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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공부방 <천도법문 - 세 번째 시간>
1부 : 교무님설법
ㅇ예화 : 바쁘다 스님
옛날에 어느 절에 스님이 생활을 하시는데 항상 ‘바쁘다 바뻐.’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을 바쁘다 스님으로 부르면서 조소를 합니다. 그 스님이 갑자기 병에 들어 열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화장을 했겠죠. 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걸 뭐 그리 바쁘게 사냐?’ 했더니, 그러니까 ‘그럼 아니 바뻐? 지금은 더 바쁘다.’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고 합니다.
남들 보기에는 공연히 그냥 바쁘다 하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일심공부를 계속 했기 때문에 그만한 신통까지 나왔던 겁니다. 그 스님은 바쁘다 하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자기 천도를 했죠. 그리고 일심공부를 한 겁니다. 대종사님 말씀 중에 ‘길에서 잡담을 하더라도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면 그것은 자기 공부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바쁘다 스님 말씀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 ‘무릇 도학이라 하는 것은 과학과 달라서 무형한 마음을 찾고 길들이며 조정하는 것이다. 외형으로 봐서는 그 정도를 전혀 알 수 없다. 도인인지 아닌지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다. 행주좌와가 불리자성(不離自性=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부가 아니겠는가. 밖으로는 눈을 감고 누워있어도 일심만 챙겼다면 공부를 바쁘게 한 것이고, 공원에 가서 친구와 한담하며 놀았더라도 일심만 챙겼으면 공부를 바쁘게 한 것이다. 심신간 일 없을 때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면 한순간도 방심할 틈도 없는 동시에 눈 코 뜰 사이없이 바쁘게 공부한 것이니 바쁘다 스님이 항상 바쁘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제군들도 성불제중을 원한다면 동정간에 게을리 말지어다.’
여러분 다 바쁘지요? 사실은 다 바쁘지요. 할머니도 바쁘더라고요. 문제는 무엇에 바쁘냐는 것입니다. 아직도 늙어서 돈 벌라고 바쁜가? 일심 챙기느라고 바쁜가? 내 영성을 길들이고 바라보는데 바쁜가 아니면 욕심에 이것저것 구하려고 눈 빠지게 바쁜가. 바쁘다 스님같이 바빠야 그 사람이 천도가 될 것이다.
ㅇ천도란?
1. 고통이 낙으로(이고득락) : 내 삶이 지금 고통이여. 괴로워. 집착되어 있고, 승질이 나고, 원망심이 나고, 생각만 하면 열이 오르고, 사심번뇌가 많아. 이런 마음에서 무엇으로? 고를 떠난 극락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2. 악을 놓고 선으로(지악수선) : 죄를 놓고 복으로 간다. 그래서 악업을 짓느라고 바쁜가. 오늘도 미워하느라고 바쁜가. 부모님 원망하고 형제간과 다투고 이럴려고 바쁜가.. 아니면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고 하는가...
3. 미에서 오로(전미개오) : 미는 어두운 것입니다. 미혹됨. 오는 깨달을 오입니다. 밝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미는 분간이 없어요. 어떤 것이 진리인지 어떤 것이 참 인생인지 어떤 것이 영원한 행복인지 어떤 것이 참 나인지 어떤 것이 가장 은혜로운 길인지 어떤 것이 정말 잘 사는 길인지... 이런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중생의 삶에서 불보살의 세계로 사는것. 보이는 세계만 살다가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도 보고 산다. 죽으면 끝난다. 이것이 미한 생각이죠. 얼른 볼 때는 끝나는 것 같죠.
ㅇ죽음에 대해
첫째로 예외가 없다. 다 죽는다. 맞습니다. 다 죽죠? 저는 대종사님 생각도 많이 나는데요, 정산종사님 생가도 많이 나고. 대산종사님도 제가 안마도 많이 해드렸는데 돌아가셨고. 양산법사님도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제가 새벽 3시까지 못 주무시게 하면서 이것저것 느끼고 묻고 많은 얘기를 물어보고 가르침을 받았고, 같이 목욕도 했는데.. 양산법사님 누군지 아시죠? 제 방에 사진 모셔놨어요. 그리고 양도신 훈타원님. 제가 학교 다니면서부터 모시고 받들고, 방에 찾아가면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대종사님 당대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그런데 지금 다 안 계세요. 여기 앉아있는 분들도 다 간다는 얘기에요. 누가 제일 먼저 갈 것 같아요? 형님 될려면 먼저 가면 되. 먼저 가면 다음 생에 일찍 와서 형님 되거든. 하여간에 싹~ 가버린다.
