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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맞댄 추억이 더 오래 기억된다
백승자 동화 속 가족의 가치
김 문 홍
Ⅰ. 이상적 공동체로서의 유사가족
흔히들 인간이 만나는 최초의 공동체적 사회를 가족이라고 한다. 가족은 혈연으로 연대한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이기도 하다. 가족이 타인과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적 사회와 다른 점은 구성원 모두가‘살을 맞댄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유교 질서가 무너진 현대의 핵가족화 현상은 가족의 가치가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가족제도를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철학자인 장 폴 싸르트르의‘타인은 지옥’이라는 명제가 가족사회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일본의 코미디언이며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처럼‘가족은 남이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역설적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등단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일관된 주제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동화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백승자의 동화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가족의 가치에 대한 일관된 시각을 지니고 있다. 제22회 방정환 문학상을 수상한 장편동화『해리네 집』(2012, 청개구리), 그리고 8편의 단편동화가 수록되어 있는 동화집『아빠는 방랑 요리사』(2014, 청개구리)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가족의 가치에 관한 것들이다. 가족 공동체는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또한 끝까지 지켜져야 할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장편동화『해리네 집』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비록 혈연은 아니지만 유사가족을 통해 가족의 가치와 유대를 끝까지 지켜야 할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사가족은 가족과 비슷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을 의미한다. 생판 남인 타인들이 한 곳에 거주하면서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급기야 마치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상황이 곧 유사가족이다.
1. 가족의 기억
장편동화『해리네 집』은 이 작품의 화자인‘나’를 통해 서술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품이다.‘은조’라는 이름의 화자에게는 로사라는 고모가 있는데, 고모는 몸이 불편하면서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는‘해리’를 키우고 있다. 이 작품은 은조의 가족과 로사라는 고모의 가족관계, 그리고 고모 로사와 해리라는 개를 통한 유사가족의 두 축의 플롯이 서로 병치 관계를 이루면서 서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결국은 유사가족의 죽음으로 가족의 가치는 붕괴되고 만다. 고모가 키우던 개인 해리가 늙어서 죽고, 얼마 있지 않아 고모마저 뇌암으로 눈을 감는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가치는 피를 함께 나눈 가족도 중요하지만,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유사가족도 사랑과 연대로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백승자는 가족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나는 얼른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고모의 맨발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따뜻한 발을 만지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큰 위안이 되었다.
고모와 함께 있을 때는 내 몸이 다 고모 차지였다. 손톱이나 발톱 깎는 거, 온몸 구석구석 때 밀어 주는 거, 머리 감기고 예쁘게 빗겨주는 것을 고모는 그토록 재미있어 했으니까.
특히 고모는 내 발을 자주 어루만졌다. 사람끼리 살결이 닿은 기억이 오래 남는 거라고, 만나기만 하면 끌어안고 쓰다듬는 게 인사였던 고모.
“에이, 발 안 닦았단 말야. 냄새 나면 어쩌려고.”
내가 미안해서 발을 빼내려면 고모는 더욱 세게 당겨 가슴에 안거나 발등에 뽀뽀를 하기도 했다. (131쪽)
②
그때 언젠가 고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공군 파일럿한테 직접 들은 얘기야. 직업적으로 자주 하는 일인데도, 비행기가 무한한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때는 일순간 아득한 두려움에 빠진대. 하지만 지상에서 한 손에 깃발을 들고 또 한 손도 높이 들어 흔들어 주는 동료를 보면 한순간 마음이 놓인다는 거야.
'나를 위해 저렇게 열정적으로 손 흔드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는 거지.
그래서 그 조종사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면 언제나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힘껏 손을 흔들어 준대.”
이 순간 문득 고모가 저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고모의 텔레파시를 받은 것처럼 푸른 하늘에 대고 마구 손을 흔들었다. (139-140쪽)
③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그러셨대. 어른이 될 때까지 나를 엄마 묘소에 보내면 안 된다고 말야.
