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예시는 해당 현(縣)에 대한 두
가지 정보를 제시하였다. 첫째, 동서남북 주변 고을과의 거리 관계를 통해 현의 위치를 명시하였다. 둘째, 한 칸이
‘10리×10리=100리2’인 모눈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모눈의 개수로 면적을 계산하게 하였다.
온전한
모눈 37개의 면적=37×100리2=3700리2…………………① 비스듬한 모눈 25개=온전한
모눈 12~13개 비스듬한 모눈들의 면적=(12~13)×100리2=1200~1300리2……
② ∴ 현 전체의 면적=①+②=4900~5000리2
위 그림을 ‘온전한 모눈 35개, 비스듬한 모눈
27개’로 셀 수도 있지만 귀퉁이가 아주 조금 잘려 나간 모눈 2개는 온전한 모눈으로 간주하였다. 또 비스듬한 모눈 27개를 온전한 모눈
12~13개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수학적으로 엄밀한 계산을 한 것은 아니다.
다산은 모눈 활용법의 장점을 일컬어
“육안으로 어림하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오직 모눈을 땅바닥에 펼쳐 놓아야……상하좌우의 밭에 들쭉날쭉 들어간 부분이 몇 보인지 몇 자인지 여러
사람의 눈앞에 뚜렷이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당시에는 전답을 통째로 보면서 들쭉날쭉한 부분을 눈어림으로 ‘잘라내고 메워’ 수학책에
다루어진 정형(定形) 중 하나로 변환한 다음 해당 계산법을 적용하는 방법이 통용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다산의 개혁안은
눈어림으로 ‘잘라내고 메우는’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오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인력과 비용이 따르는 전국적 토지 실측임을 고려하여 현실성
있는 크기로 ‘10리×10리=100리2’의 모눈을 사용하도록 했지만, 모눈의 크기를 무한히 줄여간다면 현대 수학의
구분구적법(區分求積法)과 통하는 방법이다.(이 방법은 실은 송(宋)나라와 조선에서도 일부 사용된 적이 있으나 일반화되지 못하던 것인데,
도설(圖說)을 통한 분명한 설명으로 광범한 이해와 사용을 촉구한 것이다.)
‘잘라내고 메우는’ 방법은 『구장산술』 방전장 이하
면적 계산법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이다. 직사각형의 면적 계산법을 기본으로 하여, “넘치는 부분을 잘라내어 빈 부분 메우기[以盈補虛]”의 방법으로
각종 도형을 직사각형으로 변환함으로써 면적 계산법을 도출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로, 오른쪽
그림에서 면적 ‘(甲)’을 잘라다가 면적 ‘乙’로 옮기고, 면적 ‘(丙)’을 잘라다가 면적 ‘丁’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삼각형‘子丑寅’을 사각형
‘卯辰巳午’로 변환해도 면적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삼각형면적=높이×(삼각형밑변÷2)’가 도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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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로, 아래
왼쪽 그림과 같은 고리형을 선분 甲乙로 잘라 펼치면 아래 오른쪽 그림의 사다리꼴 ‘甲乙丙丁’이 되는데, 면적 ‘子’를 ‘丑’으로, ‘寅’을
‘卯’로 옮겨 사각형 ‘戊己庚辛’으로 변환해도 면적은 변치 않으므로 ‘고리형면적=[고리폭×{(안둘레+바깥둘레)÷2}]’가
도출된다.
면적 계산에 이 방법을 사용한 흔적은
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맹자』 에 “지금 등(滕)나라는 ‘긴 데를 잘라내어 짧은 데에 보태면[絕長補短]’ 사방 50리가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다산의 예시에 ‘절보(折補)’라고 한 것은 ‘절장보단(折長補短)’을 축약한 말로, 면적 계산법의 기본 원리를 뜻하는
말이다.
전통 수학에서 이 방법은 면적 계산에 그치지 않고, 부피 계산, 거리ㆍ높이ㆍ깊이 측량 등 기하학 문제에 공통으로
사용되었으며, 원면적과 원주율 계산, 닮은꼴 삼각형의 비례 관계, 구고술(句股術 피타고라스정리) 등이 모두 이 방법을 근간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 수, 곧 ‘c2 = a2 + b2의 관계를 만족하는 세 수 a,
b, c의 산출법이 3C 그리스의 디오판토스(Diophantos)보다 수백 년 앞서서 이 단순한 방법의 지능적 활용으로 유도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면적을 이리저리 잘라내어 붙여 보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칠교’라고 불리는
한국의 전통 놀이를 연상시킨다. 몇 가지 모양의 나무 조각을 가지고 배치를 달리하여 다양한 사물을 표현하는, 공간 지각력과 직관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근사한 모양을 추구해 가는 놀이이다.
수학적 직관에 대한 다음과 같은 통찰을 음미해 볼 만하다.
“실험적 증거와 논리적 필연성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객관적 세상을 철저히 규명하지는 못한다. 수학적
필연성이 관찰과 실험을 이끌어 나가고 논리는 그 한 측면일 뿐이다. 다른 측면은 모든 정의로부터 벗어나 복잡하게 얽혀 있고 모호한 직관이라
불리는 것이다.”(토비아스 단치히(Tobias Dantzig)의 『수, 과학의 언어[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권혜승 번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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