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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주여 너의 애달픔을 듣노라
@1월의 단장- 김은미 @ 답사코스- 나주시내의 동점문~남고문~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나주향교, 나주목문화관, 금성관, 나주목사내아,~완사천~영산포등대~ 영모정(백호 임제 사당옆)~ 다시면 복암리의 아파트고분군( 오전 9시출발, 오후 5시 여정의 마무리) @ 유랑호는 태원아빠의 신세계버스를 전세내다 (그것도 무상으로 말이다.) .
말끔한 얼굴로 하늘은 온통 푸른 물이 담뿍 담겨있다. 광주문화 유랑단의 역사 탐방지로 선정된 나주는 그렇게 맑고 산뜻하였다.
이번엔 태원 아빠의 신세계 버스가 우리의 노스탤지호가 되었으니 이 고마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정확히 35명의 단원을 태우고 신세계가 달린다.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소도시이면서 한 때 찬란한 영광의 땅이었던 나주의 첫 도착지는 동점문! ( 뭐 동쪽을 점령하다는 뜻이 아닐까)
유랑단의 잘 생긴 아빠들이 총 출동했다. 어쩜 키도 그리 비슷하신지,,,, 첫 도착지 동점문을 점령한 유랑단 식구들의 저 빛나는 얼굴을 보라, 동점문 2층 누각에서 바라본 금성산과 하늘이 멋지다
나주읍성의 동문이 있었던 터를 2002년에 발굴을 시작하여 복원하였단다. 성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의 모습을 볼 수 있고 2층 누각이라 우린 함께 눈 덮인 계단을 밟아갔다.
겨우 3미터 남짓한 성벽이 어떻게 적의 침입을 막았을까, 누각에 올라 땅을 내려본다. 천 년 전의 사람과 지금의 내가 어찌 같은 공간감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백제시대에 발라군으로 불리운 이곳이 고려 때 태조 왕건과의 로맨스로 어향이 된 후 남방의 군사기지로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읍성이 축조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한 쪽에선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소년 단원들은 여지없이 탐방의 이름이 무색하게 눈싸움에 신이 났다.
역사탐방은 무엇인가? 목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지난 시대를 상상하고 지금 자신이 몸담은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발견의 몸부림이라 여겨진다. 광주에서 근 삼십년 이상을 살아 온 내게 나주는 그야말로 배와 홍어가 유명한 촌락에 불과했다. 천 년 고도 경주답사를 하고자 하는 이는 널렸건만 나주탐방은 제 고장 사람에게도 요상한 짓처럼 보일 만큼 생소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름 되짚어 본다.
가까운 것의 귀함을 모르는 속성 때문인지 동안 매스컴에 세뇌당한 연유인지 아니면 나의 무지의 소치가 가장 클 지도 모르겠다. 나주 사람 하면 왠지 대가 세고 자존심이 강하게 여겨진 것이 이참에 확실히 깨우치면 좋을 것이다.
다음 경유지는 나주읍성의 남문인 남고문, 도로 한복판에 있어 신세계버스로 서너 바퀴를 돌고 눈도장을 찍었다. 여기서 삼봉 정도전이 나주로 귀향 오면서 조종의 은덕을 찬양하였던 곳이란다.
5분이 채 안되어 나주학생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건물 옆으로는 서울 가는 기찻길이 깔려있고 옛 나주역을 보존해서 눈길을 끈다.
우리는 걸음도 가볍게 아주 진지한 독립투사의 자세로 기념관에 들어섰다. 아마도 오늘의 여정 중 이 곳이 초등학생 단원들의 호응도가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 같다.
곧장 2전시실의 영상관에서 마치 대한뉴스의 의분에 찬 해설 속에 나주 학생독립운동의 발단에 대한 영상물을 보았다. 일제 강점기 호남지방에서 거둬들인 쌀은 영산포에 모아져 목포를 거쳐 일본을 실려갔고 일본인들이 빼앗은 토지를 발판으로 영산포에 정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남학생이 통학열차에서 조선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것이 11,3 학생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불씨는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가담한 독립운동이었으니 어찌 눈물겹지 않겠는가, 지금의 학생은 오직 학원과 시험성적, 더 보장된 직업을 위해 가열차게 공부한다. 나라의 정치는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인데 정작 시대의 새싹인 학생들은 정치에 문외한이다. 성적을 위해 역사논술을 배우지만 그 가슴은 차갑게 식어있다.
나는 학생운동이란 말만 들어도 의협심이 생기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다. 89년도의 전교조 활동 교사들이 해직당했을 때 고3인 여고생들은 뜨겁게 뭉치고 혈서를 써가며 선생님을 구하고자 했었다.
또한 엉망진창인 대학 시절엔 운동하는 선배를 존경하며 조국의 분단을 아파하며 분신하는 학우들을 위해 눈물 흘리고 통일을 가슴에 새겼다.