그 때는 아마도 심장 약한 나를 배려했다기보다 어떤 미신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안 갈게요. 산소에 간다고 엄마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뭘."
내가 쉽게 포기해서 가족들을 안심시키긴 했지만, 그날 이후 온 세상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을 누가 알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 한겨울에 허허벌판에 혼자 나앉은 것 같이 두렵고 외로운 느낌 말이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친구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달라. 초등학교 때 전학 간 친구나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도 또 달라.
아, 엄마가 있는 세상과 엄마가 없는 세상은 어쩌면 그리 확연히 다를까.
은조야, 고모가 네 나이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사는 듯 막막하고 외롭던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겠니?
‘이제부터는 이 오빠가 로사의 부모야. 누구보다 멋지게 키워 줄게.’
나이 차가 많은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위해 뭐든지 다 해줄 태세였단다. 세상에 그런 오빠가 어디 또 있겠니. 하지만 자라면서 난 또 그게 고맙기보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어.
(42-43쪽)
위 인용문 ①은 화자인 내가 방학 때 서울에 있는 고모네 집에 가서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몸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고모와 발을 만지는 데에서 오는 따뜻한 느낌, 고모가 나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거나, 때를 밀어주고 머리를 감겨 주는 데에서 느끼는 감촉의 기억을 통해 피를 함께 나눈 가족의 가치를 인식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사람끼리 살결이 닿은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이라는 서술은 곧 사람과 사람의 감촉을 의미한다.
인용문 ②는 프랑스의 소설가 생 떽쥐베리의 소설인『야간비행』의 한 부분을 모티브로 차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수만 피트의 밤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조종사는 외로움과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저 아래 아득한 거리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조종사는 그 불빛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치 그 불빛은‘당신이 위험에 처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달려가 당신을 구할 거예요.’라는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인 조종사는 외로움과 공포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수만 피트의 거리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은 곧 가족의 연대감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문 ③은 고모 로사가 화자인 나에게 유년 시절에 일찍 어머니를 여윈 기억을 들려주는 대목이다. 집안 어른들은 어린 고모에게 어머니의 산소를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는 접촉의 경험을 끊음으로 고모에게서 혈연에 대한 기억을 없애고자 한 배려이다. 결국 고모는 화자의 아버지가 로사 고모의 부모를 대신하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작가는 인용문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접촉의 기억과 연대가 곧 가족의 가치라는 점이다.
2. 가족의 진정한 가치
이 작품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가족의 진정한 가치는 혈연으로 맺은 관계보다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공감과 교류, 그리고 사랑과 연대의 감정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화자의 가족과 고모의 관계에서 찾기보다는 고모가 어린 시절부터 키우고 있는 개인 해리와 고모 로사의 사랑과 연대를 통해 그 진정한 가치를 찾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해리는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공감과 소통으로 가족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①
그 중에도 한쪽 다리를 저는 해리를 두 번이나 수술해 완치시킨 대목에선 고모 목소리가 한 톤쯤 높아졌다.
"그것도 무슨 인연일까. 우리 해리와 내가 똑같이 왼쪽 다리가 불편했던 거 넌 모르지?"
"정말? 전혀 몰랐네."
"그거 오빠가 아주 싫어하는 사실이라 입 밖에도 못 내거든. 교통사고로 다친 내 다리는 수술해서도 못 고쳤는데, 해리는 두 번의 수술 끝에 고쳤으니까."
"아하!"
나는 손뼉을 마주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해리를 안 예뻐하는구나! 그럴 만하네..."
고모 다리가 말끔히 고쳐지고, 해리 다리가 여전히 불편했다면 아빠도 안쓰럽게 생각할 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고모는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니 그걸 보는 아빠의 마음에는 해리에 대한 원망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74-75쪽)
②
그날 밤, 나는 고모 곁에서 자기로 했지만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가르릉가르릉’ 해리의 가래 끓는 소리도 신경이 쓰였지만, 해리의 작은 기척에도 후다닥 일어나 불을 켜는 고모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 고모는 이른 아침부터 몇 시간 째 통 말이 없었다.