둘째는 다 가는데 다 놓고 간다는 것이죠. 가져가는 게 있어요? 없어요? 육신도 놓고 가. 애지중지 애꼈던 집도 놓고 가. 돈도 놓고 가. 가족도 놓고 가. 싹 놓고 가 버리네. 통장도 놓고 가. 도장도 놓고 가. 쟁여논 것도 놓고가...
ㅇ참 나 = 가도 가지 않는 영원한 것
일차적으로는 다 간다는 것은 사실인데 언제 가는지 모르죠. 그래서 수도인들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게끔 잘 챙기는 겁니다. 그래서 일기를 쓸 때도 하루 저녁에는 싹 정리하고 내일 것 챙기지만 그 때 그 때 정리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자기 오빠 생일이라고 목욕하고 다 챙겨놓고 그러고 가버렸어. 언제 갈 줄 알아? 병으로 갈 지. 사고로 갈 지. 갑자기 누구에게 죽음을 당할 지. 뭔 일로 가든지 가신다. 딴 사람은 다 가도 나는 안 갔으면 좋겠는디...
보통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이 무엇이냐면 다른 사람 죽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나중에!!라고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미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하게 된다. 뭘 집착을 해? 내가 오래 살 것 같으니까 오래 살 것을 갖고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래서 명예에 집착해. 돈도 집착해. 욕심껏 부릴 것 다 집착한다. 그런데 웃긴 것이 뭐냐. 다 가지만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이것은 오고가고 할 것도 없습니다. 불생불멸이라.. 생긴 적도 없어서 멸할 것도 없고 여여자연 합니다. 우리의 영식이라 합니다. 우리의 영혼, 참 마음, 성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생긴 바도 없고 형체도 없고 무게나 맛도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생긴 바가 있으니까 반드시 멸합니다. 우리의 참 마음은 생긴 바도 없기 때문에 멸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보통사람은 어떠한 조그마한 나라는 것이 있는 줄 안다. 형체가 있는 것이 어디 들어있어서 죽으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실재로는 온 것도 없이 갈 것도 없는 것이 있다. 또 육신도 가족도 명예도 부도 빚도 통장도 차도 다 놓고 가지만 또 가져가는 것이 있더라. 그것이 뭐냐? 형상이 있는 것-이것은 가져갈 수 없겠죠. 형상이 없는 것-그것을 가져가는 겁니다.
아까 바쁘다 스님. 그 스님은 왜 바쁘죠? 곧 갈 것 같으니까 그거 준비하느라고 바쁘죠. 그리고 다 놓고 갈 줄 아니까 무형의 일심을 갖추는데 바빴다.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무식한지 몰라요. 이 부처님 법을 만난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어쩌다 보니까 나이를 먹었고 어쩌다 보니까 학교를 가고 결혼을 하고... 그렇잖아요. 흰머리 났다고 다 철 들었냐. 인생을 다 아냐. 행복하냐. 나이 들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가도 간 바가 없이 또 오는 것을 알고 다 놓고 가지만 영원히 가져가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쁩니다. 이런 것을 몰라가지고 흰머리 나가지고 종로에서 시간 때우고... 내가 마음이 아파요.
ㅇ바로 지금
언제가 제일 빠를 때여? 한 생을 놓고 보면 태교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영생을 놓고 보면 돌고 돕니다. 생노병사 생노병사... 이렇게 돌고 돕니다. 언제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까? 나이가 먹어가지고 젊은 놈을 쳐다보고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너 좋겠다. 이런 사람이 있다. 이건 잘못 됐죠. 젊을 때만 좋다는 생각이죠. 내 인생은 다 끝나버렸다. 하는 거잖아요. 그럼 나는 어떻다는 거에요? 내 인생은 끝났다-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영생을 놓고 보면 지금 현재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걸 아는 사람은 계속 바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ㅇ인과의 세계
일생을 엉망으로 산 사람이 있다. 나중에 이 법을 만나가지고 막판에 염불하면서 잘 살았다. 이 사람이 A, 또 B라는 사람은 잘 살다가 막판에 가서 ‘에이 착하게 살아봐야 도둑놈 천지고 다 끝났으니 나도 좀 놀아보자.’하고 잘 못살았다. 어떤 사람이 잘 사는 것일까요?
