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그녀와 두 번째 만나는 날.
그런데 약속장소는 지하철역 입구.
장소 정하는 게 참 그렇더라구요.
내 친구들이랑 만나면 술이나 마시지 커피 마시러 가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또 그녀도 워낙에 아는 곳이 없다고 하고,
그래서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냥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했죠.
계단을 신나게 뛰어 올라가 보니,
어라! 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아.. 나 늦은 거 아니죠?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메고 있던 가방에서
차가운 캔커피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콜라를 한 캔씩 꺼내들더니 날더러 고르랍니다.
"하하~ 혹시 부모님이 자판기 사업하세요?"
"아니 무슨 음료수를 종류별로 샀어요."
그랬더니 그녀가 혀를 쏙 내밀며 대답하길,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사왔다구요.
그 마음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난 오만상 주책을 부려봅니다.
"아유~ 저는요, 다 잘 먹어요."
"수돗물도 잘 마시구요. 아! 산성비, 산성비도 무지 잘 마셔요."
"야~ 이거 진짜, 내 입이 무지 호강하네."
"세 캔 다, 내가 마셔도 되죠? 하하~"
[♀] 그 여자...
점심때 친구한테 자랑했거든요. 오늘 드디어 데이트 한다구요.
친구가 묻더라구요. 오늘 만나서 뭐할 거냐고.
아직 모르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친구가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해줬어요.
뭐 먹을까, 어디 갈까 물어볼 때 마다 '글쎄' '아무거나'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
데이트 상대론 아주 별로라구.
처음에는 내 뜻을 다 따라주나 싶어서 고맙다가도,
나중엔 무슨 나하고 만나는데 아무 생각도 없나 싶어서 짜증나고 서운할 수 있다는데.
아! 뜨끔했죠.
어제 통화할 때, 내가 딱 그랬거든요.
사실 좀 내가 우유부단하긴 하지만
근데 난 정말로 그 사람 편한데서 만나고 싶고, 그 사람 좋아하는 거 먹고 싶고 그런 건데.
그래서 내가 절대 무성의한 게 아니란 걸 보여주려고, 미리 나가서 음료수를 샀어요.
근데, 나의 우유부단함이 어디 가겠어요.
뭘 골라야할지 한참 망설이다가 음료수를 세 캔이나 사버린 거 있죠.
뭐 다행히 그 사람은 기분 좋게 받아 주더라구요.
좀 우습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다 전달된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