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암차는 500여 년 전부터(남북조 시기) 세상에 이름을 떨친 중국 차문화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송시대에는 공품(貢品)이었을 뿐 아니라 원나라(기원 1302) 때는 조정에서 무이산 구곡계(九曲溪)에 어차원(御茶園)을 설립하고, 황족들을 위한 어차(御茶)를 제조하였다. 17세기에는 서구로 수출이 되면서 그 명망이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 무이암차는 오룡차 중 진품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를 받고 있다.
무이암차가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쇠퇴하지 않고 역대의 공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품질의 우수성 때문이다. 당나라 때 벌써 ‘산천의 정화(精華)와 영기(英氣)의 모음이요, 암골(岩骨)과 꽃 향기의 결정을 지녔다'라는 무이암차에 대한 찬사가 나타났다.
자고로 명산에는 명차가 난다. 중국 동남지방의 무이산은 벽수단산(碧水丹山)에, 날아내리는 계곡물은 흐르는 노을과 같고, 6·6기봉(36개의 봉우리), 3·3계곡(9곡계) 등 기이하고 수려한 풍경은지상의 선경과 같아 무이산 암차의 생장에 독특한 천혜의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암차는 뭇산봉우리와 골짜기 속에서 자라며 풍화된 암벽의 기운과 이슬을 받아 독특한 향기와 신묘한 싹(芽)을 탄생시켰다.
무이암차는 유구한 제다기술을 갖고 있다. 당나라 때는 증청단차(烝靑團茶), 명나라 때는 초청록차(炒靑綠茶), 청나라 때는 소충홍차(小紅茶)로 발전했다. 18세기에는 3홍7록(三紅七綠)의 청차(靑茶; 반발효 오룡차로 지금의 암차를 말한다)가 유행했으며, 그 제다법이 계속 발전하여 세계 제일의 독특한 제다법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정교한 과정을 거쳐 찻잎에 함유된 천연의 향과 맛을 충분히 살려냈다. 그 때문에 암차에는 독특한 ‘암골화향(岩骨花香)'의 암운(岩韻)을 지니고 있어, 마신 후 입안에 향기가 머문다. 향이 진하고 오래 지속되는 까닭에 마신 후에도 목에 단맛이 감돌고, 맛이 순수하고 전신이 가뿐하다. 탕색은 귤황색이며, 잎은 밝다. 녹색잎의 붉은 가장자리는 7~8번을 우려내도 향기가 여전하다. 암차의 ‘活·甘·淸·香'의 풍운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다.
특히 무이산에서 350여 년 동안 재배, 생산된 ‘암차지왕(岩茶之王)'이라 불리는 대홍포는 품질이 우수하고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다. 향기는 그윽하고 기이하며, 맛은 순수하고 맑다. 또한 감칠맛이 나고 상쾌하다.
옛 시인은 ‘奇茗神活傳古今 岩壁大紅永世存 世間絶品人稱頌 益思去病人長春'이라 하였다. 이는 곧 무개(無价)의 보물로서 역대의 황제만이 마실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홍포 차나무 모수(母樹)는 6그루로 연생산량이 500g에 불과하다. 매년 현지의 가장 우수한 차 제조자를 초빙하여 제다한 후 시(市) 인민정부에 귀중품으로 보관하였다가 외국 귀빈이나 국가 영수들에게 기증한다.
대홍포는 진귀해 시장에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국내외 소비자들과 차인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이산시암차총공사의 연구원들은 여러해 동안 무성제배기술을 연구, 대홍포 모수(母樹)에서 가지를 취하여 무이산의 독특한 생태환경에 맞춰 무성번식에 성공하였다. 무성번식을 거친 대홍포는 유관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결과 모수(母樹)의 우량한 품질과 맛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현재 시중에 출시돼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무이암차는 독특한 암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기한 약리 기능도 갖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암차는 (성격이) 온화해 차지 않으며, 정신을 맑게 하고, 위를 건강하게 하며, 소화를 돕는다. 또한 기를 돋구며, 눈을 밝게 하고 생각을 도우며, 몸을 가볍게 하고, 노화를 방지한다. 무이암차를 장복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장수하게 된다”고 하였다.
암차를 마시는 일은 사람들의 생리적인 수요만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즉 갈증을 해소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신체상의 이로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적 수요, 즉 마음을 안정시키고 즐겁게 하며 정신적 목마름까지도 능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이암차가 깨끗하고 순수하며 고요하며, 쓴맛 뒤에 단맛이 나는 특성 때문이다.