서가모니 부처님에게 누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배가 있다. 바다에 큰 배가 떠 있는데 거기에 큰 바위를 올려놨다. 그리고 동시에 작은 돌멩이를 바다에 던졌다. 이 두 돌멩이 중에 어떤 것이 더 빨리 떨어집니까? 작은 것이 물에 먼저 빠진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 타력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까 막판에 염불한 A라는 사람은 부처님이라는 타력을 이용한 겁니다. B라는 사람은 작은 돌멩이지만 금방 퐁당 빠진다. 최후일념이 최초일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보면 B라는 사람은 몸은 건강하지만 신심이 없어져버렸다. A는 몸은 무겁지만 타력을 입어. A는 지은 것이 없어서 가난하지만 마음은 착해. B라는 사람은 잘 닦아서 업을 많이 줄였지만(작은 돌멩이) 법을 버렸으므로 더 빨리 가라앉는 것입니다. B같은 사람은 복을 지었으므로 다음 생에 잘 살게 되지만 못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A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지만 가난하게 태어나는 거죠. 이것이 인과에 맞는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은 사람이 좋은데 가난하고 또 저 사람은 나쁜데 부자인가에 대한 인과적인 이야기입니다.
ㅇ예화 : 몽바우 이야기
전라남도 영광에 가면 몽바우라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장성 장에 다녀오라 라고 말했다. 오전 중에 안 보이더라. 오후에 다시 나타나서 물어보니 너 어디 갔다 왔냐? 물어보니까 ‘장에 가라고 해서 장에 갔다 왔습니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어이구 이런 미련한 놈아. 장에 가라고 했으면 무엇을 사오는지 물어봐서 사와야지 갔다오란다가 그냥 갔다오는 멍청한 놈이 어디있냐? 나무를 뺏어서 여기다 꿰고 다녀라. 그러다가 너보다 더 미련한 놈 있으면 채워줘라.’했다. 나중에 영감이 갈 때가 됐다. 시름시름 앓아. 몽바우가 주인할머니한테 돌아가실려고 하니까 얼굴 뵙고 인사드리겠다고 하니까 들어오라고 했다. 이 양반이 힘 하나도 없어서 나 이제 가게 생겼다. 그랬더니 이 몽바우가 ‘어디로 가십니까?’ 물으니 영감이 ‘모르겠다.’ / 그러면 ‘언제오십니까?’ ‘그것도 모르겠다.’ / 하니까 이 몽바우가 ‘나는 장성 장에 가라고 해서 갔고 오후되면 올 줄 알아서 왔는데, 당신은 어디로 가는지 또 언제 오는지 모른다고 하니까 나보다 더 멍청한 것 같소.’ 하면서 그 나무를 채워줬다.
이게 웃기는 얘기 같지만 내 얘기다. 내일 죽을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데, 때 되면 밥 먹고 성질나면 성질낸다. 그러면서 스님들이 공부하는 것 보면 저 사람들은 뭔 재미없이 그렇게 산다냐? 그런다. 내 친구들이 나 출가하니까 아까운 놈 하나 베려버렸다 그럽니다. 나중에 만나니까 너 뭔 재미로 사냐.. 합니다.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고. 내가 속으로 그랬다. 느그들이 내 재미를 알겠냐? 느그들이 재밌어 하는 것은 갈 때 다 갖고 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영원한 것도 아니다. 내 재미는 든든하면서 편안하면서 은은하면서 담백하면서 넉넉하다. 이 재미로 나는 방에서도 웃고 죽을 것이다. 내생에도 나는 이 재미를 계속 가질 것이다. 느그들은 재밌다가 언제가는 허망해서 눈물흘릴 때도 있을 것이다. 죽어서는 허망하게 죽기 싫어서 안타까운 얼굴이 많을 것이고, 내생에 정당하지 못한 것 지은 것 받을려면 애쓸 것이다. 속으로 니 재미랑 내 재미랑 같겠냐 하고 말았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언제 가실겁니까?
