やまと百景17
よさこい鳴子踊り その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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よさこい2004
最大150人×180チームが集まると人口30万人の地方都市が巨大ディスコになる。サポ.―ターを含め
るとどれだけの数になるのだろう。祭りの初日は、統計上もっとも雨が少ない8月9日と決まっており、土日
は関係なし。通常の祭りは日暮れから始まって、ほどよい時刻に終わるけれども、「よさこい」は、真夏の
炎天下で朝から夜まで2日連続である。上位チームは前夜祭と後夜祭があるから踊り子は4日丸ごと仕事がで
きない。
市内各所に踊り場があって、ひと踊り終えたチームは、大型バスに乗り込んで次の舞台に向かう。100チ
ーム強が参加した数年前までは、踊りの舞台と通過時刻が細かくプログラムされていたけれども、チーム数
が増え、不確定要素が格段に増加した今は、空いた舞台でかってにやってくれということになった。踊りの
ゲリラを携帯がつなぐ。
参加費は通常3万円もするが、3万円×150人=450万円なので、どのチームも台所は苦しい。地方車
に特大の音響装置を載せれば100万円やそこらは必要だ。衣装も振り付けも毎年変わるので安く見積もっ
て1万円を超す衣装代×150人=150万円。値引きしてくれない大型バス3台×13万円×2日=78
万円。これに参加費、振り付け代、インストラクターへの謝金、弁当代、打ち上げの宴席まで設けると大ア
カになる。そこで企業が応援するわけだが、あちらこちらから奉加帳が回ってくる会社の経理は渋い顔だろ
う。
チーム「檮原」が参加費を2万円に抑えられるのは、役場の応援と地域共同体の支援あっての賜物だ。わか
りやすくいえば奉加帳をさげて回る個別撃破の成果である。地理的にも不利な状況にある郡部が、町をあげ
てよさこいに参加するのは初めてのケースだ。当然のごとく不協和音も聞こえるが、5月28日現在、4年
目の今年も動き始め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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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舞伎の大見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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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ish 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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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祭り博士がオヤブンと出会った
東京大学文化人類学科の伊藤亜人(あびと)教授。珍島で論文を書いた韓国通。金教授のボス。奥様の関係
で高知とご縁があるらしく、夏になると「よさこい」の周辺に出没して高知新聞に談話を寄せる。同じく夏
になると鳴子につられて高知市をさまようお祭り博士が大音響のアーケードでボスと出合った。「あんた何
やってんの?」「先生こそどうしたんですか?」というような出会いではなかったろうか。離れた師弟を
「よさこい」がつないだ。
高知新聞に寄せた伊藤氏の談話によると、通常の祭りは暴走族の邪魔が入ったりするものだが、そのような話
は「よさこい」では聞かない。不思議な祭りだということであるが、お祭り博士によると「いや暴走族のアンチ
ャンも踊っているから」ということになる。土佐の高知のカーニバルには、職業、年齢、国籍を超えて、あらゆ
る層が参加する。
赤子を抱いたお母さんも踊れば、お迎えの心配をしたくなるようなぢっさまも法被(はっぴ)姿で元気だ。保
育園から小中高校、大学、専門学校、障害者施設、銀行、生保、パチンコ屋、市役所、高知県庁……商店街チー
ムは当然のこととして迷彩服の自衛隊まで踊る。白人も黒人も東洋人も踊る。踊らない職種には何があるのだろ
うと考えたら、さすがに警察はいないことがわ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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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パリアン
高知女子大学と組んだ日韓共同チーム
たぶん忠南大学のコレアンダンサー
たしか1992年のことだった。この祭りに韓国の学生を参加させてはどうかと提案したら金良柱氏は渋い顔で
「他でもない日本の祭りだ。歴史の縛りがあるので難しいだろう」とつぶやいた。ところが1997年に始まっ
た「ゆすはら国際スクール」の一期生は、見物している途中で耐えきれなくなったらしく、高知新聞の西泰正さ
んに仲介してもらって飛び入り参加した。ハレの舞台には審査員がいて、その多くは酔っぱらっているのだが、
これぞと見た踊り子にメダルを贈る。さしたる根拠はないのだが、踊り子にとってメダルほど嬉しいものはない
ようだ。審査席でメダルもらった踊り子は、満面の笑みを浮かべて列に戻る。ソウル大学に合格しても、あの笑
顔は見せないだろう。
踊り終えたスクール一期生は、メダルを首にぶら下げ、とびきりの笑顔を見せながら高知県知事を表敬し
た。金泳三大統領以前の在日韓国朝鮮人は、日本で生まれ、日本に税金を納めながらも日本の公務員にはな
れないというおかしな決まりがあったのだが、その「国籍条項」を橋本大二郎知事が撤廃した。さまざまな
思いを込めて表敬したのであろうスクール生を橋本知事は笑顔で迎えた。当時の知事は若かった。キム教授
にも青年の面影があり、自分も毎日わくわくしながら生きていた。やまと百景9「落ち穂拾い」では、スク
