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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믿음에 이르는 길, 기도와 말씀이라는 탄탄대로
믿음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분은 어떤 수단이나 방법 없이도 능히 일할 수 있는 분이시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규정된 그 방법들이 믿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분의 손에 사용되는 도구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분이 없이는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분께서도 이런 방법들 없이 그분의 일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믿음의 역사(役事)는 그분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규정하신 방법 안에서만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음은 두 가지 방법인 기도와 말씀 청취의 목적을 위해서 지정된 수단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그 수단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몇몇 특별한 방향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기도라는, 믿음에 이르는 대로(大路)
기도는 주님을 구하고, 발견할 수 있는 길(大路)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겔36:26 참고).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부족함과, 그 믿음의 필요성과 믿음이 없는 비참한 상태를 알게 된 당신은, 하나님께 부지런히,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무슨 기도를 하든지 특별히 믿음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영혼의 생명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1) 열심으로 하는 기도
당신이 게으름을 피우며 허영과 불필요한 일에 썼던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그 시간을 회복하는 데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믿음은 세상, 즉 당신의 즐거움과 양식보다, 혹은 당신의 육신과 생명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생명은 바로 이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을 위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밤낮을 가리지 말고 그분을 찾으십시오.
2) 끈질긴 기도
정죄 받은 죄인이 사면을 구걸하듯이, 하나님께 믿음을 구하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죄의 사면도 없습니다. 마치 가슴에 칼이 들이대어 있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생명을 위해 간청하듯이 하나님께 믿음을 간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생명을 구하면서 우십시오.
3) ‘불신자가 기도할 수 있는가’라는 반대와 이에 대한 대답
① 반대의 근거가 잘못되었습니다
반대의 근거는 불신자의 기도가 죄이기에, 그들이 기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는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불신자는 기도하면서도 죄를 짓지만, 기도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태도에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 그 행위와 본질은 불신자에게도 의무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기도를 잘못하는 데 있습니다. 기도는 그에게도 요구되는 것이지만, 요구하는 태도로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의 기도에는 가증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 자체가 가증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선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그분의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그 명령에 순응하는 데 있어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대로 기도하지 않았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도의 행위가 기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순종의 방법으로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불신자들은 기도를 하든지 않든지 간에 죄를 짓습니다. 이런 경우 죄를 덜 짓는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의무로 부여하셨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불순종입니다. 하기는 하되, 옳지 못한 방법으로 하는 것은 부분적인 불순종입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에 실패한 것은 그에게는 피할 수 없는 불순종입니다.
⒞불신자의 기도가 죄가 되기 때문에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면, 신자들도 기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들도 기도하는 데 있어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사람이라도, 기도해야 할 올바른 태도로 기도하는 데는 많이 부족합니다. 불신자들이 기도하면서 죄를 짓지만,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것이 훨씬 죄를 덜 짓는 것입니다.
⒟만약 불신자가 자신은 기도하면서도 죄를 짓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한다면, 같은 이유로 그는 모든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가 죄를 짓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일들도 모두 하지 말아야 합니다.
② 기도는 모든 인간의 의무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회심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십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찾고, 부르라고 하십니다(사55:6 참고). 이사야 55장 7절은 악하고 불의한 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악인과 불의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그분을 불러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을 무시하는 불신자에게 경고하십니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선지자의 저주와 시편에 나타난 저주는 경고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무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박할 수 없는 예가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부르심으로 요엘 선지자는 악한 자들에게 기도의 의무를 다하도록 명령합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으로 그들을 잘라 버리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들 모두는 기도에 참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악한 죄로 여기십니다
이것을 가장 크고 흉악한 죄로 여기십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을 멸시하는 교만한 행동으로 여기십니다(시10:4 참고).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모두 내던져 버리는 죄, 하나님의 신성을 더럽히는 죄로 여기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이를 무신론으로 여기십니다.