ㅇ천도는 살아서 하는 것
자... 천도는 죽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그리고나서 또 사후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도의 중요성은 생전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번시간에 이야기 했죠. 점수로 따지면 어떻게 될까요? 생전예수재라고 들어봤습니까? 미리 예. 닦을 수.. 생전예수재가 별것이 아닙니다. 본래 생사가 없는 자성자리를 깨달아서 그 자리를 기준으로 열심히 닦고 열심히 사는 것이 생전예수입니다. 37일동안 돈을 좀 놓고 재를 지내기도 하지만, 예수래라는 것은 살아있을 때 전체가 진리를 깨달아 일심을 챙기는 것이 생전예수재입니다.
ㅇ실지불공
그동안 종교가에서 보면, 특히 기독교나 불교에 다니신 어른들 보면 주로 무엇을 했어요? 삼일교회 인터넷 설교을 들어보니 맨날 기도 이야기만 합니다. 설교를 들어보면 현재 우리의 직장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 이런 것 보다는 교회 와서 기도하고 집에서 기도하고 날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만 한다. 옛날 절도 그렇다. 날마다 불공하고 기도하고 백팔배하고... 물론 중요하죠.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면서 영양분 섭취를 해야 한다. 사람은 영혼이 허공에 뿌리를 박아서 허공에 공을 들여야 맞다. 그런데 법문에 보면 실지불공과 진리불공이 7:1 밖에 안 된다. 아무리 기도를 강조해도 12.5%밖에 안 된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기도의 효과는 12.5%정도는 있다. 하지만 87.5%는 실지생활에서 불공을 잘 해야 된다. 실지불공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실지생활에서 불공을 잘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험생을 봅시다. 맨날 기도만 합니다. 떨어져버렸어. 그리고 또 공부만 합니다. 붙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100% 얻지를 못한다. 시험공부하는 사람도 기도를 하면서 시험공부를 하면 효율적이다. 옛날에는 음시대이기 때문에 기도의 위력이 3~40%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시대이기 때문에 '어떻게 실지불공을 할 것인지'를 잘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당에 와서도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지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람들 만날 때 일심을 잘 챙겨서 은혜를 많이 심을 것인가 어떻게 불공을 잘 할 것인가 원리를 공부해가는 것이 종교 생활을 잘 하는 것이다. 앞으로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속에서, 직장이나 학교 가정에서, 그 속에서 수도하고 수양하고 그 속에서 염불하고 취사하고... 그 속에서 신앙 생활이 된다. 앞으로의 종교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묵은 생각인지 아십니까? 다른 종교생활 하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 하면 거부반응이 나옵니다. 종교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겁니다. 생활 속에서 돈 벌고 새끼 키우고 공부하면서 그 속에서 수도하는 것이 새 시대 종교의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천도도 죽어서 천도만 생각합니다. 여기도 똑같다. 생전천도가 더 중요하다.
ㅇ천도의 시기
생전천도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1.평상시 살아있을 때. 2. 죽기직전.
사후천도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3.죽었을 때 4. 죽고 나서
천도를 가장 잘 하는 것은 첫째 인연공덕이 있어야 한다. 무슨 인연? 보통 인연에는 혈연이 있고 법연이 있습니다. 혈연은 가족 친척을 말합니다. 또 동료 등의 인연이 있겠죠.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법연이다. 법연도 상 중 하 법연이 있습니다. 위로 법연 옆으로 법연 아래로 법연. 그 중에서도 위로 법연이 가장 중요하다. 위로 법연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나 대종사님 종법사님 같은 큰 스승님입니다. 돈을 빌려도 마을금고에서 빌린 것하고 큰 은행에서 빌린 것하고 같겠습니까? 타력을 입는데 있어서 힘이 큰 사람에게 빌려야 한다. 이런 분의 타력을 빌려야 생전 천도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주위나 아래로 법연을 지으면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다. 혈연도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면 법연과 플러스 되는 것입니다.(가족교화) 한 법연이면 계속 만나게 됩니다, 가족이라도 한 명은 부처님을 믿고 한 명은 안 믿는다면 갈라지기 쉽다. 그래서 인연 공덕을 잘 지어야 한다. 주위에 인연공덕을 잘 짓는 것이 천도를 잘 하는 것이다.
