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우리와 아담의 관계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사도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담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현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과 어떤 관계인가?
- 아담과 전 인류와의 정확한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요한 답변이 있다.
① ‘사실주의적 관점’- 아담이 인간 본성의 총체이다. 그 한사람 아담 안에 모든 인간의 본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그 안에 전 인간성이 있었고, 그 이후 모든 사람 속에 있었던 인간성은 아담 안에 있었던 이 전체 인간 본성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그의 지체들로 있었다. 전체가 행동했을 때 부분들은 필연적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이 전체 내의 각 부분들은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할 때 저지른 그 범죄와 함께 저질러졌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기독교 내의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저는 인간 본성을 수리적으로 나누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고, 또한 각 개인의 인간 본성은 아담 안에 있었던 본래의 전체 인간성의 파편들에 불과하다고 하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주장은 히브리서 7:1~10을 근거로 한다. 특히 9~10절, “또한 10분의 1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10분의 1을 바쳤다고 볼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이 그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칠 때 레위는 이미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던 것처럼 아담이 범죄하여 율법의 정죄와 그 벌 아래로 들어갔을 때 전 인류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이 아담(과 전 인류)에게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담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 ‘사실주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일(아담에 대한 우리의 관계와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은 분명히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
② ‘대표적인 관점’- 아담은 우리의 연대적 머리요, 대표라는 것. 연합적 의미에서의 연대원리를 강조한다. 아담이 인류의 ‘자연적적인’ 머리일 뿐 아니라 그에 첨가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전체 인류의 총수요 대표로 여겨주셨다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복종하면 아담 개인으로 큰 축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모든 그의 후손들도 그 축복을 누릴 것이고 만일 죄를 지을진대 그에게서 나올 모든 사람들은 아담에게 임할 파국과 비참에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의 죄를 자손에게 주어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
- 분명한 것은 첫째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인 것처럼 아담이 우리의 대표라는 것이다. 둘째는 ‘생태적 동일성’으로 레위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 허리 안에라는 것은 정액 속에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 씨로 나왔고 그것을 방편으로 하여 생산되었다.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가지 말고 성경이 가는데 까지만 가야한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여기서 우리 모두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을 때 지은 아담의 한 범죄사실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담의 그 한 죄를 우리 자신들을 포함한 전 인류에게 전가시켰던 것이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그래서 우리 모두 죄지은 것이다. 이는 원죄교리의 진수이다.
우리는 세상의 첫사람 아담과 우리의 관계에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을 의심할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도 똑같이 의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저에게 “아담의 죄가 내게 전가되다니 그것이 공정한 것인가?”라고 한다면 저는 그 대답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가되는 것이 공정한가?”라고 묻겠다.
가장 현대적인 주석가들은 이 관계들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그들은 ‘로마서 5:12~21은 전형적인 랍비투의 교훈에 불과하다. 과학과 인류학은 그것이 불가능하며 처음에 한 사람 아담만이 있었던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같은 한 개인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창세기 3장의 내용은 실제적인 역사가 아니다. 바울은 무지하여 큰 실수와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복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복음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죄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율법주의적인 유대 사상이요, 공의와 진노와 심판에 관한 모든 사상들은 다 틀린 것이다.
만일 사도가 어느 하나의 문제에라도 실수를 범하였다거나 단지 그 당시의 무지 때문에 그러했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안 믿을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결국은 자신을 결정의 권위자로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마다 주장들이 다른 것이다. 그들은 학식과 학문을 자랑하지만 그들의 목장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영혼은 한 영혼도 없다. 그런 가르침은 교회들을 비웃는 일 밖에는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이해력과 이성을 최종적인 규제와 최종적인 권위로 내세우기 시작할 때 따라오는 결과가 그렇다.
성경의 권위란 무엇인가? 사도들의 권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인 문제이다. 이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벧후 1:21).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을 언급하며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의 교훈’에 관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벧후 3:15~16)고 했다. 그는 바울의 서신들은 ‘사사로운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에게 독특한 권위를 부여했다. 사도 바울 자신은 자기가 가르친 것이 그 자신의 교훈이나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계시에 의해서 받은 것이라 했다(갈 1:11~12). 에베소서 3장에서 그의 모든 교훈은 그와 다른 사도들에게도 나타난 바 된 것이라고 말한다.
-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이는 사도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의 진술은 아담과 아담 안에서의 우리의 타락은 역사적 사실성에 대하여 말하며,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우리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유사성)
① 하나님은 아담을 우리의 머리와 대표로 지명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신약의 여러 곳에서 보듯이 그의 사역과 우리의 대표됨을 위해서 보내셨고 지명하셨다.
② 그가 인류와 인간성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양편에 다 해당된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니라”(45절).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다. 인류에게는 두 머리만이 있을 뿐이다. 첫째는 아담이었고, 둘째요 마지막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마지막 아담이다. 그리스도 다음에 그를 이어올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고 인류의 머리로 지명 받는 다른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③ 아담과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으므로 각자는 언약적 머리이다. 아담과 맺은 언약은 이렇다. “네가 어떤 조건들을 지키는 한 나와 교제의 삶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저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금지조항이다. 만일 네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를 자기 백성의 머리와 대표로 지명하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언약은 만일 그가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면 그는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율법에 복종하여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고 이 백성들의 죄를 지시고, 그들의 담당할 벌을 담당하시면 그들은 해방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될 것이다. 그것이 구속언약이다.
④ 각자 그의 모든 자손을 대표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1~22)
⑤ 각자 자기가 한 일의 효과와 열매들을 자기 자손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아담의 죄와 그 결과들은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미쳤다.
아담이 오실 자의 모형 혹은 표상이 되는 것은 이런 방면에서 이다.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값없는 선물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더욱더’ 널리 알리고 그의 성품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