이것은 나만이 겪은 사사로운 경험이 아닌 그 시대를 통과한 젊은이에게 안겨준 역사적 실재감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부채감.....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뭔가 미약한 행보라도 해야만 된다는 압박감이 예전의 나를 힘들게 했다면 지금은 그냥 사는 것 같다. 1930년대의 키워드가 독립이라면 2010년대는 불안감이다. 혹은 두려움, 상실감!!
기념관은 모형과 인형이 배치되어 제법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이어서 나주역에 가서는 아이들의 흥분이 고조에 오르고 우리도 1980년대의 추억의 물건을 회상하며 역사 사무실을 구경하였다.
우리의 귀여운 훈남 지효아빠는 교무실 책상 앞에서 역장 모자를 써보며 모두의 박수를 이끌었다. 정말 추억어린 그 모자가 지효아빠에게 참 잘 어울렸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리라. (참 스머페트와 잘 어울리는 한 쌍!)
마치 70년대 복고풍 영화 속 주인공처럼 웃는 훈남씨.
나주읍 지도를 보면 가장 중심이 금성관과 나주향교,나주목문화관임을 알 수 있다. 12월 전주향교의 깊은 내공의 멋을 느낀 터라 나주향교의 유명세 또한 궁금해진다.
나주향교는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놓인 전묘후학의 형태이니 대성전은 공자님께 제사를 올린 곳이요, 명륜당은 유생들의 강당이다. 명륜당 왼편과 오른편은 동재, 서재라는 학생 기숙사가 마주보고 그 시원한 마당 귀퉁이에 주목나무 한그루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대성전의 기둥을 세어보고 칸수를 말해주니 아이들이 기둥 6개를 세어보며 귀를 쫑긋거린다.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은 그 위용이 당당하고 품위가 있으니 공자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사랑을 짐작할 만 하다. 향교 옆엔 충복사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충복사는 절 이름이 아닌 노비 김애남의 충성을 기린 사당인데 지금은 비석만 남아있다. 역사를 알려면 개념정리가 필수. 참고로 오늘의 해설사는 유랑단에게 나주의 보물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주목사가 공식 업무를 수행했던 금성관의 보도를 밟아보다
(삐삐롱스타킹(조혜진), 하이디(안정선), 아이비(윤수희), 1월 단장인 김은미, 우수에 젖은 듯 깊은 눈매를 지닌 최영숙(현아엄마)은 이 날 나주의 역사를 꿰려는 듯 해설사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고 따라다녔으니 한 편으론 이런 열정이 유랑단의 내공이 아닐까 짐작된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혼자 뒤쳐저서 군소리를 하곤 했으니 어찌 내 자식을 탓할 수 있을까,
탐방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만한 끈기, 튼튼한 뒷심, 그리고 지난 것에 대한 호기심 !
다음에 이어진 목사내아( 나주목사의 거처)와 금성관(나주목의 객사건물)은 그냥 넘어가자. 옛 이름에 맞게 으리하고 긴 연륜이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이제 고려 왕건과 오씨처녀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는 완사천에 당도했다. 일반 도로 옆의 잔디밭을 지나니 움푹하니 쑥 들어간 우물자리가 보인다. 이 우물물을 떠서 마시면 장차 왕과 왕비의 정기를 잉태한다고 하니 아이비(태원엄마)가 태원이랑 첫 삽을 떴다.
정말 물을 떠서 서로 진지한 얼굴로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이다. 저 간절한 소망이 내게도 전파되는 것 같다.
나주 향교의 너른 뜨락에서 생글거리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저 여인들이 참으로 상큼하다
사실 아이비는 나와 정반대의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손은 또 얼마나 섬섬옥수이고 노래는 윤시내의 열애를 소화할 정도로 실력파에, 야문 손끝과 살림솜씨도 고수급이고 무엇보다 다알리아처럼 활짝 웃을 때의 표정이 보는 이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이런 설레임으로 혈기 왕성한 왕건과 나주의 토호세력 오다련의 딸은 순간 사랑에 빠졌을 테고 견훤의 세력권을 치기 위한 포석으로 왕건은 오씨부인을 맞아들였을 것이다. 나주의 도움이 없었다면 왕건은 견훤을 그리 쉽게 치지 못했을 터 나에겐 의문이 남는다. 예로부터 마한 땅으로 후백제권의 세력이 미치던 나주땅이 왜 견훤 대신 왕건을 지지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다.
왕건은 왕의 자리에 오른 후 그 악랄한 훈요십조에서 차령 이남과 공주강 바깥의 사람은 변란의 위험과 통합의 원한을 들어 난을 일으킬 것이기에 인재로 등용하지 말라는 계시를 내렸으니 말이다. 이후 천 년의 세월동안 호남 푸대접의 설움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한을 맺게 했고 지금도 호남은 변방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 역사 탐방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든 곳이 나타났다. 갈대숲과 고요한 침묵아래 영산강이 저만치 굽이치고 낮은 동산위에 외롭게 서있는 永慕停!!