아래로 인연공덕을 짓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화를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식을 교화해놨더니 내 천도재를 잘 지내 줍니다. 교화를 못 했더니 나 죽고 나서 교무님이 천도재 지내주러 집에 가니까 째려본다 이겁니다. 이러면 제대로 천도를 못 받는다.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나를 끌어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타력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인연복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쉬운 길인지 모른다. 보통 중생들은 어떻습니까? 가까운 인연이든지 가족이든지 친구든지.. 끝 마무리가 좋습니까? 부처님이나 봐주지 보통 인연들은 봐주지도 않습니다. 보통 인연들은 자기 주변 인연이 거의 성글어지게 끝납니다. 내가 제주도 국제훈련원에서 원불교 부부교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봤는데 이 중에서 7~80%가 이혼을 생각해봤다 이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하겠죠? 거의 다 마지못해 사는 겁니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친구랑 방 같이 써봐요. 어떻게 됩니까? 내 친구들도 동업을 하는데, 나중에서 누가 더 고생했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나중에 법원가고 곤란했다.
인연공덕이 생전 천도를 받는데 가장 중요한 겁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부처님을 안 만났다. 그럼 어떻게 살았겠어요? 인연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자 두 번째, 생전천도 하는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화분이 있는데 여기에다 물을 줘야 삽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죽은 나무라면 물을 백날 줘도 소용없습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준다는 것은 무언가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죽은 나무는 백날 천도를 해줘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믿음의 관계는 툭툭 통하고 이어진다.
全奪全與 전탈전여 : 진리가 전부 빼앗아 버리고 나서 전부 준다 이겁니다.
全信全受 전신전수 : 전부 믿어버리니 전부 받습니다.
半信半受 반신반수 : 자존심 상해서 반만 믿고 반만 받는다.
無信無受 무신무수 : 안 믿고 안 받는다.
대산종사님 법문 중에 있습니다. 전부 빼앗긴다고 그러죠. 사실 빼앗을 것도 없습니다. 원래 공이니까. 실체가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면 빼앗기기 싫지. 하지만 본래 육신도 참 나가 아니다. 나가 아니라 나의 코, 나의 눈.... 나의 소유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어요. ‘수행을 어떻게 하면 잘 하게 됩니까?’ 어떤 사람이 수행을 가장 잘할 것 같아요? 출가한 사람이? 그럼 재가는 엉망이에요? 출재가 상관없이 신심이 돈독한 사람은 하라는 대로 합니다. 信이라는 것이 사람의 말입니다. 여기서 사람은 성자이다. 성자의 말씀을 믿는 것이 신이다. 신앙 신성...
온통 믿으면 수행하고 싶다. 전신전수에 제가 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全信全修全受. 신심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출석으로 일단 알 수 있습니다. 아프다거나 거리가 멀다는 예외는 있겠지만 신심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행을 합니다. 그러면 받는 것이 있겠죠. 선물을 받습니다. 받는 것이 선물이겠죠. 여기서 무엇에 대한 신심이냐? 기독교는 하나님. 하나님이 진리다. 또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교법 스승 회상.. 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딴 것을 믿으면 나중에 허망합니다. 내가 돈을 왕창 모았어. 쓰나미가 한번 왔다 가면 어떻게 됩니까? 수재민이 되죠. 아무리 외부 경계가 와도 진리는 믿을 만하다. 내가 손해볼 것이 없다. 진리라는 것은 진리 당체를 말합니다. 진리 당체는 믿을만 하다.
저번에 토요일에 누가 나한테 질문했습니다. 국가에서 정책상 유흥을 장려해야 할 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상황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인과는 틀림이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든 국가 정책이든 관계가 없다. 인과와 영생의 진리는 변함이 없다.