후박나무 아래 의자를 내다놓고 앉아 있는 고모의 뒷모습도 그대로 자연 풍경인 것 같았다.
고모가 앉은 하늘색 나무의자는 얼핏 보면 멋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형편없었다. 낡고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두 번이나 덧칠한 페인트가 군데군데 뭉치고 벗겨지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고모는 이 의자를 좋아했다. 묘하게 고모가 앉으면 이 의자도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어울려 보였다. (103-104쪽)
고모 로사와 고모가 키우는 개 해리는 동병상련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한다. 고모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고 있고, 길에서 주워다 기른 개 해리는 이제 늙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둘 다 육체적 고통으로 동병상련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돌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혹은 미세한 소리만으로도 서로의 아픔을 인식하고 공감한다.
인용문 ①은 화자의 아버지와 고모 로사, 그리고 해리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여동생인 로사에게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만, 고모가 키우는 개 해리에게는 적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교통사고로 다친 고모의 다리는 두 번이나 수술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해리는 두 번의 수술로 다리가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고모와 해리, 이 둘의 관계는 아무런 적대의식이 없다. 고모는 자신의 다리가 여전히 불편한 데에도 해리의 건강과 안위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로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공감, 서로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공감은 둘을 어떤 관계보다도 더 밀착시킨다.
인용문 ②에서는 이 둘의 공감과 소통이 더욱 더 극대화되고 있다. 건강한 화자는 고모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는데, 정작 고모는 자신의 건강보다는 해리의 가르릉거리는 숨소리에 오히려 밤잠을 설친다. 후박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낡은 의자는 이 장면에서 고모와 해리를 은유하고 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해리, 늘 병치레를 하는 고모, 그리고 낡고 삐거덕거리며 페인트칠이 벗겨진 의자는 동병상련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고모는 낡고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곧 고모와 낡은 의자의 공감을 은유한다.
백승자의 장편동화『해리네 집』은 유사가족의 공감능력과 소통, 그리고 동변상련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 속에서의 고모 로사는 곧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다. 유사가족의 구성원인 해리에 대한 고모의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변상련의 감정은 곧 우리 주위의 소외된 것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의 감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에서의 늙은 개 해리는 곧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들을 은유하고 있다. 작가는 가족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묻고 있지만, 결국 나아가서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아동문학의 지향점이기도 하고, 동화문학이 나아가야 할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Ⅱ. 가족신화의 따스한 풍경
백승자의 단편동화집『아빠는 방랑 요리사』에는 모두 8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는데, 그 중 7편의 동화가 가족의 여러 가지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신웅 오빠를 사이에 두고 두 자매의 사춘기적 연모의 마음을 희화적으로 보여주는「첫 손님」,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규림이의 설렘과 불안한 심리를 차분하게 그리고 있는「꽃인 듯 눈물인 듯」, 설날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 막내 삼촌이 데리고 온 수지를 사이에 두고 다문화 가족을 포근하게 끌어안는 가족의 따스한 풍경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거실의 커다란 코끼리」, 실직하게 된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웃사랑을 통해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가볍고 명랑한 터치로 묘사해 보이는「아빠는 방랑 요리사」,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부재라는 상실감을 사랑과 연대의 감정으로 화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가장 빛나는 자리」, 현실의 위기로 인한 가족의 붕괴로 상실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보육원 아이들의 희망 찾기를 통해 무지개 빛깔의 미래를 그려 보이는「초록지붕 위로 뜨는 해」, 가난과 소외의 위기를 사랑과 화합의 연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채송화 국밥집」등의 여러 작품들은 가족의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족의 울타리는 굳건하게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1. 사랑으로 연대하면 그것도 가족이다
이들 작품 중 그 주제의식이나 플롯, 인물 형상화에 있어서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은「거실의 커다란 코끼리」이다. 이 작품은 다문화 가족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쉽게 허물어 버리고, 이제는 혈연 중심의 유교적 가부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지구촌은 하나의 가족이라는 거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시의적이고 바람직한 주제의식을 견지하고 있다.
