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꽃
임보
유화를 그린 친구의 화실에 갔더니
붓이 갔던 자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위에 다시 그리고
그래도 마음에 안 차면 그 위에 또다시 칠하고
덕지덕지 물감에 물감을 칠해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시를 쓰는 시인도 마찬가지다
골라잡은 말이 마음에 못 미치면 다른 놈으로 바꾸고
그래도 흡족치 않으면 또 다른 놈으로 바꾸고
한 편의 시가 수많은 퇴고로 너덜너덜 얼룩진 상처다
요즘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또한 그렇다
한 곡의 노래를 수백 번 반복하여 녹음한 다음
최선의 부분들만을 골라 짜집기해
한 장의 음반으로 만들어낸다지 않던가?
그런데, 옛 선비들의 글씨나 문인화는 어떠했던가?
한번 지나간 자리에 붓이 다시 가지 않았다
일필휘지(一筆揮之)― 칼처럼 서늘한 문기(文氣)!
눈밭보다 하얀 화선지에 먹꽃이 피었다!

첫댓글 일필휘지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분이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ㅎㅎ
잘 보았습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서예와 문인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칩니다. 고맙습니다.
짜집기해서라도 멋진 시 한편 쓰고 싶습니다!
퇴고야 흠이 아니라 미덕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참회로 울다가 먹꽃이 될 때 많습니다
눈물의 먹꽃을 그리셨군요.
일필휘지로 그린 먹꽃 그런 시를 쓴다면 얼마나 흡족할까요.
어떤 천재시인은 들판을 걸으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다 시였다고 합니다만
그렇게 쓰여진 시에서 명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열심히 퇴고하는 것이 글에 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늘 귀감의 글 감사 절.
잘 지내시죠? 청류재에도 가을빛이 맑게 들었겠군요.
깨달음이 있는 시 잘 감상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김 시인도 건강 잘 챙기세요!
퇴고는 백번을 해야한다는 말도 있든데요
그것도 부지른 해야 할수 있을것 같읍니다 선생님
열심히 퇴고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