교법은 무엇입니까? 원불교는 사은사요 삼학팔조. 교법은 믿을만 하다. 왜? 성자가 나올 때는 진리가 성자에 있고 성자가 가신 후에는 진리가 경전에 있다고 합니다. 그 경전에 나온 것이 교법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있죠. 스승이면 다 스승인가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스승은, 대산종사님 왈 여기서 스승이라 함은 성자의 위를 받은 正師. 법강항마위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스승의 법을 오롯하게 수행하고 전달하시는 분. 이 사람은 믿을만 하다. 그리고 스승이라고 해봤자 사람이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네 가지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스승입니다. 구전심수로 적재적소에 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당체의 위력이고, 교법은 하나의 원리다. 회상은 그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스승인 내 가려운 곳에 약을 발라줄 수 있는 분이다. 하여간에 원불교에 딱 들어왔다. 가장 빨리 은혜를 입고 진급하는 길은 스승님에 대한 신을 세우고 감정을 얻고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치부를 어떻게 보여줘? 합니다. 이 사람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나중에 경계가 오면 어디가서 딴짓거리하고 있습니다. 신심이라는 것은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모시고 받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상에 꽉 차서 못 비워. 그 사람은 자기 업장에 스스로 속은 것이다. 자기 업장에 눌리고 일어서지 못한다. 동굴 속에서 성냥 하나만 켜도 밝아진다. 한 스승이 조금만 자기에게 도움을 줘도 자기의 내면에 환하게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억지로 먹입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죠. 하지만 도가는 아닙니다. 신심은 자기가 내는 것입니다. 본인이 오프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소 끌고 냇가에 가서 물을 먹일려고 하는데 소가 안 먹을려고 하면 절대 먹이지 못한다. 서가모니 부처님이라는 성인이 있는데 조달이라는 사람은 서가모니 조카이면서도 8만4천가지로 부처님 흉을 보고 다녔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저희는 부처님 법을 들으면 좋은데 저 사람은 왜 저러냐고 물었다. 서가모니 부처님이 해가 뜰 때 저기 높은 수미산부터 비치지 않느냐. 부처님이 법문을 해도 상근기에 있고 지혜가 있고 역량이 있는 사람부터 알아보게 된다. 조달이라는 사람은 작으니까 어둡고 역량이 작기 때문에 온갖 해꼬지를 하고 그랬다. 대종사님 당대에도 그런 사람 많았다. 팔산님이 처음에 어떻게 신심이 났냐면 처음에는 불신한 상태였는데 어떤 사람이 대종사님에게 약속 했다가 어기고 객사하는 것을 보고 신심이 났다.
회상은 교단이나 교당을 말합니다. 모일 회. 윗 상. 회상은 모임의 가장 위를 말합니다. 가장 자기에게 이익이 될만한 모임을 말합니다. 가장 가치있는 진리의 세계를 밝힌 모임. 회상은 일원대도회상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영산회상. 법회도 하나의 회입니다. 원불교에 입교를 하신 분은 회상이 가장 윗모임으로 이미 약속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계모임..등등 그런 것은 회하나 회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것은 부처님 세계에 비하면 낮은 것이다. 신심이 없는 사람인 법회가 회하다. 교당이 내 집과 같아야 하는 겁니다. 믿음이 있으면 회상이 내 집과 같아진다.
이 네 가지가 둘이 아닙니다. 사대불이신심입니다. 이 네가지가 하나인 사람을 온통주인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 한 두 가지만 갖춰지면 부분주인이 되겠죠. 이중에 하나도 없으면 손님이 되는 거겠죠. 내가 손님도 많이 봤다. 그래도 걱정을 안 한다. 먹고 가서 빚이 있거든. 갚을려면 언젠가 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걱정이 업다.
음악과 휴식 : 보리상자
2부 : 교무님 설법
대종사님 말씀 중에 ‘믿음은 법을 담는 그릇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처님 법문을 말해도 믿음이 없으면 담지 못하고 다 흘러버린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그것을 받아내서 가치있게 쓰는 겁니다. 돌아가신 영혼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맨 처음에 인연이라도 지어주고. 정산종사님께서 이산 박정훈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이름을 지어주셨다. 법명을 지어주고 천도재를 지냈다.