ールのつらい側面ばかり寄せ集めたが、もちろんスクールには愉しいことも一杯あった。
それから10年、スクール一期生は社会の中堅となり、おれたちもトシをとったが、トシをとったら意欲が
薄れるというのはウソだ。年齢を重ね、経験が積もると若い頃には想像もできなかった世界が広がる。興味
の対象が変わり、時間の密度が増し、若い頃とは別の世界に入る。若さと老齢とどっちがよいかという比較
は意味をなさない。若い子は汗をかき、トシヨリは認識をたのしむ。与えられた時間の中で人はどんどん変
化する。
同じことを繰り返して退屈するのは、いかがなものかと考えてスクールを地域大学と改めた。立場、年齢、
国籍にかかわらず、それぞれの認識世界の延長でアタマとカラダをって愉しんぢゃえという集まりである
。キムウンヘさんを除き、人生中堅ないし折り返し点を超えた地域大学2005のメンバーも踊った。問題もあ
り、正直なところ一時はどうなることかと心配したが、金善建教授の一言でクリアした。異年齢の集団に
は、異文化の摩擦そのものを愉しむ余裕があった。そのあたりがスクールと地域大学の違いかと思われる。
060528助村栄
야마토 백경(17)
요사코이나루코오도리 -그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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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코이2004
최대 150명x180팀이 모이면 인구 30만의 지방도시는 거대한 디스코 경연장이 된다. 게다가
서포터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마츠리가 시작되는 첫날은 기상통계
상 가장 비가 적게 내리는 8월 9일로 정해져 있으며 요일은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마츠리
는 해질 무렵에 시작되어 적당한 시각에 끝나는 것이 보통인데,「요사코이」는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틀 연속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상위팀들은 전야제와 후
야제까지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춤꾼들은 꼬박 나흘 동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한 무대에서 춤이 끝난 팀은 대형 버스를 타고 시내 곳곳에 마련된 다음 무대로 이동을 한
다. 100여 개 팀이 참가했던 수년전까지는 춤추는 무대와 통과 시간 등이 상세히 프로그램
되어 있었지만, 참가 팀이 늘어나고 불확정요소가 증가한 지금은 비어있는 무대에서 적당히
진행하라는 식이다. 휴대전화를 통해 긴박하게 진행되는 마츠리는 마치 게릴라전을 연상케
한다.
참가비는 통상 3만 엔이나 된다. 3만 엔x150명=450만 엔이 되므로 참가팀 모두 형편이 만
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카타샤에 설치하는 대형 음향장치가 100만 엔 정도에, 의상이나
안무도 매년 바뀌므로 의상비가 적게 잡아 1만 엔x150명=150만 엔, 절대 깎아주지 않는 대
형 버스 3대x13만 엔x2일=78만 엔. 여기에 참가비, 안무비, 지도 사례비, 도시락, 뒤풀이까
지 포함하면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래서 기업이 지원을 하는 셈인데, 여기저기서
기부금을 요청하는지라 회사의 경리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팀「유스하라」가 참가비를 2만 엔으로 낮춘 것은 야쿠바와 지역공동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쉽게 말하면 기부금 명부를 들고 각개격파를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
로 불리한 상황에 있는 군지역이 정(町)을 앞세워 요사코이에 참가한 것은 처음 있는 사례
였다. 당연히 불협화음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5월 28일 현재, 4년 째로 접어든 올해도 마츠
리 준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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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부키의 오미에?(과장되거나 유난히 눈에 띄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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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ish 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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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리박사가 오야붕과 만났다.
도쿄대학 문화인류학과의 이토아비토 교수. 진도에서 논문을 쓴 한국통. 김교수의 보스.
