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에 군청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서둘러 7시에 집을 나섰다
7시 25분에 도착한 군청 앞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아서
혹시 내가 출발 장소를 잘못 알고 왔나 싶어 지부장님께 전화를 했다
지난해에는 읍사무소 앞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런데 군청마당에서 차를 돌려나오니
정시인님이 보여서 반가웠다 조금 기다리니까
함께 여행을 떠날 선생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곧이어 버스도 도착했다
이번에는 버스가 꽉 차게 많은 선생님들이 참석해 주셨다
8시에 출발하여 맑고 훈훈한 봄바람을 가르며 증평 쪽으로 출발했다
봄이 오는 길목은 촉촉이 젖은 대지 위에 나무들은 푸르스름하게
옅은 색이 감돌고 햇살은 밝게 빛나고 있다
증평 톨케이트에서 두 선생님을 태우고 버스는 남쪽으로 기운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남으로 내려 갈수록 나무들은 새움을 틔우고 매화꽃 산수유꽃이 화사하게 손을 흔든다
파란 보리밭이 융단처럼 부드럽게 깔려 있고 띄엄띄엄 모여 앉은 농촌의 풍경은 평화롭다
몇 곳의 휴게소를 들러 12시 30분에 벌교에 도착했다
꼬막정식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고 바로 옆의 조정래선생님의 태백산 문학관에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해설사는 먼저 소설속의 주인공인 현부자집으로 안내하여
한참 동안 소설속에 호화로웠던 현부자집을 산책해보았다
행랑채에 누각을 올린 독특한 방식의 멋진 기와집이 날아 갈듯 날개펴고 사뿐이 앉아있다
양지바른 제석산 치마폭에 자리한 명당에 위엄있게 앉아 있는
현부자집은 원래 밀양 박씨의 소유였다고 한다
한참 동안 현부자집 마루에서 소설속에 빠져 들다가
앞의 작은 연못과 뒤의 소화집을 둘러 보고
정갈한 황토 돌담에 좁다란 골목길도 참 오랫만에 만나는 정취가 묻어난다
다시 조정래문학관으로 돌아와 그 옆의 자연석로 만든 거대한 벽화를 보며
이종상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호랑이상과
그 허리뼈 태백산맥을 형상화 하였는 설명을 들으며 문학관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 문학관이나 비슷하게 대리석으로 잘 정돈된 실내에
여러가지 지료와 선생님의 손 때묻은 문필품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특히 16500 매의 소설 태백산맥의 원본 원고지와,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본과
또 그 의 제자들 백여명의 필사본이
탑처럼 높게 쌓여 유리장안에서 잠들어 있다
요즘 우리들은 원고지 한장 쓰지 않고 글을 쓰는 세대인데
그 많은 원고지 분량에 현깃증난다
우리는 요즘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수정하기도 쉽고 지우기도 쉽고
또 쓰기도 쉬운 좌판만 두들기면 되는 축복받은 세대다
일정관계상 횡갯다리와 부용교를 둘러보고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빗줄기를 세며
서둘러 낙안읍성으로 차를 달렸다
희뿌연 하늘을 가르고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낙안읍성에 도착한 시각은 3시30분경이다
몇 번 다녀간 낙안읍성은 포장을 하지 않은 흙길로
마침 부는 황사바람과 어우러져 을씨년스럽기까지하다
버스 뒤를 따라오던 먼지 뭉치가 어느새 앞질러 달려가고 거센 바람결에
매화도 산수유, 개나리도 달달 떨고 목련은 꽃망울에 거뭇하게 상처가 남아 있다
임경업장군 비각을 지나 신문고 앞을 지나
동헌과 객사에 들러서 해설사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동헌을 바라보니 청와대가 연상되는 광경이다
뒤의 금전산이 삼각산처럼 딱 버티고 서서 조화롭다
저 산의 정기를 받아 전국에서 로또 당첨 율이 가장 높은 지방이라며
금전산 이름 덕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주욱 둘러 보며 어마어마한 무쇠솥 옆에 말 두 마리가 사이 좋게 한가롭다
해미읍성은 성곽 위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돌계단으로 오르 내릴 수 있는
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중간 쯤의 성곽 옆에 국악인 김양남선생님의 거처가 있고
우리는 그 옆 원두막에 둘러 앉아 선생님의 공연을 들었다
오랜만에 국악공연을 보며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5시가 지나서 출발한 버스는 점점 어두워지는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열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첫댓글 주말에 좋은곳에 다녀오시었내요.
남야읍성 저도 두번 간 기억이 나내요.
다녀오시르랴 수고 하시었어요.
그러세요 ~~~~그곳을 세계문화 유산지로 지정하려고 했는데~~~겉모습옛날 이지만 속에 가전제품에 문명이 너무 많아서 안되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