천도재 시작할 때 댕댕댕댕 경종을 치면 사람들도 귀를 귀울이고 마음을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신심없으면 신경 안쓴다. 영혼도 똑같다. 법문을 해도 여기 앉아 있는 대상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 못 받은 영혼에게도 함께 한다. 영혼 중에서도 여기 있는 영혼은 그래도 신심있고 인연 있는 영혼이다. 천도재 지낼 때 누구누구 영가라고 부를 때 그 영가는 특별히 인연이 있어서 더 힘을 받는다. 그런데 천도재 지낼 때 인연도 없고 신심도 없으면 이 쪽으로 오지 않는다. 죽어있는 영가도 신심이 있어야 법을 받는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공덕, 복덕이라고 합니다. 천도에 있어서 공덕을 쌓는 것이 참 중요하다. 정신 육신 물질 세 방면의 공덕을 심어놓으면 그것은 어디에 저장되느냐? 하늘의 창고가 있습니다. 天庫. 이것은 쓰나미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천고에 쌓인 것은 이월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월되어 있는 것을 인연따라 받는다. 물질에 곳간에 많이 쌓아놓으면 곡식은 썩어버리고 도둑놈이 가져가고 불나면 타버리고 홍수에 쓸려버리고 재난을 당할 걱정이 있다. 그런데 타인, 이 세상에다가 공덕을 쌓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걱정이 더 없어진다. 하지만 물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걱정도 많아진다. 영원한 내 것이 없다고 그랬죠. 죽음을 맞이해서는 누구나 가고, 죽으면 모두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육신도 통장도 가족도 다 놓고 가는데 공덕은 가지고 갑니다.
어제 뉴스 보고 겁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계의 제일 부자가 빌게이츠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하는 일이 2008년 이후에는 이 회사를 누구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자선사업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자 워랜버핏은 다섯 개의 재단에게 기부를 하고, 그 중에 빌게이츠의 재단에도 냈는데 그 돈이 빌게이츠보다도 더 많이 냈다고 합니다. 나이가 28살이나 어린 빌게이츠에게 냈다. 원불교적으로 해석을 하면 저 사람은 자기가 쌓은 재산을 놓고 갈 줄 아는 사람이구나. 결국 자기 것 아닌 것을 알았다. 제가 오늘 겁나게 어려운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 워랜버핏이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한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이것은 부자가 탐욕에 빠져서 나누지 못하고 가버려기 때문에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신타원님 보세요. 그 사람은 복혜구족이다. 그 양반같이 복 많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고 그렇게 지혜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돈 있다고 목에 힘도 안주고 시간의 대부분을 법문 듣는데 쓴다. 쓰는 돈의 반 이상을 원불교에 쓴다. 집장만하자 기도터 만들고 일원상 봉안했다. 이런 분들은 인과의 이치에 따라 다시 복을 받는다. 세상을 오래 살면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워랜버핏이 '내가 이렇게 번 돈은 미국사회에서 번 것이다.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닙니다.' 라고 했다. 함께 벌었기 때문에 공공의 재산이라는 것이다. 원불교로 말하면 사은의 은혜이죠. 지공무사입니다. 사실 나도 없는데 내 것이 어디 있겠느냐? 그 사람은 인과의 이치를 알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36조를 냈다. 자기 전 재산의 85%다. 그 사람이 빨리 기부한데 사연이 하나 있다. 와이프가 먼저 죽은 것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와이프가 자선 사업을 하기를 바랬는데 와이프가 먼저 가버렸다.