①
나는 수지를 한번 안아 보았다. 스무 살 넘은 대학생부터 다섯 살 수지까지, 우리가 한 집안의 핏줄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실감나면서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코끼리를......우리 현이가 잡은 거잖아?”
형이 현이를 번쩍 치켜들었다.
“어? 난 코끼리 못 봤는데?”
“어쨌든 커다란 코끼리를 잡은 건 너라니까!”
나는 순진무구한 현이한테 달려들어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그 모습을 본 수지가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모두 입 모아 웃으며 맞은 설날 아침, 햇빛도 유난히 화사했다. (53쪽)
②
‘낮에 찬바람을 너무 오래 쐬었나.....?’
희명이는 살금살금 걸어 대야에 물을 떠 왔다. 열이 날 때에는 옷을 느슨하게 벗겨 두는 일,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는 일, 그리고 해열제를 먹이는 것쯤은 희명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응급처치였다.
“엄마, 엄마, 엄마......”
승명이는 밤새 엄마를 찾으며 뒤척였지만, 희명이는 초록엄마를 부를까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그만두었다. 며칠째 새해맞이 대청소며 이불 빨래를 한 초록엄마 몸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기 때문이다.(111쪽)
위 인용문 ①은 이 작품의 결미 부분으로 작가의 주제의식과 휴머니즘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맑고 따스한 가족의 샘물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명인‘거실의 커다란 코끼리’의 의미는 작중인물이며 화자인 나의 대화를 통해 설명되고 있는데, 그것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예의 없는 일인 것 같고,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참고 넘어가는 상황을 은유하고 있다.
설날 아침에 큰집에 혈연으로 맺어진 모든 가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막내 삼촌이 피부 빛과 얼굴 모양이 낯선 수지를 데리고 왔을 때, 서로가 말을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는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이 바로‘거실의 커다란 코끼리’의 함축적인 은유적 의미인 것이다. 그 낯선 아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가는 정말 수수께끼 같은 난제이고 불편한 상황이다.
이 작품의 가장 유머러스한 부분은 이런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을 아이들이 먼저 떨쳐 버리고 수용한다는 점이다. 선입견도 고정관념이 없이 오직 인간관계에 의해서만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을 수용한다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의 질서를 도외시하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함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중심을 잡아가는 시대에는 전통적 가족 개념이 사라지고, 오직 공감과 소통만 가능하면 누구든지 지구촌 기족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인용문 ②는「초록지붕 위로 뜨는 해」의 한 부분으로, 여기서의‘초록지붕’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여덟이나 아홉 명씩 모아 한 가족으로 엮어 준 따뜻한 울타리의 이름이다. 희명이는 함께 초록지붕 아래에 살고 있는 아픈 승명이를 부모를 대신한 혈연의 사랑으로 돌본다. 보모인‘초록엄마’를 부를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 둔다. 초록엄마가 대청소 때문에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록지붕에 함께 모여 사는 아이들은 모두 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같은 피도 나누지 않는 타인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과 공감으로 연대하여 가족을 이루고 있다. 희명이는 보통 가정에서 엄마가 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사랑으로 연대한 가족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위의 두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묻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는 이제 서로 피를 나누고 있다는 전통적 개념의 가족 가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며, 서로 타인이지만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으로 연대하면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휴머니즘이기도 하다.
2. 가족의 이름으로 위기를 극복하다
백승자 동화의 특징 중 하나는 결핍과 결손에 처한 가족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결핍과 결손은「꽃인 듯 눈물인 듯」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데에서 오는 상실감일 수도 있으며,「아빠는 방랑 요리사」처럼 아버지의 실직이라는 현실적 경제 문제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결핍과 결손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으로, 또는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소외된 이들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위기가 극복된다.
