜를 말씀하셨는데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마12:42).
지금은 성령의 가르치신 것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표적(능력)을 구해도, 유대인은 그 능력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만다.
지혜를 구해도, 헬라인은 그 지혜로 구원받지 못하고 만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면,
표적과 능력을 좋아하는 유대인은 거리껴하고, 지혜를 좋아하는 헬라인은 미련하게 여긴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비로소,
능력 좋아하는 유대인은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알게 되고,
지혜 좋아하는 헬라인은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알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것은,
하나님이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가리켜 십자가의 도라고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고전1:19-20).
그럼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하고 멸하신 사람의 지혜를 교회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 지혜로 악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여 더욱 죄를 짓게 하고 멸망의 넓은 길로 인도하고 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혹은 헬라인들이 개발한 지혜로, 속을 청소하고 수리해도,
귀신은 잠시 떠났다가 오히려 그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 악한 세대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마12:43).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 헬라인 구별 없이 차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고 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확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능력과 그 지혜로 살아야 한다.
유대인이 구하는 능력(표적)도 아니요, 헬라인이 구하는 지혜도 아니다.
그 능력과 지혜는 세상을 날로 악화시킬 뿐 영혼과 세상을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첫댓글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