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국경 지방 버윅과 뉴캐슬에서 얻은 경험은 존 낙스에게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갤리선의 노잡이로서 헤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노예생활을 통해 신장염과 위궤양을 얻어 계속되는 고통 때문에 밤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고 낮에도 목회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큰 지장을 받고 있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가 처음으로 특정 교회의 목회를 담당하게 됨으로써,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예선에서의 경험을 통해 특히 기도에 힘쓰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버윅과 뉴케슬에서 당한 새로운 시련들은 또한 새로운 성품을 개발할 것을 강요하였다.
한 곳에 정착하여 거주하게 됨으로써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낙스는 사실 롱니드리를 떠난 이후에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들을 성경 연구와 주석 읽는 데에 바쳤다. 어떤 편지를 보면 그가 크리소스톰의 「씨앗」을 읽는 도중에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또 특히 존 칼빈의 주석 중 예레미야 10:11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이 요절이 히브리어가 아닌 갈대아어로 나타나고 있음을 특기하고 있다.
따라서, 낙스가 그의 모든 저술과 설교를 통해 성경을 강조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런던, 뉴캐슬, 버윅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보내는 경건한 서한」(1544)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올 한탄을 예언한 것은 “머얼린의 예언도 아니요, 잘못된 선지자들의 불길한 점괘”도 아니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여 자기 시대에 충실하게 적용시킨 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학술적 연구의 결과는 곧 그의 설교들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으니, 그는 흔히 설교를 가리켜 “나의 주인님의 나팔을 부는 것”(the blawing of my Maister‘s trumpet)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복음을 진실로 해석한 모든 충실한 선포에 자주 적용한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팔수”로서 낙스는 발네이브즈의 신앙고백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신학, 즉 칼빈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다. 낙스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주관적 반응보다도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선하심과 오직 그의 자비”에서 비롯된 예정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믿음에 의한 의롭다 하심에 대한 교리가 함께 설명되는 그의 성찬교리는 순수 칼빈주의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1552년 가을 경에는 이미 낙스가 완전 개혁주의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버윅과 뉴캐슬에서의 그의 사역뿐만 하니라, 전 생애를 통해 항구적인 영향을 앞으로 미칠 중대한 사태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낙스는 자기 스스로가 고안한 예배 순서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예배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설교를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었다. 이러한 설교의 중요성 때문에 낙스의 그의 가장 중대한 책임이야말로 부귀를 위해서 인간들에게 굴복함 없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뉴케슬과 버윅 지방의 교인들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1558년의 편지가 남아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명료한 진리를 외치기를 두려워해 본 일이 없다. 또한 성경의 주석이든 설교이든, 논쟁의 자리이든, 글이든 막론하고, 세상의 출세나 부귀나 명예를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성경의 일부를 오염시킨 일은 없다 — 당신들 가운데 그 누구든지 내가 책략이나 불법을 통해 부귀영화를 얻고자 한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이 있으면 부디 나서주기를 바란다.”
- 스탠포드 리이드, 「하나님의 나팔수, 존 낙스의 생애와 사상」, pp 145-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