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제2전시관.
유교와 수양을 다룬 이 전시관에 들어서면 ‘수양은 무엇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라는 주제로
소학의 첫 가르침 ‘물뿌려 마당 쓸고’에 대한 안내의 글과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수양은 무엇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을 뿌려 마당을 쓸고 집 안팎의 사람들을 공손히 접한다는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주변의 사소한 일들부터 가르치는 것이
바로 소학(小學)이다. 즉 훌륭한 유학자인 선비가 되기 위해 어린이가 배워야 할
유교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소학’이라고 부른다.
‘소학’은 글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작은 규범들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선비가 되기 위해 익혀야 할 ‘대학(大學)’ 공부의 준비 단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던
조선시대의 사림(士林)들이 소학 공부를 중시하였다.
특히 조광조(趙光祖)의 스승이었던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8)은
『소학』을 늘 가까이 하여 ‘소학동자小學童子’로 불렸다.
“물뿌리고 마당쓸고”는 바로 小學의 첫 가르침에서 시작된다.
‘소학’은 송대(宋代)의 성리학자 주희(朱熹,1130-1200)와 그의 제자 유청지(劉淸之)가 1187년 유교의 경전과 선현의 논설, 언행중에서 사회의 도덕규범으로 삼아야 할 내용들을 가려 뽑아 엮어 만든 책이다. 朱子로도 불리우는 주희는 소학의 편찬 취지를 소학서제(小學書題)에 이렇게 담았다.
『옛날 소학에서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 먼저 물뿌리고 쓸며[灑掃쇄소] 부름에 답하고 물음에 답하며[應對응대] 나아가고 물러나는[進退진퇴] 예절과 부모를 사랑하고[愛親애친] 어른을 공경하며[敬長경장] 스승을 존경하고[隆師륭사] 벗을 가까이하는[親友친우] 도리를 가르쳤다.
이는 모두 ‘몸을 닦고[수신修身수신], 집안을 잘 이끌며[齊家제가], 나라를 다스려서[治國치국],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平天下평천하]’는 바탕이 되는 것으로 『대학』의 근본이 된다.
반드시 어릴 적에 배우고 익히도록 한 것은, 그 배우고 익힌 것이 지혜와 더불어 자라게 하고, 마음 속 변화를 이루게 하여, 그 배운 것과 실천이 마음속에서 버티고 막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의 근심을 없게 하고자 함이다.』
古者小學, 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 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脩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而必使其講而習之於幼穉之時, 欲其習與智長, 化與心成, 而無扞格不勝之患也,
고자소학, 교인이쇄소응대진퇴지절, 애친경장융사친우지도, 개소이위수신제가치국평천하지본, 이필사기강이습지어유치지시, 욕기습여지장, 화여심성, 이무한격불승지환야,
小學의 권두언 ‘소학제사(小學題辭)’ 첫머리도 쇄소응대의 경귀로 시작된다.
“소학의 가르침은 물 뿌리고 쓸며, 남의 말에 응대함이 예절과 맞으며,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해 행실이 조금도 예의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런 일들을 행하고도 남는 힘이 있으면 시를 외우고 책을 읽으며, 노래와 춤을 통해 음악을 배워 생각이 바른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窮理修身 斯學之大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 昔非不足 今豈有餘,
소학지방 쇄소응대 입효출공 동망혹패, 행유여력 송시독서 영가무도 사망혹유, 궁리수신 사학지대 명명혁연 망유내외, 덕숭업광 내복기초 석비부족 금기유여
소학 가언(嘉言) 광입교(廣立敎)편에서는 장자전서(張子全書)에 나오는 장횡거(張橫渠) 선생의 말을 빌려 어린아이들에 쇄소응대(灑掃應對)의 배움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에는 먼저 마음을 차분하게 하도록 가르치고, 사물을 자세히 살피며, 공손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학문을 배우지 않아 남자나 여자나 어릴 때부터 교만하고 게을러졌으며 자라서는 더욱 흉악하고 사나워졌다. 이것은 단지 어린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해서 이미 나와 구별되는 타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만하고 나태한 병의 뿌리가 항상 없어지지 않고 또 거처하는 곳에 따라 자라나며 죽을 때까지 옛날 습관대로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일 때는 마당에 물 뿌리고 쓰는 일이나 어른에게 응대하는 일(쇄소응대-灑掃應對)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다. 친구를 대접할 때는 친구에게 자신을 낮추는 일을 하지 못하며 관리가 되어서는 상관에게 자신을 낮출 줄 모르고, 재상이 되어서는 천하의 어진 선비들에게 자신을 낮출 줄 모른다.
