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국립대만대 국가발전연구소 박사과정
“대만의 대학 등록금은 대개 국비 부담으로, 학생은 1년에 학비와 식비를 합쳐 한화로 3만환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곳 대학들의 특징은 학생들의 대부분을 기숙사에 숙식시키고 있다. 국립 대만대학에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20동이 있어 누구나 원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할 수 있다. 국가의 보조로 학비에 대한 개인 부담이 적기 때문에 월급이 적은 사람들도 자녀가 재주가 뛰어나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공부시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1957년 12월 <경향신문>에 실린 대만의 교육 환경에 대한 기사다. 해방 뒤 한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정부 당국의 높은 대학 등록금 정책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나라 사람들(1953년 3월5일치 <동아일보> 참조)에게 대만의 저렴한 대학 등록금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1960~80년대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대만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반면 대만 학생이 한국 유학을 선택하는 일은 드물었다. 1980년대 후반 대만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은 1천여 명이었지만, 한국에서 유학하는 대만 유학생은 20명도 안 됐다. 다른 요인이 있었겠지만, 고등교육을 시행하는 두 나라의 교육 환경에 큰 편차가 존재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대만은, 여러 정부 정책에서 ‘민생’ 위주의 사고방식이 많이 발견된다.
피터 드러커는 자원 없는 나라가 살아갈 길로 ‘인재 양성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러려면 ‘교육 서비스의 비용과 생활 물가를 저렴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일본의 발전 유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대만은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꼽힐 것이다.
부러움 대상인 대만의 낮은 등록금
요즘 대만의 교육 환경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이 풍미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산업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에 따라 ‘자유경쟁시장’이라는 관념이 팽배해지면서 대만의 대학 등록금 정책 역시 영향받았고, 교육체제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1998년까지만 해도 대만의 대학 등록금 정책은 정부 통제하에 있었다. 교육부가 일괄적으로 책정하고, 정부 보조금을 통해 저렴한 학비 정책을 시행했다. 1999년 이후부터는 탄력적인 등록금 정책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후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10여 년간 평균 40%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대만의 고등교육 비용은 여전히 한국이나 일본, 심지어 중국보다 낮다.
올해 대만의 한 해 등록금은 국립대학이 평균 5만9490위안(약 220만원), 사립대학이 평균 10만9806위안(약 4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집계한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국공립 대학 연평균 등록금이 425만원, 사립대학이 767만원인 것에 비하면 거의 ‘반값’이라 할 수 있다.
2004년에는 대만의 국립대학 등록금이 1780달러였다. 구매력지수로 환산하면, 1인당 평균 국민소득 2만6050달러의 6.8%에 해당한다. 일본의 국공립대학이 26%, 한국의 국공립대학이 17%, 중국이 11%, 미국의 주립대학이 17.4%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국립대만대학 리스천 총장의 2007년 발표 참조).
또한 대만은 과감한 학자금 대출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05년에는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학생 수가 35만 명에 달했는데, 1인당 5만~6만위안(약 200만~240만원)을 대출하고 있다. 이런 지원정책 때문인지 2003년의 조사에서는 경제적 요인으로 휴학한 학생이 7129명에 불과했다. 전체 휴학 학생의 12.5%에 해당한다(국립정치대학 교육학과 저우주잉 교수의 연구 참조).
우리나라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군대로 내몰리고,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대만 대학생들은 ‘양반’ 수준이다.
