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0 주일설교
본문: 시 23:1-6
제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큰 즐거움과 큰 만족으로 애송하는 시편이다.
항상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시편이다.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의 생애가 펼쳐지며, 푸른 풀밭과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한다.
외롭고 힘들 때, 특히 사망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깨우쳐주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 하심을 알게 해주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이시며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심을 믿게 해준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신다.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이다.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다.”(시95:7)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목자는 양 떼와 항상 함께 머문다.
양 떼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맹수에게서의 보호를 전적으로 목자에게 의존한다.
하나님은 양 떼를 잘 기르는 목자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우리 주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주님은 친히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주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하셨다.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시고 형벌을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고, 형벌이 없는 것이다.
주님이 알지 못하는 양은 버림 받은 양이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주님이 아는 양이 아니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이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주님은 참된 양은 한 사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7-28)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 받은 양이 되면,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고 주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게 된다.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는 한 번 맺어지면 그것은 영원한 관계이다.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우리 양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풀밭은 양 떼가 먹이를 얻는 곳이다.
물가는 휴식처의 물가요, 양 떼가 필요한 물과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이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고, 영생 복락을 누리는 천국이다.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를 이 땅에서도 누리고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면, 성령이 함께 하는 곳이면 어디든 천국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시23:3)
먼저 내 영혼이 소생되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요3:5)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가는 길은 의의 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길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한 의의 길을 가야 한다.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명예가 달려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고,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고 하신다.
이 일을 위해 믿는 자들 속에는 성령이 거하시고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의의 길은 거룩한 길이요, 거룩은 우리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지 말고,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하신다.(롬6:19)
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의의 길로, 성화의 길로 가는 곳에는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고난의 골짜기요, 연단의 골짜기이다.
우리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하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면서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가고,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사망의 골짜기로 다니면서 우리 심령은 새롭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은 새 사람을 입게 된다.
이 모든 작업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를 만들어 가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의 지팡이로 적들을 물리치시고
주의 막대기로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를 안위(안전하고 위로)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였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속에는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그대로 있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의 고난을 통해서 이를 씻어내고 참다운 하늘 백성을 만들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이 올 때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이 광야,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은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그들 역시 옛 사람 벗기를 싫어하여
아버지 세대가 광야를 사망의 골짜기로 끝낸 것처럼 2세들은 가나안 땅을 사망의 골짜기로 만들고 말았다.
예수를 주로 믿고 영접하였으면, 말씀을 따라 살며,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하실 때, 그 뜻과 목적을 말씀을 통해 알고,
순종하며 믿음과 인내로 잘 통과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해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감당 못할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한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0)
고난을 겪어 본 사람들은 이 말씀을 경험하여 잘 알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옛 사람과 행위들을 벗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벗기심을 감사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고난을 당할 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였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고난)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한 성품을 이루게 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믿음과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가나안 기업이 열리게 된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히6:1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고난이 힘들기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게 하신다.
광야는 만나를 주시고 생수를 주셔서 살게 하신 곳이었다.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의 공급자는 내 소유나 남의 도움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통로나 수단이지, 진정한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는 나의 목자이시기에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하시고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시는 것이다.
너희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다. 우리가 경험해야 할 진리이다.
3. 내 평생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5-6)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게 된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다.
나를 만드시느라고 썼던 원수들이 바로 보는 앞에서 잔치 상을 차려 주셔서
낮아졌던 뿔을 높여 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셔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잘 통과한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워주셨다.
요셉에게 있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이었다.
잘 통과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졌을 때 하나님은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옛 사람 옛 행실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심령이 새롭게 되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모세는 이 옛 사람, 옛 성품을 벗기 위해 40년의 광야 생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 연단을 통해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때,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고 인도하여 내는 대업을 맡기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잘 통과하면, 하나님은 기름을 내 머리에 부어 윤택하게 해주시고,
축복과 영광의 잔이 넘치게 하신다.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신다.
이러한 결말을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
그래서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그 고난이 인내를 이루게 하고 인내가 연단을 이루게 하고 결국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의 평생에 반드시 우리를 따르신다.
40년 만에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것을 상징한다.
모세가 가시 떨기 나무 같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 때도 하나님은 불꽃처럼 그와 함께 하셨다.
줄기도 아니고 큰 나무도 아니고 하나님이 심은 작은 가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하신다.
때가 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룬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친히 심고 만든 작은 가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심을 기억하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길이 헙착하다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사망의 골짜기가 없기에 큰 문, 넓은 길로 가다가 멸망에 이른다.
고난과 연단 없는 축복과 형통을 바라다가 많은 사람들이 멸망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