이것이 심하면 자신의 사욕을 좇아 올바른 도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결과는 단지 게으르고 나태한 병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살면서 접촉하는 것에 따라 더욱 자랐기 때문이다.”
橫渠張先生曰, 敎小兒, 先要安詳恭敬. 今世學不講, 男女從幼便驕惰壞了, 到長益凶狠.
횡거장선생왈, 교소아, 선요안상공경. 금세학불강, 남녀종유변교타괴료, 도장익흉한.
只爲未嘗爲子弟之事. 則於其親, 已有物我, 不肯屈下, 病根常在, 又隨所居而長, 至死只依舊.
지위미상위자제지사. 칙어기친, 이유물아, 불긍굴하, 병근상재, 우수소거이장, 지사지의구.
爲子弟則不能安灑掃應對, 接朋友則不能下朋友, 有官長則不能下官長, 爲宰相則不能下天下之賢.
위자제칙불능안쇄소응대, 접붕우칙불능하붕우, 유관장칙불능하관장, 위재상칙불능하천하지현.
甚則至於徇私意, 義理都喪也. 只爲病根不去, 隨所居所接而長.
심칙지어순사의, 의리도상야. 지위병근불거, 수소거소접이장.
소학 본문에는 쇄소응대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어림잡아 헤아려보아도 열다섯 곳이 된다.
소학 선행(善行) 실입교(實立敎)에 학문의 단계를 묘사한 글귀가 있다.
명도선생은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사물의 이치를 미루어 지식을 밝히는 단계에서 시작하여
지극히 선한데 머무를 줄 아는 단계로 나아가며,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단계에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단계로 나아가며,
물뿌리고 쓸며 응대하고 대답하는 쇄소응대(灑掃應對) 소학의 가르침에서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발현하는
궁리진성(窮理盡性)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해,
가르침에 순서와 차례를 두었다."
明道先生敎人. 自致知至於知止, 誠意至於平天下, 灑掃應對, 至於窮理盡性, 循循有序. 病世之學者, 捨近而趨遠, 處不而闚高. 所以輕自大而卒無得也.
명도선생교인. 자치지지어지지, 성의지어평천하, 쇄소응대, 지어궁리진성, 순순유서. 병세지학자, 사근이추원, 처불이규고. 소이경자대이졸무득야.
1564년(명종 19년) 남명 조식(1501-1572)이 퇴계 이황(1501-1570)에 보낸 편지에도
“물뿌리고 비질하며”의 글귀가 있다.
“요즈음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니 손으로 물 뿌리고 빗질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 천리를 이야기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 선생 같은 어른이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마음에 간직한 것이 거칠어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선생 같은 분은 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으므로 우러러 보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이니 충분히 억제하고 타이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2012.7.27)
첫댓글 실천하지 않은 체험과 이론의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이치입니다
어른이나 어린이가 실생활이나 좋은 습관이 몸에 베지 않고 머리로만
알고있는 오늘날의 인성교육을 다시한번 되세겨야할 대목입니다
쇄소응대의 가르침을 유교박물관에서 만나다니...
광화문광장에서 소학을 만날때처럼 그 기분 잘 아시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