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고전 16:13-18)
이 시간에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시골학교 선생님이 피아노가 필요해서 당시에 가장 부자인 포드자동차 회장인 헨리 포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회장님 우리 학교에 피아노 한 대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답장이 왔는데 봉투를 열어보니까? 10센트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고 그 10센트로 땅콩을 샀습니다. 선생님은 학교 자투리땅에다 땅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을 수확해 팔아서 이익금의 얼마를 포드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저축을 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드디어 땅콩을 판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는 돈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께서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회장님의 도움으로 이제 피아노 살돈이 모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편지를 본 포드는 만 달러와 함께 “선생님 같은 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내게 요청했지만 기부금을 주고 나면 작다고 투덜대거나 아무 응답이 없거나 하는데 선생님같이 이렇게 작은 동전의 기부금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그 이익까지 돌려주시니 너무 감격했습니다. 여기 만 달러를 드리니 피아노를 사시고 앞으로도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시면 액수와 상관없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참 시원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마음의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것, 시원한 곳, 시원한 사람이 생각나고 그리운 때입니다. 잠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했고, 고전16:18에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할까요?
한 마디로 본문의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시원하게 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시원하게 했다는 말의 원어는 ‘힘이 나게 했다(Refreshment)’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런 힘이 나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은?
1.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13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했습니다. 크고 강한 믿음이 시원함을 줍니다. 한국교회가 한참 크게 부흥할 때 크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나타나 얼마나 불신자는 물론, 대리 만족이라고 할지 우리에게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을 보실 때는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노아도, 에녹도, 아브라함도, 요셉도, 다니엘도, 욥도,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빌립도, 스데반도 다 믿음을 따라 살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 그러면 책망을 받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히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흔들리지 않고 강한 믿음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강하게 믿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도 사람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했습니다. 성경은 스데바나가 아가야 지방에서 첫 열매라고 소개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 의미는 먼저 믿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알곡의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참 신앙을 소유한 사랑의 하나님을 닮은 자였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우주의 보물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지위 높고 많이 가졌어도 사랑 없으면 어디에 쓰겠습니까? 위대한 행위도 사랑 안에서 행하지 않았다면 무의미합니다. 나라를 위해 죽었다고 다 영웅은 아닙니다. 마지못해서 죽었다면 그냥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이순신처럼 나라를 사랑하여 싸우다 목숨을 바쳤다면 그것은 영웅입니다.
요삼1:3-4에 요한이 가이오에게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했습니다. 여기 진리 안에서란 가이오가 사랑으로 행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 집을 예배의 처소로 내주고 고난당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다해 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랑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부흥을 주셨습니다. 행2:47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 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을 기쁘게 한 사람은 스데바나 외에도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유복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노예출신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바울과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15절 말씀대로 섬기기를 작정했습니다. 사랑을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섬기는 자리에서 협력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별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나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군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들은 무명의 천사가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이처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결심한 사람과 안 한 사람과는 다릅니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섬길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결심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말씀하셨습니다.
17절 보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시원함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자기는 명절이나 연휴 때 군에서나 회사에서나 남 다 휴가 보내고 언제나 자기 차지였다고요. 지금도 남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무료로 주면서 전도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무장하여 스데바나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3. 충성된 사람입니다.
16절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스데바나 같은 성도를 충성된 자라고 말씀합입니다. 잠25:13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주인의 마음을 알아서 그 맘에 딱 들게 하기 때문에 주인의 마음이 시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충성되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 행하시는 것을 양식으로 알고 행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굶주린 분이셨습니다. 배고픈 욕망처럼 강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때 만족하게 먹고 싶은 것이 소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를 만족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고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마태 25장 달란트 비유에 충성된 자가 칭찬 받은 이유가 뭡니까? 주인의 의도를 알고 그 의도에 맞게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 입장만 생각했지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충성된 자는 더 받았지만 불충한 자는 가진 것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미국의 최대 부자였던 록펠러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 돈을 많이 벌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독하게 살았습니다. 그에게 이웃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악덕업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산 결과 33세에는 백만장자가 되고, 43세에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설립했고, 53세에는 당시 지구상에 유일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53세에 머리에 독성이 퍼지는 독두증에 걸려 머리칼도 눈썹도 빠지고 없어졌습니다. 몸은 미라처럼 오그라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사방에 원수가 있어서 밤낮 경호원에 둘러싸여 사생활도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즐거운 것이 하나도 없었고, 삶에서 웃음과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의사는 그가 1년 이상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신문 기자는 기뻐하며 그가 죽으면 바로 기사를 쓰려고 미리 부고 문을 써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 잠 못 이루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동전 하나도 내 것이 아니구나!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면서 살자.” 그 때부터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물질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교회와 자선단체와 학술단체에 엄청난 기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때부터 록펠러는 잠도 잘 자고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8세까지 하나님의 일 많이 하다가 하나님께 갔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충성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잘하여 하나님의 마음 시원하게 해드리고 여러분의 마음도 시원해지는 귀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문..한성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