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올해로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공연이 26년째 이어진다. 완창판소리는 국립창극단이 주관하여, 1984년 12월 ‘신재효 100주기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정례화한 것이다. 완창판소리 공연은 무엇보다도 호흡 긴 판소리 감상을 통하여, 관객이 명창의 기량을 확인하고 작품의 온전한 내용을 파악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판소리 완창 무대는 애호가들에게 당대 최고 수준의 판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으며, 명창에게는 하나의 도전이 되어 기량과 힘을 상승시키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그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판소리 완창 공연에 참여하여 추임새도 하고 즐기면서 완창판소리의 전통을 잇는데 기여했다. 이 무대는 판소리 인간문화재와 준문화재급, 그리고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분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문호가 제한되어, 유별나게 권위를 자랑하는 국립극장의 간판 판소리 감상회로 공인되었다. 어느 해도 소홀하게 오르지 않았지만 경인년을 맞은 올해의 완창판소리 무대는 더욱 풍성하고 특별하게 여겨진다. 특히 우리나라 판소리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견명창들의 활약이 어느 해보다도 두드러진다. 3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면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과 하늘극장을 들뜨게 하는 완창판소리. 올해 공연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2010 완창판소리 일정
하나, 명문가의 판소리 다섯바탕, 멋진 해설이 곁들인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바탕을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올해 완창판소리도 유파별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 판소리의 내용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춘향가>는 김세종제와 김연수제를 마련하였고, <심청가>는 보성소리와 서편제를 배치하여 소리판을 달구게 된다. <흥보가>는 김소희제를 선택했고, <수궁가>는 박유전제와 유성준제가 무대를 달군다. 그리고 <적벽가>는 보성소리와 동편제가 경쟁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보성소리 계열이 무대를 많이 채우고 있다는 점과, 여류명창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판소리의 동향과 보완방향을 읽을 수 있다. 완창판소리는 나이 지긋한 판소리 귀명창들이 추임새로 판에 참여하는 모습과, 판소리 연구를 위하여 사설집과 대조하면서 공부하듯 책장을 넘기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이 대조적인 층위를 이룬다. 올해도 최종민 교수와 배연형 교수가 번갈아 해설하면서 그달 판소리 감상의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둘, <춘향가>, 봄의 향기를 봄에 맡는다
올해도 가장 무게있는 소리판은 역시 불후의 명작인 <춘향가> 공연이다. 3월 완창판소리의 문을 여는 작품은 염경애 명창의 김세종제 <춘향가>다. 염경애 명창은 중간세대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명창으로 정확하면서도 분명한 성음과 완벽한 이면의 구현, 그리고 강인한 통성이 특징이며, 순식간에 매혹적인 소리로 판을 이끌어 나가는 특장을 지니고 있다. 김세종제 <춘향가>의 경우 여섯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소리는 김세종→김찬업→정응민→조상현→염경애로 이어지는 기품과 격조를 갖춘 소리유파다. 4월에 국립창극단의 작품 <춘향>은 이 3월 완창과 연계하여 감상하면 더욱 긴장감을 가질 수 있다.
8월에 감상하는 동초제 <춘향가> 연창회는 전주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이일주 명창과 그 제자들이 꾸며가는 심야연창무대이다. 8월 14일 지붕이 열리는 하늘극장에서 별을 바라보며 펼쳐지는 동초제 <춘향가>는 일곱시간이 걸리는데, 이일주 명창과 그의 최고의 제자인 송재영·차복순·장문희·김미나 명창이 이어받아가면서 무대를 채운다. 이일주 명창은 단단한 성음과 꾀를 부리지 않는 연행으로 동초제를 담보하는 최고의 명창이자 교육자이다. 김연수 명창은 기왕의 동편제와 정정렬제를 종합하여 동초제라는 유파를 완성했고, 이 소리는 오정숙 명창을 거쳐 이일주 명창에게로 전승된 것이다. 중간에 맛있는 국수와 음식이 밤참으로 제공된다. 아마도 이 무대는 오후 다섯시에 시작되어 새벽 한시경까지 이어질텐데, 깊은 밤 함께 판소리를 감상하는 관객이 완전히 서로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독특한 경험의 장이 될 것이다.
셋, <심청가>의 정서, <청>과 함께 확산된다
<심청가>의 경우는 네시간 정도 걸리는데 보성소리와 서편제로 비교·감상할 수 있다. 유영애 명창은 보성소리 <심청가>를 4월에 완창하고, 정순임 명창은 서편제 <심청가>를 10월에 완창한다. 보성소리는 격조를 자랑하는 완성도 높은 소릿제로, 전설적 명창 박유전이 서편제를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이 소리는 정응민→성우향·조상현→유영애로 이어지는데, 명문가에서 전해오는 고급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유영애 명창은 성우향 명창에게 먼저 <심청가>를 배운 다음, 다시 조상현 명창에게 수련하여 완전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유영애 명창은 성음이 분명하며 이면을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튼실한 중저음은 특히 매혹적이며 아름답다. 국립창극단의 국가브랜드 작품 <청>은 바로 이 보성소리를 기반으로 삼아 완성한 작품이다. 5월에 공연되는 <청>에서 보성소리 심청가의 감동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편제는 이날치에서 시작되어 김채만→박동실→장월중선→정순임 명창으로 이어지는 족보있는 소리제이다. 서편제야말로 10여년전 판소리 붐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의 모태가 되는 작품인데, 박동실 명창의 바디를 가장 완전하게 전하고 있는 장월중선의 것을 정순임 명창이 부른다. 정순임 명창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 장월중선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아 단단하면서도 결이 고운 <심청가>를 연행한다.