그렇다고 대만 사회에 대학 등록금을 둘러싸고 아무 논쟁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대만도 세계화와 시장주의의 흐름 속에서 큰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이로 인한 여러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1997년부터 10여 년간 대만의 국공립대학 학비는 42.7%, 사립대학은 14.3% 증가했다. 이는 봉급생활자 소득 상승률의 8%를 상회하는 것으로 사회의 많은 반발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매년 등록금 논쟁이 벌어지는데, 실제로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시장경쟁·사회평등·세계화 등의 문제와 연결돼 전체 교육 이슈에 광범위한 파급력을 갖는다. 고등교육의 학비 조정 문제가 전체 교육 생태와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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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 대만의 젊은이들. |
대만의 대학 등록금에는 세 가지 논점이 존재한다. △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발전이라는 관점 △자유시장경쟁이라는 관점 △사회적 평등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이다. 대학의 경쟁력 확보라는 관점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대학의 경영 곤란을 해결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자유시장경쟁의 관점은 자유시장 개념을 도입해 등록금 정책을 자유화하면 경쟁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평등과 정의의 관점은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통해 계층의 고착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대학 등록금 관련한 세 가지 논점대만 사회의 등록금 논쟁을 좀더 들여다보자. 우선 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고등교육 발전을 강조하는 입장을 살펴보자. 국립대만대학의 리스천 총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토로한다. “교육에는 돈이 필요하죠. 특히 고등교육은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고등교육의 발전과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현재 대만의 대학들이 제한된 자원 때문에 경영상 많은 곤란을 겪고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리 총장의 주장은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학비의 상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품질을 높여 학생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면 학비는 합리적 투자인 것이다.이 주장에 대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행동연맹’의 총회장 젠수후이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비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까요?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비용이 필요할지라도 대량의 자원 투입이 반드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 당국이 우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한 뒤에 등록금 인상을 제기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대학의 교육 품질이 뛰어나다면 자원해서 그 대학에 높은 학비를 낼 것입니다.”두 번째로 자유시장 경쟁 담론을 살펴보자. 자유시장이라는 메커니즘에서는 경쟁을 품질관리 기제로 삼는다. 이것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담론과 차이가 있다. 시장 메커니즘은 ‘도태’의 개념을 더욱 강조한다. 자유시장 메커니즘은 두 가지 가설을 두고 있다. 첫째는 경쟁이 품질을 높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품질이 구매 의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내고서라도 더 질 좋은 상품을 얻으려 할 것이고, 낮은 질의 상품은 도태해버릴 것이라는 논리다.자유시장 경쟁 담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마에 겐이치와 잉글리시(English F. W.)의 연구를 논거로 들며 이 가설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겐이치에 따르면, 소비자의 구매력은 소득의 제한을 받고, 상품의 선택 또한 지급 능력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품질이 유일한 선택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상품 선택 과정은 현실적 고려와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등록금 높다고 교육 품질이 높진 않아잉글리시의 연구는 학생이 학과와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필요에 근거한 것이지, 반드시 품질에 근거하는 것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학생이 일부러 품질이 낮은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낮은 비용을 지급하거나, 편리를 위해서, 또는 평가의 압박을 덜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행위한다. 이런 상황은 대학의 학위가 단지 자격증으로 전락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자유시장 구조의 기초 위에 설립된 미국 고등교육이라 할지라도 학비의 자유가 품질의 상승을 보장할 수는 없다. 심지어 미국 최고의 사립대학인 하버드, 스탠퍼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 최고의 학비를 받는 학교들조차 교육의 질이 저하되기도 하고,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는 사립대학들이 단지 ‘명성’이나 ‘학위’를 팔아먹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세 번째로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주장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오마에 겐이치는 ‘M형 사회’(2006)라는 이론에서 일본과 대만이 처한 유사한 상황을 언급한다. 국가의 세금 징수가 주로 중산계층이나 중하층의 봉급생활자에게 의존하는 반면, 부자들은 많은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린다. 이는 국가 지출을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담하는 불공평한 현상을 일으키는데, 국가 세수 부족은 교육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증세 방법을 선택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또다시 불공정한 압박을 받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상황은 대학의 등록금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사회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계층의 벽을 타파하고 사회·경제적 계급의 재생산을 막는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생활을 개선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고등교육 비용 지급에서 ‘사용자 부담 원칙’ 혹은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담론이 우세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고등교육이 보편화 시기에 접어든 우리나라나 대만에서 이 담론이 온당한지 의심스럽다. 표면적으로는 교육받는 학생이 이익을 누리는 것 같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기업과 사회 전체가 교육을 통한 이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등록금 논쟁에서 따져야 할 것대만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논쟁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등교육과 정치·경제의 발전 단계가 비슷하고 사회·경제적 구조가 비슷한 두 나라로서는, 직면한 도전과 대책에서 서로의 경우를 참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대만의 대학 등록금 논쟁에서 대학의 경쟁력 확보라는 담론, 자유시장 경쟁이라는 담론, 사회적 평등 담론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는 논점이다. 대만의 등록금 논쟁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학습하게 된다. 첫째, 고등교육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둘째, 자유시장 경쟁 모델이 고등교육 발전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즉, 시장모델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등록금 정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그 결정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평등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넷째, 국제 경쟁력 관점에서 현행 등록금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같은 수준의 등록금을 채택하면, 국내 인재와 국제사회의 인재가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려고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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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③ 대만, 낮은 등록금에 논쟁도 치열 ~ 대만엔 ‘반값 등록금’ 이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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