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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2 주일설교
본문: 골 3:15-17
제목: 그리스도의 평강
1.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하나님의 평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평강은 평안이라고도 하고, 화평이라고도 한다. 뜻은 같다고 보면 된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이기도 하다.
은혜와 평강은 그래서 같이 붙어다니고 함께 한다.
바울 서신마다 첫 머리에 다음과 같은 인사를 하고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고전1:3,갈1:3)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결과, 평강의 열매를 우리 마음 속에서 맺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은혜와 평강이 마음에 있게 될 때 우리 마음은 천국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우리 마음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
평안이 없으면 은혜가 없는 것인 줄 알고 은혜를 구하고 그 안에 거하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우리 마음을 굴복시키라는 것이다.
그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할 때 불안 초조 근심 낙심 두려움 우울 혼란이 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다(롬14:17).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이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평강이 아닌 것들은 다 물리칠 필요가 있다.
평강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평강)--”이다.
이 열매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들이다.
육체의 욕망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거스르고 대적한다.
그러니 기도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하고 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에 거저 얻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화평 평안의 열매도 싸워 이기는 자의 몫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잘되고 소유하고 누리는 등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고 지속적인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런 조건과 상관 없이 우리 마음에 직접 부어주시고 지속적이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양심도 쉼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해준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주님의 평안을 끼쳐 주신다.
그것을 믿고 근심과 두려움을, 불안과 낙심을 물리치기 바란다.
말씀을 통해 깨닫고 성령을 힘입고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한 몸 이루는 지체들간의 평강을 누리게 하신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이루는 지체들이다.
형제처럼 자매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분부이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도록 하자.
2. 그리스도의 말씀이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을 못 누리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고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나고 유지되고 자라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디서 듣는가?
설교를 통해서도 듣고, 성경을 읽음으로써, 연구함으로써, 들을 수 있다.
내 마음과 생각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고 희미하고 다른 것들로 채워지면,
있던 믿음도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강도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말씀이 있으면 믿음도 견고해지고 평안도 채워진다.
말씀을 찾으면 믿음도 찾고 평안도 찾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할려면,
기도와 말씀의 경건훈련에 힘써야 한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을 구하고 힘입고,
성경을 항상 가까이하며 읽고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습관으로 해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성경(율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하나님께 복 받고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들리지요?
성경을 즐거워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면 된다는 것 아녜요?
그런데도 성경을 멀리하고 기도를 멀리하실 건가요?
복을 받기 싫고, 형통하는 것이 싫다면, 성경을 멀리하면 된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망하고 만다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하게 거하게 할려면
내가 성경을 즐거워하고 그 성경을 밤이나 낮이나 읽으며 묵상하며 살아야 한다.
그 길만이 복을 받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길인 것을 다시 명심하시기 바란다.
말씀이 있으면, 하나님의 길로 가게 되고, 육체와 죄를 이기게 된다.
말씀이 있으면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영광의 소망을 붙들게 된다.
사람이 떡만으로 살지 않고 지금의 소유와 환경만으로 살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위험한 광야길을 오랫 동안 걷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도 지금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평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한 가운데 누릴 수 있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도 없고 평안도 없다고 새기면 된다.
말씀이 있고 믿음과 평안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고 근심할 것도 없어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속에 풍성하게 해서 그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지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한다.
성화성숙하기 위해서는 가르침, 성령, 수고의 삼박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할 때 우리는 찬양과 감사도 넘치게 할 수 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다 말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평안은 감사하는 마음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평안은 더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없이는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가 없는데 그리스도의 평안이 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좋은 일이 생기고 축복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어떤 일에든 감사하라는 것이다.
모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섭리 가운데 이루어가고 계신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우리의 작은 지혜와 짧은 소견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은 주어진 환경에서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환경을 무조건 감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과 인내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이 줄로 재어 준 아름다운 구역’(시16:6)임을 믿으라.
우리의 미래와 영광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어 있다.
왜,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하는가?
오직 우리는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고,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설명이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주님이 곧 내가 가야 할 길이고, 내가 붙들어야 할 진리이고, 내가 살아야 할 생명이신 것이다.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주님과 연합할 때 아버지는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도 오직 그리스도로 우리가 옷 입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없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다면 하나님께 감사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끝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그렇게 한 기도만을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도 그 이름을 힘입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살리신 분이 주 예수이기에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이 피로 사신 주님의 것이니 주인의 이름으로 말에나 일에나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산다면 그것은 주인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따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고, 멸망과 파멸로 끝이 난다.
바울은 말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일에나 말에나 뿐 아니고, 살든지 죽든지, 죽는다 할지라도,
자기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그리스도인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어야 한다.
예수의 생명(형상)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할려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하고, 우리가 죽음에 넘겨져야 한다고 했다(고후4:10-11).
내가 죽어야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역설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평안과 말씀과 감사가 하나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평안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한다.
그럴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면,
그리스도 없이, 그분의 말씀과 감사 없이, 그리스도의 평안을 누릴 수 없다.
평안이 없다면 천국을 살 수 없고 천국을 누릴 수 없다.
그리고 천국을 못 산다면 지옥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평안만이 이 땅에서의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준다.
우리를 절망케 하는 낙심과 불안도 그리스도의 평안만이 물리칠 수 있다.
천국을 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기 위해 말씀을 풍성하게 하고 감사가 넘치게 하자.
첫댓글 왜,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하는가?
오직 우리는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고,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설명이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이다.~~~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를 잊고 살았네요
오늘 밤 읽어보니 참으로 훌륭한 강설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교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