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오름짓은 안녕하십니까 글 노규엽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암장은 1988년 사레와 장비점에 설치된 외벽 암장으로, 이후 스포츠클라이밍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전국적으로 부족함 없는 실내ㆍ외 암장이 만들어져 있다. 도시 인근의 공원, 다이빙장에까지 암장을 만들어놓은 유럽과 미국에 비교하면 아직 조금 못 미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300개에 가까운 인공암장이 만들어진 점은 국내에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졌는가를 짐짓 예상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 세월 속에는 생겼다 소리 없이 사라진 실내암장, 허연 벽을 드러낸 채 흉물로 변해가고 있는 외벽의 모습도 존재한다.
김자인 선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의 국제 대회 성적과 재미, 운동효과 등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빛을 보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의 이면에는 인기가 높아지면서 생겨난 거품의 찌꺼기도 남았던 셈이다. 지금은 스포츠클라이밍이 몸을 불린 수치적 증거만 볼 것이 아니라 각기 제 역할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볼 때이다. 실내 암장의 경우 볼더링 위주의 낮은 벽을 오르내려 안전사고의 위험이 적은 편이다. 암장 별로 다양한 프로그램 생겨 한국의 스포츠클라이밍은 자유등반의 바람이 불며 새로운 방식의 등반 행위를 즐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는 당연히 기존 산악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게 일반적이었고, 꾸준히 연습하여 더 높은 난이도를 오르고픈 욕망에 이끌리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 지역을 시작으로 실내암장들이 만들어졌다.
이는 대체로 개인이 설립한 암장들로, 기술을 가르치거나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바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공간’이 필요해 생겨난 측면이 컸다. 개인암장들은 유료 또는 무료로 운영되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산악인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지며 입문을 희망하는 사람들이나 운동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도 암장을 찾아들었고, 차츰 개수가 늘어나 기업과 개인이 관리하는 실내ㆍ외 암장 외에 지자체가 관리하는 암장도 생겨났다. 스포츠클라이밍의 개념이 정립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여가를 즐기기 위한 생활스포츠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렇게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암장을 관리하니 인근 학교에서 연계 수업을 진행하기도 수월하고 자연스레 주민들에게 홍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개장하여 목포산악연맹과 목포시가 함께 관리하고 있는 목포국제클라이밍센터에서도 스포츠클라이밍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강습회를 진행하고 있는 등 기존 개인 암장들의 실내 공간만이 아니라 실외에 설치된 외벽에서도 스포츠클라이밍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관련 정보 156P 참조).
과연 인공외벽은 안전한가?
불안한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겉으로 보기에도 추락 시 큰 부상을 피할 길이 없는 외벽 형태의 실외암장이다. 먼저 실외암장이라는 시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불분명하다.
대전 인공암벽장이나 목포국제클라이밍센터 등의 경우 체육시설로 분류하여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관리자들도 정확히 어느 시설로 규정되어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에 자문한 결과로는 대부분 조경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조경 시설로서의 관리가 사람이 오르내리며 운동을 하는 인공암장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일반인들도 자주 즐기는 생활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안전도 검사에 관해서도 기준이 없어 관계법령 마련이 시급하다.
실외암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의 관리방법을 들어보면 “정해진 기준은 없고 암장을 관리했던 경험이나 경험자들이 축적한 노하우를 듣고 따른다”고 말한다. 하루에 10명이 이용하든 1명이 이용하든 단 한 번의 사고가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실외암장인데, 명확한 관련법규나 규정이 없는 것은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그래도 관리자가 있는 곳은 안전한 편이다. 대전 월드컵경기장 내에 위치한 대전 인공암벽장의 경우는 이용시간 종료와 함께 문을 걸어 잠그고, 야간 경비원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체크를 하고 있어 관리자 부재 시의 등반행위를 막고 있다. 목포 국제클라이밍센터의 경우 출입구가 오픈되어 있어 문을 닫지는 못하지만, 관리자가 나오지 않을 때는 2m 높이까지의 홀드를 떼어놓아 무방비로 등반하는 행위를 막고 있다.
