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TV 무상사 일요초청법회 / 종범스님 법문]
도(道)라는 말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불교에서는 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해탈, 열반, 반야, 보리.. 이런 것을 다 그냥 도(道)라고 해요.
해탈도, 열반도, 반야도, 보리도.. 불교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도라고 해요.. 불도(佛道)..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입도(入道),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반본환원(反本還源) - 근본으로 돌아간다.. (나무의 뿌리 本, 강물의 최초 시원 源)
인간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디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자기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깨달음은 밖으로 향하는 육정(六情)을 거두어서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총섭육정 귀일심원(總攝六情 歸一心原) <원효성사 '기신론'>
▶발진귀원(發眞歸源) 진심을 일으켜 근원으로 돌아감 <능엄경>
진심을 드러내어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할 할 때 항상 무언가 섞여 있어요.
정(情)이 가려 있어요. 육정이..
그렇게 정이 가려 있지 않은 게 진(眞)이에요.
내가 어떤 형태를 보고 소리를 듣고 하는 것이..
그 소리와 형태에 내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소리를 들을 때, 듣는 마음은 빼고 그 소리만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되는가? 지금 멍~ 할 텐데 ㅎㅎ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눈과 전혀 관계 없는.. 물건만 있을 수 있나?
시장에 가서 많은 물건을 보는데.. 그것에 보는 자기 마음이 있다는 것은 놓친다.
보는 마음은 쏙 빼고 그 물건만 존재할 수 있는가? 이거 알면 깨달음이에요.
물건 속에 마음 없고, 마음 속에 물건도 없는데
물건을 볼 때 보는 마음 없이 그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알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도 다 자기 마음이고, 귀에 들리는 것도 다 자기 마음이다..
그런데 미(迷)했다고 하는 것은 보고 듣는 소리와 형태만 쫓아가고, 보고 듣는 자기 마음을 잃어버린다..
이걸 미했다고 해요. 미혹하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볼 때도 보는 마음이고, 들을 때도 듣는 마음이다..
소리의 티끌(聲塵), 모양의 티끌(色塵)은 사라지고, 듣는 마음 보는 마음만 있다..
▶이것을 멸진합각(滅塵合覺)..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한다고 그래요.
보는 마음 떠나서 모양이 있다고 할 수 없고, 듣는 마음 떠나서 소리가 있다고 할 수 없어요.
무엇을 보더라도, 하늘은 보거나 땅을 보거나 사람을 보더라도..
보는 마음을 떠나서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알고 보면 보이는 모양, 들리는 소리.. 모든 게 마음이다..
색의 티끌은 자취가 없다.. 멸진합각(滅塵合覺)을 입도(入道)라고 합니다.
이런 게 법문이에요.
모든 선지식이, 불조가 이런 것을 가르치는 거예요.
"너희들은 미했다.. 왜냐? 대상만 알지,
그 대상을 보는 마음을 모른다.."
▶그리고 입도를 평상심행(平常心行)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쓰는데 분별심으로 마음을 쓰면 깨닫지 못한 거예요. 분별심행(分別心行)
좋다 나쁘다, 있다 없다.. 분별심을 쓴다(行).. 그래서 분별심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은 평상심행이라고 하는데, 평상심을 항상 쓰는(行) 것..
여기에서 평(平)은 시방이 없는 것, 무방이 평이에요.
상(常)은 시간이 없는 거예요. 무시
동서남북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도 없다..
무방무시해서 일각이, 하나인 본각이 자재하는 것.. 이것을 평상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평상심을 그냥 평소에 마음 쓰는 대로
좋으면 좋다고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하고.. 뭐 그런 것을 평상심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평상심이 아니에요. 희로애락의 평상심이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하고, 범부와 성인도 초월하고, 유무생사도 다 초월해서..
무방무시.. 항상 일각뿐.. 하나의 본각.. 하나의 마음뿐인 거예요.
그것이 자재하는 거예요. 그냥..
이게 평상심이에요.
그래서 "도가 뭡니까?" 하면 "평상심이 도다".. 라고 하는 겁니다.
차별심 없는 게 평상심이에요. 좋다 나쁘다, 있다 없다 분별하지 않고..
범부 성인 분별하지 않고.. 마음에 때(분별,망상)가 없는 것..
이 컵이 보는 마음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마음이에요.
<1> 마음인데 첫 번째는 생멸심(生滅心)이에요. 생겼다 죽었다, 생겼다 죽었다..
<2> 그리고 두 번째는 적멸심(寂滅心)이에요. 분별 없는 마음..
그릇에 그릇이 없어요. 그것에 그것이 없다..
산에 산이 없고, 물에 물이 없다.. 왜 그런가?
다 인연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생멸인데.. 그대로 적멸이에요. (생멸이 적멸, 색이 공空)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에 색이 없고, 공에 공이 없다.. 이것을 중도원융이라고 하고
<3> 이것이 세 번째 원융심(圓融心)이에요.
생멸인데 생멸도 아니고, 적멸인데 적멸도 아니고
색멸과 적멸이 화합해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이것을 원융이라고 해요.
그럼 근원은 무엇이냐? 생멸도 아니고, 적멸도 아니고, 원융도 아니고..
'그대로'다.. 그대로.. 그냥 그대로.. 이것을 어려운 말로, 필경(畢竟)이라고 합니다.
다른 건 다 없고 그것만 있다.. 이것을 필경이라고 해요.
<4> 그래서 이것이 네 번째 필경심(畢竟心)이에요.
(컵을 들고) 뭐라고 해도 그냥 이것은 이거다.. 그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다.. 필경심
이렇게 필경심 그대로 증득하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깨달은 겁니다. (自證門)
그리고 그 마음을 자기가 쓰게 됩니다. (自在門)
☞ "빨간 사과는 깜깜하게 어둔 방 속에서도 빨간 사과일까?" http://cafe.daum.net/santam/IQ3i/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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