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 임진(1592,만력 20)
6월29일 (정사)
25-06-29[08] 비변사가 의병을 모아 싸운 정인홍·김면·박성·곽재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 장령 정인홍(鄭仁弘), 전 좌랑 김면(金沔)·박성(朴惺), 전 참봉 노흠(盧欽), 유학(幼學) 곽재우(郭再祐)·전우(全雨)(주1)·이대기(李大期) 등이 변란을 듣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어나 모의하여 의병(義兵)을 모아 기어이 왜적의 무리들을 섬멸하기로 작정하였으니, 그들이 뜻이 지극히 가상합니다. 모두 서용하여 후래를 권장하는 것이 좋겠으며, 혹 죄를 받고 있는 중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죄를 면해주어 의거(義擧)를 돈독히 해주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듣건대 나주(羅州)에 거주하는 부사(府使) 김천일(金千鎰)도 역시 의병 7백여 명을 모아 곧장 경성(京城)을 수복하기 위해 이달 13일 천안(天安)에 당도하였다고 하니, 이 사람에게도 급히 관직을 제수하여 권장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원전】 21 집 508 면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原文]
○備邊司啓曰: "前掌令鄭仁弘、前佐郞金沔ㆍ朴惺、前參奉盧欽、幼學郭再祐ㆍ全雨ㆍ李大期, 聞變投袂, 謀聚義兵, 期勦賊徒, 其志極爲可嘉。 皆可收敍, 以勸後來, 或在罪辜之中者, 亦宜洗滌, 以敦義擧。 且聞羅州居府使金千鎰, 亦聚義兵七百餘名, 直欲收復京城, 本月十三日, 當到天安云, 此人亦宜作急除職, 以勸之。" 上從之。
(주1)전우(全雨)
[요약정보]
자 시화(時化)
호 수족당(睡足堂)
생년 1548(명종 3)
졸년 1616(광해군 8)
시대 조선중기
본관 전주(全州)
활동분야 호국 > 의병
[상세내용]
전우(全雨)에 대하여
1548년(명종 3)∼1616년(광해군 8). 조선 중기 의병‧유학자. 자는 시화(時化)이고, 호는 수족당(睡足堂)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경상남도 합천(陜川)이다.
부친은 탁계(濯溪) 전치원(全致遠)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웠고 순진하였으며,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다. 제갈공명의 ‘초당서수족(草堂書睡足)’에서 편액명을 따 ‘수족당(睡足堂)’이란 정자를 짓고 산수 속을 소요하였다.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자암(紫巖) 이민환(李民寏)‧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무민당(无悶堂) 박연(朴絪)‧오봉(五峰) 이호민(李好閔)‧대암(大庵) 박성(朴惺) 등과 같은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친 전치원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왜병과 싸운 공으로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와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주2)에 제수되었으며, 사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
(주2)중림도[ 重林道 ]
유형 제도
시대 조선
성격 교통로, 역도
폐지일시 1895년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인천의 중림역(重林驛 : 仁川)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내용
중심역은 역승(驛丞)이 소재하였으나 뒤에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관할범위는 양천(陽川)-시흥(始興)-안산(安山), 양천∼부평(富平), 양천∼통진(通津), 양천-시흥-인천 등에 이어지는 역로이다.
이에 속하는 역은 인천의 경신(慶信), 시흥의 반유(盤乳), 안산의 석곡(石谷), 양천의 금륜(金輪)·남산(南山), 통진의 종생(終生) 등 6개역이다. 뒤에 경신역은 혁파되었다. 중림도 소속 역은 모두 소로(小路 또는 小驛)에 속하였다. 이 역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