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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주일설교
본문: 요 2:13-17
제목: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1. 기도하는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21:13)
성전은 공공 예배를 위하여 구별된 장소이다.
그래서 성전은 세속성에서 벗어나 거룩성과 경건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을 던져버리신다고 하셨다.
“나는 네가(솔로몬)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왕상9:3-7)
실제로 솔로몬 성전은 유다가 멸망할 때 성전은 불타고 다 파괴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에스라와 스룹바벨이 다시 짓고 헤롯이 보수한 성전이었다.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린 성전은 헐어버려야 할 성전이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몸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세워지는 주님의 성전을 가리켰다.
건물 성전의 시대는 끝나고 예수님이 성전이고 우리가 성전인 시대가 된 것의 선포이기도 하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안에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과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된 공동체가 교회이다.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사랑으로 그 몸이 자라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이다(엡4:16).
성전의 거룩성과 경건성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말씀에의 순종이 함께 할 때 유지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악한 강도들의 소굴이 되거나 상스럽게 장사하는 곳이 되고 만다.
카톨릭은 성전 안에 각종 성인들의 유물과 성상들을 배치해 놓고 돈을 내게 하고 면죄부를 팔았다.
주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고 성전에 들어가셨다.
유월절이 어떤 절기인가?
유월절은 출애굽시에 애굽 땅의 장자들은 다 멸하고 이스라엘은 구원하신 최고의 절기이다.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넘어가고 곧 유월, pass over 하였다.
이 절기를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라 하셨다.
유월절에 잡은 양의 피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주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그 어린 양의 피를 영혼에 바른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곧 영접한 자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천국을 갈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유월절과 함께 맥추절, 수장절을 삼대 절기로 지키게 하였고,
이스라엘 남자들은 다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얼굴을 보이라고 하셨다.
빈 손으로 내 앞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출23:15).
사람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들을 성전 안으로 들여와서 팔게 된 이유는,
멀리서 온 사람들이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환전상은 출30:13에 성소에서만 사용하는 “반 세겔”을 내게 되어 있어서 환전이 필요했다.
예수님은 제물과 환전 자체를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탐욕을 채우기 위해
그런 일을 성전으로 끌여들여서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질책하신 것이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성전에 가지만 그곳은 장사하는 집이었고 헐어야 할 성전이었다.
우리의 속도 재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면 헐어야 한다.
주님이 삼일만에 다시 짓도록 해드려야 한다.
주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것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그분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시편 69:9는 열심이 그를 삼켰다는 표현을 썼다.
“열심”은 사랑과 분노의 뜨거움을 말한다.
선한 일에 열심이 있는 것, 열심에 삼켜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참된 지식을 따르지 않은 바리새적인 열심을 조심하여야 한다.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그분을 삼켜서 성전을 정화하신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일체 돈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빌려 달라고 하지도 말고 빌려 주지도 말아야 한다. 돈 빌려주면 돈 잃고 사람까지 잃고 만다.
도움은 주고 받아도, 돈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않는 기본이다.
헌금도 강요하거나,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2.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고 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재물도 겸하여 사랑한다는 사람은 사실은 재물과 돈만 사랑하는 사람이다.
돈과 재물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이 장사하는 집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채운, 장사하는 집이었고 강도의 소굴이었다.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과 재물을 사랑할 수 없다.
돈은 필요하지만,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돈을 사랑하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파멸과 멸망에 빠진다는 것이다.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일용할 양식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
영원 세상에 비하면 우리의 일생은 잠시 스쳐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요 외국인일 뿐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내 재물과 시간과 열심을 써야 한다.
땅에 쌓는 보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질 당하고 만다.
질병과 사고와 문제들이 쌓아 둔 재물들을 야금야금 좀먹고 손해를 입힌다.
우환이 도둑이라 한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6)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9)
성경의 이런 교훈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 밖에 믿을 것이 없다고 한다.
전대에 구멍을 뚫어버리면 다 줄줄 새는 것이고, 훅 불어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
성경은, 의인들이 필요할 때 쓰게 할려고 악인들이 재물을 힘껏 쌓아 놓게 한다고 하신다.
배부르지 못하여 흡족하지 못하여 부한 자들이 영양실조로 죽는다.
당장은 수확이 있을지 몰라도 생을 마감할 때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인생의 마지막 수확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최종 수확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고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한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고난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은, 비천에 처해도 비굴해지지 않고,
풍부에 처해도 우쭐하거나 교만해지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생은 고난과 형통이 새옹지마처럼 반복되고 어우러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부름과 배고픔에도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에게
하나님은 때가 되면 능력을 주셔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3-14)
3. 떡만으로가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떡만으로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떡만으로 살지만, 영혼을 가진 사람은 영혼의 양식을 먹고 그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
떡이면 족하다. 난 떡만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은 영혼을 부인하고 육신만 인정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영혼이 없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심판이 없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시면서 광야 생활을 통해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신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8: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주리실 때,
사탄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에 대해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시며 낮추시며 주리게도 하시며 또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광야는 위험한 곳이며, 불뱀과 전갈이 있고 간조한 땅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기도 하다.
노예살이 감옥살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이 광야 고난을 통해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통과한 사람이다.
이스라엘 중에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입술로만 하나님과 가깝고 마음은 먼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님은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다.
가르치고 배우고 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타내리라”(요1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5:3)
지켜 행할려면, 말씀으로 살려면,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설교를 경청해야 하고 경건서적을 읽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러한가 하여 매일 성경을 상고하여야 한다.
성경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항상 지갑처럼 내 성경을 갖고 다녀야 한다.
손에 익숙하고, 눈에 익숙해야, 찾기 쉽고 읽기 쉽고 묵상하고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 익숙한 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말씀대로 그,분의 명령과 법도에 순종할 때,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가나안 기업으로 축복하시고 광야를 졸업하게 하신다.
법도에 순종하고 다 지켜 행하라고, 다윗도, 여호수아도 그 길만이 형통의 길이라고 말씀한다.
말씀은 귀로만 듣고 흘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떡과 재물만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훅 불어 버리시고 전대에 구멍을 뚫어 버리신다.
이 땅에서의 재물과 성공을 위해서만 살기에는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신 영혼이 너무 고귀하다.
하늘에 있는 보화와 영원한 상을 보지 못하고 새 예루살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성전은 항상 장사하는 집으로 변하기 일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 때,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재물도 필요할 때 풍성해지고 일이 성취되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실을 맛보다 알아야 한다.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엡3:20).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이 말씀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그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을 보냈을 때, 한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땅의 계산법. 곧 경제학 법칙은 결국 썩을 것을 거두게 되고,
하늘의 계산법, 말씀의 법칙은 지극히 크고 영원하고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거두게 하신다.
그 수확의 법칙은 이 땅에서도 영원 세상에서도 똑같이 통하는 말씀의 법칙이다.
첫댓글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