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뱀에서 용으로 진화하다
외계충격 시대에 한반도에 등장한 호랑이(위). 뱀이 사람을 쫓아오는 모습을 그린 스웨덴 타눔의 바위그림(아래 왼쪽). 1933년 3월24일 새벽 5시 미국 뉴멕시코 파사몬트의 하늘에서 별똥별이 폭발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이제 보다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선그림’으로 가보자. 이 선그림에는 외계충격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호랑이의 등장이다. 선그림으로 오면 몇 마리의 고래를 빼고는 거의가 멧돼지, 호랑이 같은 뭍짐승들이다. 면그림에서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고 뭍짐승으로는 사슴이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선그림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은 외계충격 이후 기온이 낮아지고 기후가 변화하면서 추운 지방에 살던 호랑이가 남쪽 한반도로 내려와 울산만까지를 자신의 지배영역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계충격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또 있다. 면그림에서 주류를 이루던 고래들과 고래잡이배들, 그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바다를 생존의 터로 삼았을 우리 선조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계충격으로 종족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반구대 가까이에 있는 천전리 바위그림이 이와 관련해 우리의 시야를 확 틔워준다. 두 겹 세 겹의 둥근 무늬, 마름모 무늬, 물결 무늬, 나선 무늬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이 그려져 있다. 뱀 모양의 그림도 여럿 있다. 탈(가면)을 쓴 사람의 그림, 표주박같이 생긴 것을 그린 그림, 십자에 가로선을 더한 그림, 다이아몬드 두 개가 서로 붙어 있는 듯한 그림, 몇 개의 빗금을 그어 쭉 뻗은 평행선이 되게 한 그림, 구불구불한 선이 무언가를 표현한 것 같은 그림들…. 이 그림 같기도 하고 그림문자 같기도 한 풍부한 상징들은 무언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필자의 시선을 끄는 그림은 무엇보다 탈(가면)이다.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물론 무당이다. 신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신의 역할을 맡아 굿을 하고 있을 터. 이미 신격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일까? 마름모꼴 그림문자는 번개 무늬다. 번개 치는 모양, 번개의 세기와 횟수를 기록한 것 같기도 하다. 우르릉 쾅 하는 우레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요즘은 원 모양을 수없이 겹쳐서 소리의 울림을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마름모꼴을 겹쳐서 표현했을 뿐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은 날아오는 별똥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인 듯하고 꼬리 달린 동심원은 꼬리별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모양을 닮았다.
동심원 문양은 꼬리별, 떠돌이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방패연을 이어놓은 듯한 문양은 해의 신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특히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뱀 그림이다. 뱀이 왜 하늘로 올라갈까? 뱀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스웨덴의 타눔 바위그림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타눔의 뱀 그림은 더욱 율동적이고 길지만, 사람을 향해서 땅을 기어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은 머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널리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의 ‘우주뱀(cosmic serpent)’이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1933년 3월24일 새벽 5시 미국 뉴멕시코 파사몬트의 하늘에서 벌어진 별똥별이 폭발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같이 떨어진 100여개의 별똥별 가운데 하나다. 우리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과 비교해보라.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천전리의 바위그림은 여러 종류의 외계충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늘에 펼쳐진 놀랍고도 두려운 광경들을 보고 그린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천지개벽의 신화를 바위 위에다 새긴 것이다. 천문학자, 고고학자, 수목학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600년 사이에 딥 임팩트와 관련한 온갖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 시기에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세계 여러 나라의 바위 그림이나 토기에서 우레와 번개 무늬, 별똥별, 파도 문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상황을 묘사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천전리 바위그림 가운데 또 하나 재미있는 그림이 하단에 있는 신라시대 명문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이다. 6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외계충격이 사라진 이후의 그림이다. 기마행렬과 바다를 건너는 배, 장대 위의 새와 용이 그려진 그림들이다. 용 그림이 세 개인데, 행렬 반대편인 제일 오른쪽에 네 발 달린 용을 크게 그려놓았다. 바위그림판의 상단에 있는 우주뱀이 길고도 긴 외계충격시대를 거치면서 하단의 용으로 진화한 듯하다. 이 용그림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왜 뱀과 용 사이에 구별이 없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또한 이 용 그림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용 그림과 그 모양이 같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는 뱀은 벼락에 속하는 동물로 번개 그 자체다. 뱀이 비를 내리게 한다. 안데스에서는 대가리가 두 개인 뱀 혹은 흑과 백의 뱀 한 쌍이 가뭄과 홍수를 상징한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우주의 어머니 이슈타르는 뱀으로 그려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도 뱀은 번개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늘의 뱀 무지개는 벼락의 정령으로 번개와 연결된다고 믿는다. 오세아니아에서 뱀은 천지의 창조자다. 인도의 비슈누 신은 똬리를 튼 뱀 위에서 잠을 자는데, 이 뱀은 원초의 끝없는 큰 바다로서 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징한다. 우주뱀은 천지개벽의 주체이자 매개자로서 세계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바로 이 신화들이 딥 임팩트의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우주뱀과 용을 하나의 바위그림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 선조들 굿판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울산만을 바다의 기지로 삼아 형성된 태화강가의 반구대와 천전리 바위그림판은 신라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큰 굿판’-오늘날의 강릉단오제처럼 수천년을 내려온 상고대의 큰 굿판임이 틀림없다.
우리 선조들의 굿판 ‘매력 만점’
그렇다면 이 바위그림이야말로 천지개벽 신화의 첫 기록임이 틀림없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뱀과 용의 이야기로 단서를 하나 찾아냈다. 그러나 그 이야기만이 아니다. 천전리 바위그림만 하더라도 그림문자들이 무리 지어 있는 이야기 마디들이 적어도 6∼7개가 된다. 어찌 울산의 반구대나 천전리뿐이랴. 고령 알터, 포항 칠포리와 인비리, 안동 수곡리, 영주 가흥동, 영천 보성리, 경주 석장동과 상신리, 남원 대곡리, 남해 상주리, 함안 도항리, 여수 오림동 등지의 바위그림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냥 ‘그림’으로 보고 무언가 의미를 찾아내고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림문자로도 봐야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신화의 첫 머리를 장식할 이 바위에 새긴 그림문자를 해독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다채로운 상고대의 신화를 전해 들으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문화평론가 겸 연출가 류이씨(49·필명)가 쓰는 ‘노래하는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양한 우리 신화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류이씨는 민요판굿 ‘새재’, 노래굿 ‘예수 이름으로’, 소리판굿 ‘붉은 점 아리따와 신의 탈’ 등 많은 작품을 구성 연출 창작해왔으며, ‘마당극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탈춤’ 등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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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을,울리는,정보 감사합니다,수고하세요,
남사랑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