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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금)~12.2(일) 간 멕시코를 방문 중인 김황식 국무총리는 가슴아픈 멕시코 이민사를 간직한 이른바 '애니깽'의 후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김황식 총리는 한인 후손들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낯설고 먼 멕시코에서 당당하게 자리잡은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약소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애니깽 이야기, 더 들어보실래요? |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 '애니깽'
애니깽(Henequen, 에네껜으로 발음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이 글에서는 통상적으로 부르는 '애니깽'이라 하겠습니다 )은 사실 선인장의 일종입니다. 이것을 잘라 으깨면 흰 실타래가 되고 이들을 모아 묶으면 튼튼한 밧줄이 되기 때문에 선박용 로프의 주 원료고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에네껜이 우리에게 애니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멕시코 한인 이주의 아픈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905년 3월 6일, 제물포항(지금의 인천)에는 1천33명의 한국인을 실은 배가 멕시코로 떠납니다. 지구 반대편까지 75일의 항해 끝에 멕시코의 메리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길고 힘든 항해를 견딜 수 있었던 건, 멕시코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행복을 선사해 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이중에는 200여명의 대한제국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멕시코로 이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천지가 아나라 혹독한 노동계약이었습니다. 당시 해양업이 호황기를 구가하면서 멕시코 농장주는 선박 로프의 주원료인 애니깽 생산을 위해 멀리 한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를 각 농장에 분산 수용하게 됩니다.
멕시코 이주 한인 1세대의 참담한 삶은 유카탄 반도에 한인들이 이민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인삼을 팔러온 박영순씨의 편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곳에 이민온 동포들은 낮이면 뜨거운 가시밭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일하고, 밤이면 토굴에 들어가 밤을 지새며 매일 품값으로 35전씩 받으니 의복은 생각할 여지도 없고 겨우 죽이나 끓여서 연명할 뿐으로 그 처지가 농장의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1905년 11월 17일 북미한인공립협회에 보낸 편지에서, 동아일보 1998.3.10 <고국을 떠났던 선조들> 재인용) |
이들의 삶은 1996년 영화 <애니깽>으로도 그려졌고, 이후 연극과 뮤지컬로도 제작되었죠. 뿐만 아니라 김선영의 3부작 대하소설 <애니깽>,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도 애니깽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애니깽'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애니깽'의 후손을 찾아서
혹독한 환경을 견디고 4년간의 계약이 끝난뒤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져 일부는 미국으로, 일부는 쿠바까지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멕시코 이민 한인 1세대는 일제 강점기 조국의 해방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독립을 후원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지만 끝내 조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인 후손 다비드 김공(74)씨는 이렇게 전합니다.
"할아버지는 대한제국의 군인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열심히 일을 해서 군자금을 모으자. 그리고 5년 후에 돌아가자고 다짐하셨대요. 하지만 대한제국은 일본에 망했고... 숱한 고생 속에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어요. 할아버지는 늘 바르고 성실하게 생활했고 어린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줬습니다. "
(김황식 총리 멕시코 한인후손 간담회(2012.12.1) 중에서) |
* 다비드 김공씨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의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고 김익주씨입니다.
지금 멕시코에는 애니깽으로 불리던 한인들의 후손이 3만명 정도로 법조계, 정치계, 교육계 등에 진출해 있습니다. 이주 역사 100년이 넘으면서 얼굴 생김새와 말투는 현지인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한민족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김황식 총리는 멕시코 정부의 공식 초청에 따라 11.30(금)~12.2(일) 간 멕시코를 방문하면서 우리 동포 및 이주 한인 후손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우리 정부 대표가 한인 후손들만의 간담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김황식 총리는 격려사에서 한인들이 이주한 지 100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모국의 정서를 지켜온데 감사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총리는 “1905년 애니깽 농장에서 시작된 가슴 아픈 멕시코 이민史를 되돌아 볼 때, 3만명에 달하는 우리 한인후손들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낯설고 먼 멕시코에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격려했습니다.
이에 앙헬레스 황보 한인후손회장은 한인후손 사회는 한국을 모델로하고, 자긍심을 느끼며 후손들간 단결하고 있다고 전하며, 보다 많은 멕시코 인들에게 한국인들의 문화를 전파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우리는 애니깽을, 그들은 한국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김 총리는 우리나라도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방문 때 여러분을 만나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우리 정부는 지난 2005년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해 모국문화체험연수, 직업연수 등 다양한 지원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한국을 방문한 33명의 멕시코 한인 후손 3, 4세 학생들 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지난해에는 33명의 멕시코 한인 후손 3, 4세의 한국방문 행사가 있었는데요, 이들은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 눈·코·입·체형 모두 멕시코인에 가까운 그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려는 경향도 뚜렷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나에게 한국이란?’ 질문에 ‘제2의 심장’, ‘또 하나의 나’, ‘위대한 나라’, ‘반쪽’, ‘나의 일부’, ‘자랑스러운 조국’ 등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신문, 2012.8.12)
지금 한국과 멕시코는 수교50주년을 맞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애니깽, 그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멕시코 사회에 자리잡은 한인 후손들은 양국관계발전에 교량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