⒠기도는 본성적인 경배의 행동입니다
기도는 모든 사람이 본성적으로 마땅히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행동입니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몸부림입니다
③ 믿음이 없더라도 기도로 주님께 말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의 기도를 부분적으로 받으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을 그의 기도와 함께 온전히 받으십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기도는 부분적으로 받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불신자의 기도도 들으십니다
비록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듣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마술사 시몬에게 기도하라고 이런 격려를 했습니다(행8:22 참고). 니느웨 사람들도 기도하도록 격려받았습니다(욘3:9 참고).
⒞주님께서는 일시적인 축복을 위해서 간청하는 것보다는, 영적인 자비를 위해서 드려지는 기도를 더 높게 평가하십니다. 그런 기도가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의 뜻에 적합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간청이 여기 주목할 만한 예가 됩니다.
⒟자연인이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불신자가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구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기도를 더욱 귀하게 여기십니다.
4) 기도에 동원할 수 있는 항변과 청원의 지렛대들
신자는 실제로 많고 강한 항변들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들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가지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성실하심이 약속된 그 언약을 가지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중재를 가지고 청원하며, 그분의 구속과 중보를 가지고 청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청원에는 강한 능력과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지각 있는 죄인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두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간청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는 ‘내 아들이 심히 고생하여’라고 말하며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 간청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②그리스도의 자비에 탄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리의 청원입니다(눅18:13-14 참고). 비참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자비는 헛된 것입니다. 악하고 혐오스러운 피조물에게도 자비가 임합니다. 자비는 값없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자비의 본질이며 특징입니다. 자비는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비의 깊이는 그 무엇에 비할 데 없이 아주 깊습니다.
③달리 도와줄 자가 없음을 아뢰십시오
이것은 가장 가난하고 무기력한 사람, 즉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사람의 청원이기도 합니다(요5:6-7 참고).
④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청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뜻은 죄인들을 믿음으로 나오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믿는 것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⑤‘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의 혈통을 가지고 청원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지각 있는 죄인은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선물이므로 요구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믿음이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무가치한 자에게도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⑥가장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이 믿음을 소유하게 된 예를 가지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린 여인이 약속의 성령과 믿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못 박은 사악한 자들이 믿게 되는 은혜를 발견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자들 가운데 수천 명이 그러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⑦비록 가장 낮고 비천한 상태라도,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탕자의 일화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눅15:18-19 참고).
⑧그리스도의 기도를 가지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믿는 자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아직 믿음을 가지지 않는 자들과 믿음의 길에 접어들지 않은 자, 혹은 아직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⑨마음이 딱딱하고 거절당한 죄인에 대해 그리스도의 연민을 가지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많은 연민을 가지신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연민을 가지셨기에 보고 우셨습니다.
⑩이미 시작된 성령님의 역사들로써 청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즉 성령님의 작품인 영적인 건축물을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⑪주님께서는 비이성적인 피조물에게도 관심을 보이신다는 점을 들어 청원할 수 있습니다
사자와 까마귀도 돌보시는 그분께서 죄인의 멸망하는 영혼을 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⑫믿음의 필요성을 가지고 청원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2)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분을 찾는 사람을 발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 듣는 말씀이, 믿음에 이르는 대로(大路)
믿음에 도달하는 다른 길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방법으로서, 믿음에 도달하는 목적을 위해서 그분께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자신의 종의 말씀 사역을 통하여서 믿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자가 믿도록 하는 것은 성령님의 말씀 사역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아볼로와 바울과 같은 복음의 사역자는 ‘믿게 한 사역자들’이라 불립니다(고전3:5 참고). 그리고 선포된 말씀은 ‘믿음의 말씀’이라고 합니다(롬10:8 참고).
