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호 어딘가를 갔더니, 연못가에 거위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몸통은 가만히 고정한 채 우리 일행이 지나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가며 심상찮다는 표정으로 째려봤다.
그 모습이 묘하기도 하고 제법 귀엽기도 하여 아는 척 다가가니, 갑자기 뭔가 기분이 더럽다는 표정으로 움찔움찔하더니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골짜기를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한 그 소리가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다 우리 쪽을 쳐다본다.
낮선 놈들이니까 자기들 곁에 다가오지마라는 뜻이기는 하겠지만 쾍쾍거리는 그놈들 소리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시끄럽다.
더욱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은, 거위가 대여섯 마리 밖에는 안 됐지만 다가오는 사람을 째려본다거나 고함을 지른다거나 하는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똘똘 뭉쳐 행동을 통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동물농장을 지배하던 돼지들도 거위한테 쫓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죠지 오웰의 배알마저 뒤틀릴 일이니…
어쨌든 거위라는 놈은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는 동물로서, 외관상으로는 어느 정도 친근감을 주는 듯하지만, 곁으로 다가가다 보면 진짜 만만찮은 웃기는 놈들이 바로 거위들이라는 단정을 하게 된다.
백과사전을 보면, 거위는 기러기科에 속하며 기러기를 길들인 것으로 날지 못하는 가금류로 되어 있다.
반면에 기러기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로 V자로 무리지어 장거리를 날아다니며 오리科에 속한다(?)
아무튼 기러기는 우리 모두가 가을만 되면 그 술렁이는 마음으로 불러댔던 동요의 주인공이요, 해마다 계절을 오가며 지구의 남북을 오르내리는 자연이 선물한 귀한 손님들이다.
V자로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입이 떠억 벌어지며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그 V자 형태는 바로 보텍스(vortex, 소용돌이)를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그들만이 가진 장거리 비행주법이다.
즉, 맨 앞에서 날고 있는 리더 기러기의 양 날개 짓에 상승기류가 생기고 뒤따르던 기러기가 그 기류를 타면 큰 날개 짓 없이 날수 있어 스스로 힘을 비축하게 된다.
하지만 맨 앞의 리더 기러기는 보텍스 효과를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치게 되면 임무 교대하여 뒤로 물러나 앞서 가는 기러기의 기류를 타고 몸이 지치지 않게 에너지를 비축한다.
기러기는 멀리 날기 위해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무리지어 날지만 그들에게도 영원한 리더란 없다.
따라서 리더를 양보하거나 빼앗거나 하는 일도 없다.
V자 대열을 이끌라는 리더의 역할이 주어지면 날개 짓에 지쳐 임무를 교대할 때까지 맨 앞에서 힘차게 날개 짓하며, 낮에는 지형지물과 지구의 각도를, 밤에는 별자리를, 기본적으로는 자기장을 바탕으로 이용하여 대열을 목적지로 이끌어야한다.
리더가 방향을 잘못 잡아 삼천포로 빠지게 되면 모두 죽음뿐이다.
때문에 기러기들에게도 역시 리더란 고독하다. 즉 자신의 희생과 봉사가 뒤따르며, 방향타를 잡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기러기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생존본능은 곧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고 희생해야하는 일종의 共和主義 법칙이다.
이것이 인간이 기러기에게 배워야할 점이다.
이런 기러기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평소 무리지어 날지만 조류독감에 한번 무너지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바이러스를 이동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가끔씩 조류독감이니 뭐니 해가며 법석을 떠는데, 그놈들이 의도적으로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상 무조건 미워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치판에서의 기러기는 자신의 이익을 쫓아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이비 정치인을 일컫는 말로서 철새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의 내로라할만한 현역 정치인 중에는 기러기들이 제법 많이 있고, 또한 그들을 쫓아 왔다리갔다리하는 철새 정치꾼들은 무진장 많다.
작금, 조기 유학열풍이 우리나라에 불어 닥치면서 ‘기러기아빠’ 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기러기는 남북의 대륙을 오가지만 대다수의 기러기 아빠는 동서의 대륙을 오간다는 게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서울과 부산을 오가거나 호주 등 남북 대륙을 오가는 기러기아빠도 있긴 하지만 주로 미국이나 유럽을 선호하는 조기유학파 사람들을 빗댄 말이니 곡해는 없기 바란다.
反美를 외치는 이들에게도 의외로 그러한 기러기 아빠가 많다.
모 대통령이 재임 중 줄기차게 반미를 외쳐 왔었는데 정작 그의 아들 딸 사위에다가 조카은 유학이니 투자니 해가며 몽땅 미국으로 보내 살게 했다. 속으로는 미국을 그리워한 기러기아빠였다.
그 이전의 대통령 역시 재임시절 아들을 미국에 보내 살게 했다.
어떤 여가수가 거위도 언젠가는 날 수 있는 꿈이 있다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미안하게도 거위는 절대로 기러기처럼 날 수가 없다. 그냥 시끄러울 뿐…
어쨌거나 나라를 다스림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조직을 원만하게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V자로 먼 여행을 떠나는 기러기의 정신을 심각하게 음미해 볼 일이다.
-홍다구-
<참고>
(위키백과) 거위는 기러기과에 속하며 학명은 Anser domesticus 이다. 기러기의 변종으로, 몸빛은 희고 목이 길며 부리는 황색이다. 헤엄은 잘 치나 날지는 못하는 가금(家禽)이다. 수명이 길어 40-50년을 산다. 태어난 후 2년이 지나면 번식능력을 갖게 되는데, 수컷 한 마리에 암컷 3-5마리가 짝짓는다. 이른 봄부터 산란을 시작하여 10-15개의 알을 낳으며 알을 품는다. 새끼는 약 30일이면 부화한다. 병에 강하고, 잡식성으로 아무것이나 잘 먹기 때문에 사육하기가 쉽다. 물속이 아니면 교미를 잘 하지 못하므로, 육지에서 사육하는 경우에는 수정률이 떨어진다. 육용(肉用)으로 쓰는 외에 깃털은 이불·방한복 등에 쓰인다. 애완용 동물로 기르는 경우가 많은데, 낯선 사람을 보면 요란하게 울어대고 밤눈이 밝아 집 지키는 개 대신 훌륭한 파수꾼 노릇을 한다.
(위키백과) 기러기(goose)는 오리과에 속하며 학명은 Anser fabalis 이다. 몸이 크고 몸빛은 암갈색이며 부리 밑부분은 황색이다. 목은 길고 다리는 짧다. 깃털은 방수가 되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날개는 길고 뾰족하며, 다리는 짧고 발에 물갈퀴가 있다. 몸무게는 1.5-4kg이다. 논·밭·저수지·해안·습지 또는 개펄 등지에 내려앉으며, 하천가와 하천의 섬에서도 볼 수 있다. 벼·보리·밀 및 연한 풀·종자 등을 먹는다. 북반구의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남쪽으로 이동한다. 전세계에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흑기러기·회색기러기·쇠기러기·흰이마기러기·큰기러기·흰기러기 등이 알려져 있다. 이른 봄에 북극권의 번식지로 이동해서 짝짓기를 하며 가을에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V자 모양으로 큰 무리를 이루어 이동한다. 거위는 기러기를 가축으로 길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