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이분법을 버리고 '종교간 대화'를 통해 진리의 진면목에 도달해야 합니다"
자신을 ‘골통’이라고 표현하는 스님이 있다. 퇴마승으로 유명한 성안스님이 그 주인공. 절을 카페처럼 짓고, 불경을 랩으로 작곡하고, 한밤중에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며 폭주족들에게 포교활동을 펼치는 괴짜스님의 ‘이유 있는 반항’과 음악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별난 주장을 들어보았다.
경기도 오산에서 용인으로 가는 길목에는 가을들녘의 빛깔을 닮은 아담한 집 한채가 자리하고 있다. 황토와 나무로 만든 심플한 외관에 부분조명으로 한껏 분위기를 낸 이 집은 언뜻 보아선 차를 파는 카페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원효사’라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면 누구라도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는 성안스님이라는 유별난 스님 한분이 살고 있다.
스님을 만나 뵙기 위해 절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손을 갖다 대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린다. 절에 자동문이라니…. 또 한번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법당 앞에 와서도 선뜻 문열고 들어오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자동문이에요. 근처만 와도 문이 활짝 열리니까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결국 들어올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웃음).”
스님의 웃음만큼이나 유쾌한 발상이다.
원효사는 건물의 외관도 이색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선 법당 안에선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울긋불긋한 단청도, 요란하고 무서운 탱화도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체리색과 황토빛이 어우러진,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에 한지등의 은은한 조명까지…, 소파만 있다면 그야말로 편안하게 자리잡고 앉아 커피 한잔 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게다가 법당 맞은편에 마련된 방은 절하고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당구대부터 시작해서 드럼, 비디오, DVD, 레이저디스크, 게임기, 노래방기기 등 유흥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이 방에서 아이들과 당구도 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놀아요. 당구는 아직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는 수준이에요. 저는 그래도 80은 된다고 자부하는데 아이들은 인정을 안해요(웃음). 어, 이놈들이 올 때가 됐는데….”
어스름해지자 성안스님은 아이들이 올 때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원효사는 청소년들의 출입이 유독 잦은 절이다. 드나드는 아이들의 모습도 친구 집에 놀러오듯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아주머니나 할머니 신도들이 대부분인 여느 절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주말에는 놀다가 자고 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보통 친구들 두서너 명씩은 달고 오는데 그렇게 한번 다녀간 놈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오니까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네요.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너희들 이제 도시락 싸 갖고 다녀라’ 그랬어요. 이젠 밥값이 감당 안될 정도라니까요.”
이렇게 자그마한 절에 아이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까닭은 뭘까?
“재밌으니까요.”
스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절을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스님의 노력은 남달랐다.
“아이들과 비슷한 사고로 놀아요.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아이들 좋아하는 게임도 배우고, 당구도 배우고 있어요. 불경을 랩으로 작곡한 음악이 있는데 그거 틀어놓고 같이 따라 부르기도 하고, 춤추면서 놀기도 합니다. 그렇게 놀다가 아이들이 ‘이게 무슨 가사예요?’라고 물어보면 ‘능엄신주라는 것인데…’ 하면서 자연스럽게 법문으로 이어지죠.”
자연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하지만 그 속에 치밀한 포교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스님의 이런 전략은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할 때도 이뤄진다.
“제목으로 봐선 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유혹의 선>이라는 영화 보셨어요? 의사들이 죽음을 넘나드는 실험을 하는데, 죽었다 깨어났지만 이미 내생(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 되어 전생의 업보를 받는다는 내용이죠. 또 <식스 센스> <칵테일 인생> <슬라이딩 도어즈> 같은 영화들은 살면서 부딪치는 여러 선택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인생을 보여주는데, 그런 영화들을 함께 본 다음 ‘이게 윤회’라고 설명을 하면 아이들이 이해도 빨리 하고, 또 재미있게 받아들여요.”
스님은 폭주족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승복 입고 오토바이를 탄 스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채 밤거리를 질주하는 아이들을 보면 걱정스런 마음에 잔소리부터 늘어놓고 싶지만 스님은 ‘니네, 오토바이 어떻게 타니?’ ‘요즘 무슨 게임 많이 하니?’ 하며 이들과 공감대를 갖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한다. 이렇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처음엔 ‘진짜 스님 맞아요?’ 하고 경계하면서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스님과의 이런 인연으로 원효사는 가출 청소년에서부터 문제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 아이들의 사랑채가 되기도 한다.
