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현경(顯慶) 5년 경신(백제 의자왕 20: 660)에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대총관(神丘道大摠管)으로 삼아 군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더불어 백제를 칠 때 계백은 장군이 되어 결사병 5천 명을 뽑아 대항하면서 말하였다.
“한 나라 사람이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당해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포로로 잡혀 노비가 될 지 모르는데, 살아서 욕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쾌히 죽는 것이 낫다.”
드디어 가족을 모두 죽였다.
황산의 벌에 이르러 세 진영을 설치하고 신라의 군사를 맞아 싸울 때 뭇 사람에게 맹서하였다.
“옛날 구천(句踐)은 5천 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오늘은 마땅히 각자 용기를 다하여 싸워 이겨 국은에 보답하자.”
드디어 힘을 다하여 싸우니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냈다. 신라 군사가 이에 물러났다. 이처럼 진퇴를 네 번이나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힘이 다하여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 계백 편] 중에서-
"지금의 백제만이 나라가 아닙니다.
이 썩어 문드러진 백제가 깨끗이 망해 버리고 언젠가 새로운 백제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요, 한편 신라와 고구려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삼국이 통일이 되는 날도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것들이 자라서 신생 백제의 충신이나 삼국 통일의 공신이 될지 뉘 압니까.
장군,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사람들이 누구시오?
장군도 그 중의 한 분, 일찍이 나라를 건질 선책엔 목숨을 걸려 않으시고 망국의 위기에 맞닥뜨려서야 무고한 장정과 가족까지 희생시켜서 청사에 이름을 남기려 하시니 그러고도 떳떳하시오?"
-[손창섭의 단편 '청사에 빛나리'] 중에서 계백의 아내의 말-
당신과
당신의 아내인 저와
당신의 아이들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란 없겠지요
적군이란 피의 값으로
여자와 살육과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 숨 끊기시고 난 이후의
우리의 운명을 걱정하신 건가요?
벌린 제 옷깃 안에
오도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세요
어쩌다 사람 손 아귀에 든 작은 새처럼 쿵쿵 울리는
그 아이들의 심장 뛰는 소리를 느끼시지요
당신은 검을 빼어 드시는군요
...(중략)...
패장의 가솔은 노비가 된다지만
노비로라도 살아가다보면
자식, 자식, 그 자식의 자식 때라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보 죽는 게 꼭 용기 있는 걸까요?
나라 위해 죽는다지만
그 나랏님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중략)...
여보 그러니 여보
우리 죽지 말고 살도록 해요
그게 안된다면 여보
저와 아이들이라도 살려주세요 여보 살려주세……!
...(중략)...
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먹이기가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
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 팼다.
1990년대의 서울, 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를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떼밀었다.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양애경의 詩'계백의 아내' ]중에서-
계백)
(사약 사발을 아이들과 아내 앞에 놓고)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제, 그거 마시고 먼저 가소.
계백의 아내)
머시라고? 아, 시방 이녁이 그라고 말할 자격이 있당가요? 그라믄 우덜이 아이고, 서방님, 아이고, 아부지, 이 약 먹고 뒤져불라요... 이랄 줄 아셨소? 에끼, 이 양반아,
계백)
길게 끌면 추해지고...그거 마시고 죽을 거여, 내 칼에 죽을 거여?
계백의 아내)
음매, 긍게 시방 생떼 겉은 내 새끼들한테 자진해서 뒤져 버리라고라?
씨만 뿌려놓고 밤낮 싸돌아 댕긴 인간이 인자 와갖고 뭣이 워쩌고 워쪄?
나가 시집와갖고 이날 평생 악 밖에 안 남은 년이여. 염병...
그라고 인간아. 니가 멋을 해 준게 있냐, 멋을, 어이?
전쟁을 하든가 말든가 , 나라가 쳐 망해불든가 말든가, 그것이 뭔데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
너거 애비 에미가 살았어도 너거 애비 에미도 이라고 죽여 불라냐?
계백)
호랑이는 죽어서 거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혔다. 제발 깨끗이 가장께.
계백의 아내)
멋이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새 뒤지는 거여, 이 인간아!!
-영화 '황산벌'의 계백(박중훈)과 계백의 아내(김선아)의 대화-
“사람을 논함에 있어서는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서 논해야 되는데, 계백은 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을 알고서도 그 몸을 아끼지 않았거늘 하물며 그 처자를 아낄 수 있었을 것이며, 임금을 배반하였겠는가?
백제가 망할 때 단 한 사람의 충의(忠義)도 없었는데 오직 계백만이 절개를 지켜 두 마음을 갖지 않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옛 사람이 ‘나라가 망하면 함께 죽는다’고 말한 바가 아니고 무엇이랴!"
-『표해록 漂海錄』의 저자 최부(崔溥;1454~1504)-
계백은 전쟁터에 나갈 때 나라는 반드시 망할 형세에 있었고 몸은 반드시 죽을 결심이 있었다.
만약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은 뒤에 처자가 적에게 잡혀 몸을 더럽히고 구박을 당하면서 ‘이 놈이 아무개의 처요 아무개의 자식이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신명(身名)을 더럽히고 인도(人道)에 위배됨이 큰 것이니 애초에 한 번 죽어 마땅함을 얻느니만 못하다.
웅어취사(熊魚取捨;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뜻)는 바로 이때에 있는 것이니 어찌 한 가닥 목숨을 차마 끊지 못하여 끝없는 치욕을 당할 것인가?...
대체 장수가 되는 도(道)는 무엇보다도 내 집과 내 몸을 잊은 뒤라야 사졸들의 죽을 결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내가 먼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둔다면 군심(軍心)이 해이해져 각각 제 살 궁리와 처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사기를 저상(沮喪)시키는 것이다.
- 조선 후기의 학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
첫댓글 재미있군요. 좋은 자료입니다. 영화 볼 당시에는, 김선아의 대사가 강렬했었는데요.
저도 잘 읽었세요. 아마 옛날에 내가 계백의 아내였으면 나도 김선아처럼 씨팔조팔 했을겨..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속 김선아의 대사가 하도 속시원해서(!) 다른 글들을 모아 보았더랬었습니다.
여자들은 모두 계백의 아내가 되는 군요.ㅎ.. 저는 역사의식이 없어서그런지 그놈의 경계선때문에 억지로 희생되어지는 목숨들에대해 여러 생각들이 듭니다. 그냥 한 덩어리였으면..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