관리자가 24시간 동안 상주하며 지킬 수는 없지만 나름의 안전 수칙을 통해 사고를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관리주체가 없는 외벽의 경우다. 한 예로 숙대입구 지하철역 10번 출구 옆에 위치한 인공외벽은 몇 년째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목포 외벽처럼 낮은 지대의 홀드는 제거해놓고 ‘붕괴 위험 등벽 금지’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지만, 매일 들여다보는 관리자가 없는 이상 언제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숙대지하철역 외벽의 경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암장이 아니고 오랜 세월 발길이 끊어졌다지만, 벽이 세워져 있는 이상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문제로 한창 시끄럽던 것에 이어 등반 도중 사고가 일어나며 무분별한 암장 관리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암장을 관리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등반 능력과 경험 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분명한 기준이 없는 탓에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인천 문학경기장에 설치된 인공암장이 현재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관리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담당하는 관리자가 없이 지역 동호회의 자격증 소지자에게 부탁해 이용 중 개선사항이 있으면 통보를 받아 수리 및 유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름의 관리 기준은 존재하지만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실외 암벽에 고정 관리자가 없는 점은 사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충북 제천시 청풍의 광장에 있는 인공암벽장도 관리자가 없는 실정이다. 이곳은 지난해까지 제천산악연맹에서 위탁받아 관리를 해왔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지역 동호인들의 민원이 제기되어 올해 이전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예산이 나오지 않아 암장 이전이나 철수를 하겠다는 계획만 남은 채 무료 개방되어 있는 상태다. 언급한 몇몇 곳만이 아닌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외벽 암장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 관련 부서에서의 시정이 시급하다.
20여 년간 암장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지만, 암장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격증 소지자는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외벽암장은 언제든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시설이기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국내에 설치된 외벽 중 제대로 된 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전 인공암벽장을 관리하고 있는 최형찬씨에 따르면 “시설물 보험을 들어놓아 설치구조물 파손 등에 의한 사고에는 보험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내용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상해보험은 적용되지 않으므로 이용자에게 ‘개인 상해는 개인 과실’임을 증명하는 서약서를 받고 이용을 허가하고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목포국제클라이밍센터를 관리하고 있는 박진섭씨는 “어떤 건물이 들어서고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이면 당연히 상해보험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 평균 30명에 이르는 인원이 이용하거나 국내ㆍ국제 규모의 대회를 치르는 외벽 암장은 안전보장에도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보는 외벽 암장은 보험을 적용할 기준이 불분명해서 보험 적용은 힘들다는 눈치다.
박진섭씨에 따르면 “자문을 구한 결과 올해부터 바뀐 법령에 따라 맞춰볼 기준이 있다고 말해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과연 긍정적인 결론이 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암장 관리가 잘 되어야 미래도 있다 그렇게 지어진 암장은 보기 좋은 조경물에 불과할 뿐, 실제 등반 행위를 즐기기 어렵다면 필요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생활체육화를 위해 암장이 늘면 늘수록 좋다고 말하는 대전 인공암벽장의 최형찬씨도 “만드는 일에는 적극 찬성한다. 단,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서 활용할 수 있는 암장을 지어야 한다”는 뜻을 밝힌다. 대충 지은 암장이 이용빈도가 떨어져 결국 흉물이 되고 마는 운명을 익히 봐왔기에 나오는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 외벽은 비가 오거나 겨울이 되면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운명을 지녔다. 목포처럼 외벽과 실내암장이 함께 있어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구성해도 교육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도 스포츠클라이밍 발전을 위한 열정이 아니면 선뜻 나서기 꺼려지는 분위기인 것이다. 관리자가 대우를 받는 만큼 유지가 잘 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논리다. 전시효과를 위해 외벽을 설치한 후 되는대로 운영하는 식의 행정을 넘어, 스포츠클라이밍 활성이 대국민 차원의 서비스라는 점을 국가가 인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니다. 한국대학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인 김인경씨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망주 선발과 훈련 프로그램 제공 등 소프트웨어에 관한 업무를 늘려야한다”며 “나아가 전문 연구기관 및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운영하고 지도할 수 있는 코치와 감독 등의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한다”고 말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는 내실도 다져 그에 걸맞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주말의 인공암장을 나가보면 성장기의 어린이들도 홀드를 잡으며 오르기를 열망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이 걱정 없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이 진정한 스포츠클라이밍 강국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 외벽 형태의 실외암장은 사고의 위험이 많으므로 설치구조물 관리 및 보수를 담당하는 관리자가 있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