영모정 아래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산강은 고즈넉하기만 하고....
조선시대 기인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백호 임제의 넋을 기리는 정자가 이 영산강변에 있는 줄은 오늘에야 알았다. 나주 임씨가 선조를 기억하고자 지었다는 정자는 사방이 트여있지 않고 방구조로 되어있다. 앞마당엔 9그루의 나무가 우람하게 호위병처럼 자리잡았다.
전주향교의 600년 묵은 은행나무 보단 연수가 한참 아래다. 그래도 좋다. 나무가 사람보다 멋지다. 해를 끼치고 생명이 숨쉬는 강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려는 인간보다 나무는 훨씬 기품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향 피우고 정좌하여 중용을 수차례 읽어본다 장구의 비루함을 스스로 알아 비로소 성령의 참됨을 깨친다
달그림자 연못 가운데 고요하게 비치고 매화는 차디찬 눈 속에서 봄을 맞이하네 보고 또 볼수록 삶의 의욕 차오르니 모든 것이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있네(백호의 시)
임제는 사화 정쟁으로 치달은 조선 중기 명종 4년(1549)에 태어나 선조 20년(1587년)에 세상을 등졌다. 그가 떠난 나이가 바로 39세이니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한 줄기 바람처럼 짧은 인생 속에 백호는 나주 사람의 호연지기와 남도인의 호방한 풍류와 인간미를 세상에 드러낸 사람이었다.
참으로 五慾 七情의 들끓는 인간 본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위선과 가식에 가득 찬 조선의 사대부를 꾸짖었던 아웃사이더였다. 그래서 나는 백호가 더욱 자랑스럽다. 호남의 아들이자 나주의 호걸인 백호의 시를 읊어보며 희디 흰 눈 속의 매화 같았던 그의 정신을 흠모한다.
내가 평생 짊어 질 호남인, 전라도 사람이란 멍에를 되려 기죽지 않고 떳떳함은 이처럼 세상을 향해 가차 없이 목숨을 걸고 부르짖었던 선조들의 기상이 면면히 이어져오기 때문이다.
백호가 평생 몸에 지녔다는 옥퉁소와 거문고, 칼을 떠올려본다. 예로부터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는 거문고와 자신을 갈고 닦기위한 칼은 백호의 성품을 잘 드러낸다.
인간사의 흥망과 상관없이 유유히 흐르는 저 영산강 위에 선명한 보름달이 떠오르면 백호는 적토마를 타고 퉁소를 불리라.
큰 소리로 일갈하며 거문고를 뜯다가 시를 휘갈기며 웃어 제끼리라.
나는 우리 유랑단의 꿈나무들이 남도의 짙은 감성과 의연한 기개, 생명을 보듬는 뜨거운 사랑이 철철 넘치는 전라도 사람으로 자라길 소망해본다. 이것이 어찌 매일 풀어야 하는 학습지나 참고서로 배울 수 있겠는가. 때론 그냥 내버려두고 지켜보자.
그 아래 누가 묻혀 있다 한들 이 아이들을 그냥 용서해주리라, 고분은 눈썰매장으로 변신중 넘어져도 깨져도 바지가 찢어져도 즐겁기만 하는데...... 그 날 아이들은 행운아임에 분명하다
동점문 에서 귀여운 누나들과 막내 예종이
오늘 나주 복암리 고분에 올라 이름없이 남겨진 저 오래된 무덤위에서 죽어라고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그냥 바라보는 것도 이런 염원 때문이다. 가파른 10미터 이상의 경사면을 오르자 마자 온 몸으로 떼구르르 굴러내리는 저 아이가 바로 수양재의 태언이었으니 나는 그토록 밝고 찬란한 웃음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다.
오호라 이 아들은 날아갈 듯 미끄럼을 타는데 마치 바람돌이같다
저 무덤 너머엔 찬란한 무지개가 떠있을 듯 한데/
까만 비닐 봉다리를 깔고 둘이씩 껴안고 타는 녀석들, 박스를 깔고 아이못지 않게 신나게 내려가는 가제트씨(율이아빠),
서로서로 도와주며 깔깔대는 꼬마 요정 같은 현아와 현지, 그리고 시은이, 지켜보는 중에도 은근한 미소를 간직한 지효,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며 행복에 몸을 떠는 양제공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호프님(찬슬아빠)
나는 우리의 유랑이 왜 특별한 기대와 만족, 가슴 속 까지 젖게 하는 충만감을 주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분명 그 感이 전해질 것임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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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쩌면 이리도 맛깔스럽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 정아씨 글맛은 우리만 보기엔 너무나 아깝습니다 양제님`~~ 얼렁 정아의 글을 다 모아서 책 한권 내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