종법사님 법문을 보면 역사적으로 큰 일을 한 사람을 보면 공도리를 안다고 합니다. 워랜버핏도 마누라가 죽은 것을 통해서 ‘아~~ 허망하구나. 공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공덕은 자기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영혼이 생을 마치면 처음에 가는 곳은 착심이 있는 곳입니다. 돈에 착이 있는 영혼이라면 딱 죽으면 곳간으로 가겠죠. 곳간에서 무엇이 되겠습니까. 쥐새끼같은 게 되겠죠. 지혜가 있으면 쥐한테 안 가는데 지혜도 없으면 쥐가 좋게 보인다. 육도에서 한 번 축생 몸 받으면 언제 사람이 될 것이냐? 똑같이 쥐를 받았어도 어떤 쥐는 잘 먹고 어떤 쥐는 못 먹는다. 그것은 착을 따라 갔지만 복을 지은 것이다. 옛날에 임금. 얼마나 잘 지었으면 임금이 되었겠느냐. 수도를 많이 해서 임금이 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지막에 타락을 해서 흥청망청 하다가 죽었다. 그럼 다시 받아야지? 자기는 백성을 위해서 별로 한 것이 없는데, 백성들이 땀 흘려 일한 것을 먹었으면 가난하게 된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면 전생에 복을 과히 취한 것입니다.
인과를 아는 사람은 현재 부자라고 하더라도 생산적인 일을 계속 합니다. 복을 계속 짓는 것입니다. 진급을 계속 하자는 것이죠. 모르면 돈 많다가 팍팍 쓴다. 그러면 강급한다. 인과를 아는 사람은 내가 번 돈도 사은의 속에서 번 것이고, 있다고 해서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지장보다는 복장 덕장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중요한 것이지만 복이 더 중요하다. 복이 있으면 지혜도 땡겨 쓸 수 있습니다. 천도함에 있어서 정말 좋은 것은 복덕을 짓는 것입니다. 원불교에서는 무루의 복을 지어야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대중에게 공을 지을 줄 안다. 자기가 지은 것보다 더 많이 받으면 마이너스가 되서 빚이 된다.
마지막은 수행의 공입니다. 인연이 있어도 신심이 있어도 공덕이 있어도 천도의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런데 생사를 해탈하고 생사를 자유할 수 있기 위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는 길이다. 다른 것은 인연을 만나야하지만, 수행은 자기 힘으로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바쁘다 스님 같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감도 다 익으면 떨어질 것 같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힘, 본인이 탐 진 치에 묶여 있느냐. 계 정 혜 삼학의 힘이 있느냐. 십이인연에 자유할 수 있다. 이것에 따라서 천도가 달라집니다.
대개 딸이 태어나면 아버지의 연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아들은 어머니 연으로 태어난다. 대종사님 법문을 보면 보통 사람은 색정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므로 딸이 아버지 연으로 태어났어도 어머니와도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뽀나스로 하나 더
맨 마지막에 영혼을 마칠 때 청정일념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서원을 가지는 것이다. 서원을 착심을 가질 정도로 가져도 좋다. 서원 중 가장 좋은 것은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서원이다. 서원은 묘하게 가는 힘이 있다. 수행의 힘이 있는 청정일념은 가는 것을 툭 놓아버릴 수 있다. 그래서 십이인연을 굴리고 다닌다. 태중에 들어갈 때부터 힘이 있는 영혼은 자기가 선택해서 간다. 큰 스님들은 부모 몸에 늦게 들어간다. 태중에 오래 있을수록 매해진다. 뱃속에서 일찍부터 발로 통통 차는 놈은 영혼이 일찍 들어간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직 안 들어간 것이다. 영 기 질이라고 한다. 몸은 있어. 기운으로 크는 것이다. 마치 호박같이. 호박은 영혼이 없죠? 그런데 커. 무엇으로? 기운으로. 영혼이 늦게 들어가면 있는 듯 없는 듯 큰다. 수행을 많이 한 큰 스님들은 부모도 자기가 정해서 들어간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까 바쁘다 스님처럼 바쁘다. 현재 잘 사는 것이 잘 죽는다는 것을 안다. 인도에서는 고와 락이 반반이라고 했다. 반반도 잘 산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 인연들은 다 일찍 가지도 않고, 자기도 다 잘 풀릴 줄 안다. 자기도 오래 살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수행의 힘을 얻어서 불생불멸의 힘을 깨쳐서 얻어야 한다. 이것을 무량수라고 한다. 염불할 때 나무아미타불 하는데 무량수각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삶에 가겠다는 말이다.
ㅇ새로 오신 분
첫댓글 후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호겸 형님 감사합니다.
요지가 눈에 잘 들어오는 후기입니다. 차분하게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