넷, 호방한 영웅·장수들의 세계 <적벽가>를 동시대의 명창 윤진철과 한승석이 재현한다.
올해 완창판소리에 참여하는 남자 명창은 윤진철·한승석 두분이다. 그리고 이 두 명창이 <적벽가>를 불러, 역시 <적벽가>는 남자소리라는 느낌을 제대로 보여준다. 윤진철 명창은 보성소리 <적벽가>를 이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윤진철은 보성소리 <적벽가>를 스승인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완전하게 이수받지 못했으나, 선생이 남긴 유작을 중심으로 재현하여 인멸의 위기에 빠진 보성소리를 유일하게 전승하고 있다. 섬세한 기교와 탁월한 해석으로 판을 이끌어 나가는 윤진철 명창의 무대가 6월의 극장을 달군다. 한편 11월에는 가장 진지하게 판소리완창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승석 명창이 역시 동편제 <적벽가>로 하늘극장의 무대를 채운다. 한승석 명창은 단단하면서도 위엄있는 소리를, 엄정하면서도 정확하게 구사하는 노력파이다. 한승석 명창은 완창작업과는 별개로 판소리가 오늘의 관중과 호흡하며 소통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는 판소리 준문화재 이상, 대통령상 수상 이상이라는 제한된 참여조건이 있기에 그 품격이 유지되어 왔다. 이번에 우리는 대학의 판소리 전공 전임교수에까지 그 문호를 넓혀서 한승석 명창을 초청하였다. 한승석의 적벽가는 송만갑→박봉술→안숙선→한승석으로 이어지는 정통 동편제 <적벽가>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다섯, <수궁가>, 수궁과 육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권력과의 싸움
올해 <수궁가>는 박유전제와 유성준제 두 가문의 소리가 무대에 오른다. 5월에는 박복희 명창이 박유전제 <수궁가>를 부른다. 박유전제 <수궁가>는 박유전→정응민→조상현→박복희로 전승된다. 박복희 명창은 주로 전남·광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남원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소리꾼이다. 이번 서울 무대는 그만큼 긴장을 주겠지만, 특유의 통성을 구사하여 판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시대 최고의 명창 안숙선 선생이 정광수제 <수궁가>로 ‘2010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의 대미를 장식한다. 유성준제 <수궁가>는 유성준→정광수→안숙선으로 전승된 것으로 정광수제 <수궁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자리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안숙선 명창은 공연마다 매진의 신화를 이끌고 있는 주역이다. 제야완창 판소리는 하늘극장에서 열리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무대가 된다. 안숙선 명창은 청아한 성음, 명료한 발음, 명확한 이면을 구사하여 우리시대 디바로 활약한다. 안숙선 명창의 정광수제 <수궁가> 무대는 2010년 12월 31일에 시작하여 2011년 1월 1일을 국립극장에서 맞게 된다. 올해 완창판소리의 마무리과 동시에 또 다른 설렘이 가득할 2011년 새해를 기약하는 멋진 무대이다. 모든 관객들은 국립극장에서 함께 새해를 맞으면서 국립극장에서 마련한 떡국을 먹고, 새해를 맞이하는 불꽃놀이까지 즐기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섯, 만정제 <흥보가>를 김차경 명창으로 감상한다
만정제 <흥보가>는 송만갑 명창에게서 나온 소리를 김소희 선생이 다시 젊잖게 다듬은 명작이다. 만정제 <흥보가>는 김소희→안숙선→김차경으로 전승된 것이다. 김차경 명창은 지난 해 남원판소리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국립창극단의 명배우이기도 하다. 첫 완창무대를 하늘극장으로 선택하였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의 도전으로 여겨진다. 김차경 명창은 소리가 단단하고 계면조 구사능력이 특히 빼어나서 슬픈 느낌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김차경이 질러내는 상성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일곱, ‘일고수 이명창’, 우리시대 최고의 고수를 만난다
북반주를 담당하는 고수들의 면모 또한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의 품격을 증거해준다. 우리시대의 고수로서 서울시 문화재인 정화영 명고와, 역시 문화재로서 최고봉에 있는 김청만 명인, 그리고 송원조 명고가 북반주를 맡게 된다. 이분들의 북치는 태와 추임새 또한 일품이다. 대전시문화재인 박근영 선생이 그 몸체만큼이나 우람한 북가락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태백 교수는 아쟁의 명인이기도 하며, 빼어난 북솜씨 또한 일품이다. 임영일 명고는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용안 선생은 전주지역으로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조용수 선생은 국립창극단 기악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수들로 서로 사촌형제간이기도 하다. 이분들의 북반주로 명창의 소리를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올해의 완창판소리를 신나는 판으로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 3월부터,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세시면 펼쳐지는 완창판소리 무대, 앞으로도 국립극장의 가장 튼실한 전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글 : 유영대(고려대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미르> 2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