무이암차의 이러한 ‘淸·和·淡·靜'의 미덕은 중국인이 추구하는 인생관과 맞물려 있다. 이는 무이차문화의 깊은 내온(內蘊)이다. 차에는 덕이 있어서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도 차덕(茶德)이 있게 된다.
옛부터 무수한 인인지사(仁人志士)들이 음다를 통해 덕을 쌓고, 예절을 밝히고, 손님을 존경하고, 친구를 사귀었다. 또한 음다를 하나의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정신적 향수를 누리고 예법교육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 즉 음다를 통해 차를 윤리철학으로 승화시켜 몸을 깨끗이 하고 수양을 쌓아 개인의 품성을 높이는 경계로 삼았던 것이다.
차가 가진 온화함(和)과 고요함(靜)의 속성은 우리나라의 유(儒)·불(佛)·도(道) 삼가(三家)의 사상과도 통한다.
유가가 주장하는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수신치국평천하(修身治國平天下)'이다. 중용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화경겸양의 화합을 중히 여긴다. 수신(修身)을 하려면 반드시 담백, 고요해야 한다. 『대학(大學)』에 따르면 “정(定) 후에야 정(靜)할 수 있으며, 정(靜) 후에야 안(安)할 수 있으며, 안(安)한 후에야 사색할 수 있고, 사색 후에야 얻을(得)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佛敎)의 선(禪)은 중국 불교의 별칭이다. 선종의 주장은 중화입세(中和入世), 즉 선을 통해 도를 깨닫는 것이다. 면벽좌선, 정려수심(靜慮修心), 전주일경(專注一境)을 통해 일시에 깨닫는 것(頓悟)이다. 또한 깨달음은 정(靜)에서 오고 마음이 지극하면 정(靜)할 수 있고, 내심에 잡념이 없고 청정하면 곧 불(佛)이 된다고 보았다.
도가(道家)가 추구하는 것은 청정무구로서 청담피세(淸淡避世, 세속도피)이다. 천인합일, 즉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숭상했다. 사람은 반드시 자연에 순종하고 몸 수행에서 마음의 수행까지 수심(修心)은 정(靜)에 있고, 정(靜)은 지혜를 나으며 불로장생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음의 고요는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의 안정은 만병(萬病)을 일으키지 않는다. 화남진인(華南眞人)은 “잡념이 없고 고요하니, 고요함은 천하를 태평케 하고 도덕의 정상에 오르게 한다”고 하였다.
때문에 차(茶)는 삼가(三家)정신이 기탁하는 곳이 되어 가장 이상적인 물질적 기초가 되었다. 무이산은 삼교동산(三敎同山, 儒佛道)을 이루었고 무이산과의 인연은 필연적이었다.
무이차도(武夷茶道)는 차중지도(茶中之道)로서 법규이며 또한 이념(理念)이다. 달리 말하면 예절의 모양이며, 깨끗한 정신의 화신이다. 때문에 각자가 말하기를 예법교육은 도덕수양의 방법(道)이라고 하고(儒家), ‘吃茶去'에는 선의 심오한 뜻이 함유되어 있으며 선을 깨닫는 길이다(佛家)고 하였다. 또한 ‘天人合一', 화정(和靜)의 길이다(道家)고 하였다. 평화로운 한 잔의 차는 사람들 사이에 화애와 즐거움을 자아내고 ‘남을 생각하고, 나를 잊는(至人無已) 것이며 장수는 반드시 나 자신을 초월한 데서(無我) 오며 또한 무아를 실현하는 길이다'(國際無我茶會)고 하였다.
몇백년 동안 무이암차를 품음(品飮)하는 예술이 형성되어 독특하고 품위있는 고상한 형식을 이루었다. 예술감상을 위주로 하는 공부다예(功夫茶藝)의 열여덟 가지 순서는 ‘향을 피우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찻잎을 손님들에게 보여드린다. 맹신목림(孟臣沐霖), 오룡입궁(烏龍入宮), 현호고충(懸壺高沖), 춘풍불면(春風拂面), 중세선안(重洗仙顔), 약침출욕(若琛出浴), 옥액회호(玉液回壺), 관공순성(關公巡城), 한신점병(韓信点兵), 3용호정(三龍鼎), 감상3색(鑑賞三色), 희문유향(喜聞幽香), 초품기명(初品奇茗), 재짐류하(再斟流霞), 영오암운(領悟岩韻), 진배사차(塵杯謝茶)'의 순이다. 이는 다예아가씨의 시범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 감상을 할 수 있다. 무이차문화는 문화의 깊은 침적으로 내함(內涵)이 심오하고 중화민족전통문화의 한 떨기 찬란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