①
낮과 밤이 서로 스며드는 저녁 어스름 무렵이 되었다. 나도 엄마의 뜰에서 차츰 마음이 편안해져 갔다.
해가 넘어가자, 외등 하나 없는 마당이 깜깜해졌다.
“이렇게 까만 밤이 좋아서 마당에 전등을 달지 않았단다. 전등을 켰을 때 흐릿하게 뵈던 달빛, 하얀 꽃, 반딧불이까지.....어둠 속에서 놀라울 만큼 선명해지거든.”
엄마가 감나무 가지에 매단 유리병 안의 양초에 불을 붙였다.
“와, 예뻐!”
서너 개의 유리병에 밝힌 촛불만으로도 뜰 안이 금세 아늑해졌다. 나는 문득 그리운 생각이 떠올라서 등 뒤에서 엄마를 안았다.
“울 애기......”
엄마가 돌아서서 나를 가슴으로 다시 안았다.
‘우리 엄마......’
엄마 냄새는 여전히 달달하고 푸릇했다. (30-31쪽)
②
한밤중에 목이 말라 잠이 깨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던 나는 주춤했다.
아빠가 창 밖을 향해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비쳐드는 거실은 촛불을 컨 듯 아늑했다.
나는‘아빠!’하고 부르려다 말았다. 아빠는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소리를 내선 안 될 것같이 잔잔한 분위기였다.
‘아빠......!’
아빠의 뒷모습이 하도 쓸쓸해서 공연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여태껏 난 왜 물랐을까? 아빠는 툭 치면 그 자리에 픽 쓰러져 버릴 것같이 야위었다는 걸 말이다. (81쪽)
인용문 ①은「꽃인 듯 눈물인 듯」이라는 작품의 중반 부분으로,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마음의 병이 깊이 시골 대자연의 품속에서 요양하고 있는 어머니와, 역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딸의 상실감이 어느새 그 접점을 찾아 화해하면서 사랑을 회복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엄마의 마음의 병은‘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는 내가 살 수 없다고 결정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찾아들었고,‘내가 그랬던 것처럼 규림이에게도 엄마인 내가 또 하나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딸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면서 다시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인용문 ②는「아빠는 방랑 요리사」의 한 장면으로 화자인 내가 한밤중에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머니가 집안 경제 운용의 주체가 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아버지가 실직을 한다는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한 귀퉁이가 푸슬푸슬 녹아내리는 쓸쓸함 그 이상일 것이다.‘아빠는 툭 치면 그 자리에 픽 쓰러져 버릴 것같이 야위었다고’ 주인공인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아버지의 쓸쓸함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방랑하던 아버지가 소외된 이웃에게 요리로 봉사하는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이 가족은 그런 사랑의 마음이면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가족은 다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Ⅲ. 백승자 동화의 손익계산서
백승자의 동화는 가족신화의 원형을 줄기차게 탐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백승자 동화의 작중인물들은 도두 다 착한 사람들이고, 가족의 가치를 끊임없이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이며, 피를 나누고 살을 맞댄 것만이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으로 연대하면 모두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아동문학의 원형질적 사고이며 동화의 본질적 명제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 하면 그의 동화에는 소재주의에 함몰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장편이나 단편을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의 동화들이 생활동화이다. 또한 화자나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심리적 추이를 섬세하게 서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식물적 연약함에 빠져 감상주의에 함몰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앞으로 백승자 동화의 과제는 판타지 동화에도 천착하고, 주제나 소재에 있어 가족의 신화에 천착하는 것을 지양하고 다양한 소재의 확장성에 힘써야 하리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동화세계가 곧 작가의 분신처럼 닮았다면 앞으로는 자신을 뛰어넘는 문장과 주제의 변주가 있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첫댓글 마지막 평이 작가에게는 약이 될 듯합니다.
여성 작가들이 많이 저지르는 오류들을 잘 지적하셨습니다.
식물적 연약함이 왕왕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소재의 확장은 작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항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