사모님 쪽으로 고치와 인연이 있는 듯, 여름이 되면 「요사코이」 주변에 출몰하여 고치신
문에 담화를 기고한다. 마찬가지로 여름이 되면 나루코에 이끌려 고치시를 방황하는 마츠리
박사가 아케이드에서 보스와 만났다. 「자네, 여기서 뭐하고 있나?」「선생님이야말로 어쩐
일이세요?」이런 식의 만남이지 않았을까? 「요사코이」가 헤어졌던 사제를 다시 만나게 해
준 것이다.
고치신문에 실린 이토씨의 담화에 의하면 보통의 마츠리에는 폭주족의 방해가 있기도 하는
데, 「요사코이」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단다. 이 말은 신기한 마츠리라는 뜻이
겠지만, 마츠리박사는 「폭주족인 안씨도 춤을 추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란다. 토사 고
치의 축제에는 직업, 나이, 국적을 초월한 모든 층이 참가한다.
간난 아기를 안은 어머니가 춤을 추는가 하면, 저승사자를 걱정하고 싶어지는 할아버지도
핫피차림으로 춤을 춘다.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학생, 대학교, 전문대학교, 장애자시설, 은
행, 생명보험, 파친코, 시청, 고치현청 등등.......상인팀이야 당연하겠지만 위장복 차림의
자위대까지 춤을 춘다. 흑인이나 백인, 동양인도 춤을 춘다. 춤을 추지 않는 직종이 무엇이
있나하고 생각해봤더니 과연 경찰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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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패리안(저팬+코리안)
고치여자대학과 함께 출전한 한일공동팀
아마도 충남대학의 코리안 댄서
필경 1992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 마츠리에 한국 학생을 참가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
을 했더니 김양주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일본의 마츠리다. 역사적인
굴레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1997년에 시작된 「유스하라 국제스
쿨」1기생은 구경을 하던 도중에 도저히 못 참겠던지, 고치신문사의 니시상에게 중개를 부
탁해 중간에 뛰어 들어가 참가를 했다. 정식 무대에는 심사위원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술
에 취해 있지만, 눈에 두드러지게 춤을 잘 추는 춤꾼에게는 메달을 준다. 이렇다 할 근거는
없지만 춤꾼에게 메달만큼 기분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심사석에서 메달을 받은 춤꾼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행렬로 돌아간다. 서울대학에 합격해도 그렇게 웃는 얼굴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춤이 끝나자 스쿨 1기생은 메달을 목에 건 채 연신 싱글거리며 고치현 지사를 예방했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이전의 재일한국조선인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 세금을 납부하면서
도 일본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이상한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국적조항」을 하시모토
오지로지사가 철폐를 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예방했을 스쿨1기생들을 하시모토지사는 웃는
얼굴로 맞아 주었다. 당시의 지사는 젊었었다. 김교수에게도 청년 시절의 그림자가 남아 있
었고 나 역시 원기 왕성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야마토 백경(9)의 「이삭줍기」에서는 스
쿨의 괴로웠던 측면만 강조했었지만, 물론 스쿨에서는 즐거운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로부터 10년, 이제 스쿨1기생은 사회의 중견이 되었고 우리도 나이를 먹었지만, 나이가
들면 의욕이 약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해를 거듭하고 경험이 쌓이면 젊은 시절에는 상
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가 펼쳐진다. 흥미의 대상이 바뀌고 시간의 밀도가 증가하여 젊은 시
절과는 또 다른 세계로 접어든다. 젊음과 노령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젊은이는 땀
을 흘리고, 노인은 인식을 즐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같은 일은 되풀이하며 지루해 하기보다는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생각에서 스쿨을 지역대학
으로 고쳤다. 입장, 연령,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각각의 인식세계의 연장선상에서 두뇌와
육체로 즐겨보자는 모임인 것이다. 김은혜양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생의 중견 내지는 반환점
을 넘어선 지역대학 2005의 멤버들도 춤을 추었다. 문제도 있었고 솔직히 한 때는 어떻게
될지 걱정도 했지만 김선건 교수의 한 마디로 모두 정리되었다. 서로 다른 연령 집단에서는
이문화의 마찰과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 점이 스쿨과 지역대학의 차
이가 아닐까 싶다.
060528 스케무라 사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