성안스님은 원래 귀신을 쫓는 퇴마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의 인상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공(?)이지만 스님은 <말썽꾼 귀신도 내 말은 듣지요>라는 영가 책과 ‘귀신 쫓는 음악’까지 만들면서 빙의(귀신 들린 사람)를 치료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폭주족 포교활동
사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산다는 얘기는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또 그런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저도 처음에는 귀신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평상시 알고 지내던 보살님이 빙의가 되면서 귀신을 인정하게 됐죠. 그 보살님은 원래 천수경도 외우지 못했는데 죽은 엄마의 영가가 들어오니까 갑자기 천수경에 금강경까지 달달 외우는 거예요. 갑자기 저를 보고 ‘스님, 제가 얘 에미예요’ 하는데 처음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죠.”
이 일을 계기로 스님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빙의를 치료하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님은 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치료과정을 잠깐 보여주기도 했는데 영가와 대화를 할 때 환자의 손톱을 누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의 손톱과 발톱은 기가 나가고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고 한다. 환자는 손톱을 누르는 동안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면서 전혀 다른 목소리로 스님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곤 했다. 이 외에 환자의 눈에 기를 넣어 치료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간으로 기가 전해져 기운을 빨리 회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스님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쇳소리가 영가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몇해전, 스님이 작업했다는 귀신 쫓는 음악은 불교의 능엄경에 바로 이러한 쇳소리를 섞어 만든 것이다. 또한 수맥을 차단하는 음악을 만들 때도 이러한 쇳소리가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불교의 ‘구병시식(귀신을 쫓는 불교의 의식)’이나 천주교의 ‘엑소시즘’을 실용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3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했다가 효과를 보지 못하면 의사들은 환자를 천주교 사제에게 보내기도 한다.
“장래가 촉망되던 후배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물 마시다 갑자기 사레가 들려 죽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 죽게 돼 있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영생할 것처럼 생각을 하죠. 제 후배 역시 물먹기 바로 전까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떠도는 영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죽음에 대한 대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억울하고, 그래서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음악을 듣기만 해도 팔자 고칠 수 있어요”
빙의가 된 환자들을 상대하다보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여러가지 일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때론 담배라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하고 힘들다고. 하지만 스님은 이런 영가들과의 인연이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제가 제일 싫어했던 곳이 ‘족발골목’이었어요. 내 것만 진짜 원조고, 남의 것은 다 가짜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죠. 그러다 우연찮게 절에 갔다가 금강경이란 책을 봤는데,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사람들이 진리에 의지하고 따라야 하는데 석가모니부처 자체를 믿을까봐 가장 많이 걱정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정말 쇼크였죠. ‘교주가 없는 종교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스님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불교는 제대로 된 족발맛도 모르면서 자기가 원조라고 외쳐대는 족발골목과 같다고 말한다. 불자들은 부처라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절에만 다니고, 처음 절에 오는 사람들은 절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어깨너머로 배워야 한다. 또 무슨 소리인지 뜻도 모르는 중국말로 불경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는 것.
“불교도 시대를 따라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이대로 간다면 불교는 끝이라는 위기감마저 들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골통’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튀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튀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잖아요. 불교를 알리려면 일단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되지 않겠어요?”
교회에서 밴드에 맞춰 박수를 치며 신명나게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는 스님은 요즘 찬불가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났다는 것도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그런데 찬불가는 왜 굳이 어렵고, 점잖고, 지루하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찬불가도 쉽고 신나게 부르면 안 되나요.”
성안스님은 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팔자를 고치는 음악’이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팔자를 고칠 수 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람마다 넘치는 기운과 부족한 기운이 있는데 그 부족한 기운을 음악으로 보충해 주는 거예요. 음에도 음양오행의 법칙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수(水)가 부족한 사람은 평상시 폭포소리나 바다소리, 계곡소리의 음을 많이 들어서 기를 보충해 주는 거죠. 이것이 바로 음악으로 팔자를 고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팔자 고치는 음반’에는 여러 생생한 자연의 소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또 불교의 능엄경을 랩이나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에 접목시켜 작업하기도 했고, 티벳의 의식음악을 삽입해 색다른 분위기도 냈다고 한다.
스님과 늦도록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저녁 공양시간이 지난 터라 스님은 인근에 아주 괜찮은 식당이 있다며 안내했다. 무심코 따라 들어선 식당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별난 매운탕집.’
첫댓글 능엄신주를 랩가사로 만들어 청소년포교에 사용하신다는 내용이 눈에 띄어 퍼왔습니다.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처음에 능엄주 자료를 찾으려고 이곳저곳 다니다 성안스님의 자료를 발견했었죠...성철스님이 주석하신 능엄주랑 조금 다르긴하지만....파격적인 분이시죠.....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것이 "고정관념" 인것 같습니다. 이런 불교 포교 방법도 있다는걸 알게되네요. 감사합니다.
성안스님 화이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