주님께서는 이 수단의 필요성을 로마서 10장 14절과 15절에서 단계적인 변화로 나타내십니다. 거기에는 보내심이 있고 전파하는 자가 있으며, 전파하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믿는 것이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라는 결론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인 말씀을 듣는 것이 없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주님께서 이 일을 특별한 방법으로 하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적보다는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 더욱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히려 말씀의 사역만으로 기적 없이 믿음의 역사를 이루셔서, 지금까지 그 말씀의 사역을 영광스럽게 하신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의 사역으로 모든 세대 가운데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기적이 사용되었을 때는, 오직 말씀에 종속된 것이 믿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주님께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무릎을 꿇었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아나니아에게로 보내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믿음에 도달하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주님께서 특별하고 기적적으로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실 때에도, 말씀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믿음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1) 말씀을 듣는 일에 부지런하십시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특별히 주님께서 구별하신 날에 주어지는 말씀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런 기회를 등한시하는 것은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 말씀을 보다 귀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말씀의 무시는 자신이 믿음이 없으며, 또한 앞으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할 위험을 가지게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님이 없이는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항상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들을 때와 듣는 장소,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만 임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2) 말씀과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만약 악한 영이 사람으로 듣지 못하게 방해할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견으로 가득 차게 하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않을 때만큼이나 유익을 얻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편견은 부패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자라납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이러한 편견의 뿌리를 스스로 뽑아 버릴 수 없습니다.
3) 관심을 끄는 말씀에 보다 깊은 주의를 쏟으십시오
가장 당신의 관심을 끄는 말씀은 아마도 당신의 영혼의 상태에 가장 적합한 말씀일 것입니다. 불신의 상태에서 가장 적합한 진리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씀일 것입니다.
첫째, 불신자의 죄악과 비참한 상태와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죄가 그를 비참한 상태로 이끌었고, 자신의 무능력함이 그를 그런 상태로 계속 머물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성적인 인간의 마음과 삶에는 죄가 많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씀에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또한 인간의 삶에도 죄가 많음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삶 속에서 죄는 계속하여 자신을 거스르는 반역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모든 생각이나 언어나 행동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모욕하는 것이 되며,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 주님께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불신자의 비참한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말씀에는 불신자가 율법의 저주와 위협 아래에 있고, 사형 언도를 받은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의 정의가 그를 따라다니며, 가장 높은 분의 진노에 노출되어 있고, 매 순간 지옥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불신자의 무능력함을 보여 주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말씀 안에는 자신이 이 죄를 스스로 떨쳐 버릴 수 없고, 그 저주에서 도망할 수도 없고, 사형 언도를 철회할 수도 없으며, 정의를 만족시킬 수도,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도,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 그 말씀은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로 향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용하기를 힘쓰십시오. 말씀이 당신의 양심에 들어와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할 때, 당신이 진정으로 믿음을 원한다면, 회개하도록 무릎을 꿇고 그 말씀을 당신에게 적용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저는 이처럼 하나님을 성나게 하는 죄악 된 마음을 가지고, 죄악 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 있으며, 저를 향한 위협들을 가지고 있고, 사형 언도가 내려졌습니다. 정의가 항상 저를 밝히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항상 제 옆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상세히 적용될 때, 영혼은 자신의 죄와 비참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수긍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 죄인에 대한 사탄의 소유권이 사라지고, 믿음을 향한 올바른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앙을 수긍하는 것은 믿음을 향한 선한 발걸음입니다. 사탄도 이를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하여서 죄인의 회개를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고통받는 길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을 피하는 길입니다. 또한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길이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치료를 받도록 하며, 당신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의사에게 더 빨리 나아가도록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믿음을 원하고 당신의 영혼을 사랑할 때, 회개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말씀의 회개케 하는 능력에 기꺼이 굴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죄를 회개하도록 보내신 성령님께 저항하지 마십시오.
셋째, 모든 것을 만족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은혜의 부유함에 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알게 되는 그때가 바로 말씀을 통해 자신을 길르앗의 유향으로 인도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 길르앗의 유향은 그리스도께서 상처 입은 죄인들의 치료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불신앙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볼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인이시며, 믿음을 완성하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의 때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도록 하신 바로 그때,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자신의 모든 죄를 속죄하며, 비참한 상태에서 회복하기에 충분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 자신의 의로움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완화시키고 소망을 높이며, 사모함에 사모함을 더하고 자신의 모든 마음과 애정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의 때에는, 각각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는 그곳에서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육체적인 교제는 피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쉽게 빠져 드는 엉뚱한 생각들을 막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씀이 역사하여 효력이 나타나기까지 그 말씀이 마음 가까이에 고정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성령님과의 협력과 일치를 위해서, 그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높이 들려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