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祖(시조) 李憎言(이총언)의 아들 李永(이영)은 18歲(세)의 나이로 王建(왕건)을 따라 三國(삼국)을 征服(정복), 高麗開國(고려개국)에 功(공)을 세워 大提學(대제학)에 올랐고 孫子(손자)李芳淮(이방회)는 樞密院使(추밀원사),曾孫(증손)李慶錫(이경석)은 平章事(평장사)에 이르는등 初期(초기)부터 名門巨族(명문거족)으로 繁盛(번성)한 碧珍李氏(벽진이씨)는 後(후)에도 많은 人物(인물)들을 輩出(배출)해냈다.
高麗時代(고려시대)의 人物(인물)로는 李會(이회),李實(이실), 李克松(이극송)
,李雍(이옹)等(등)을 꼽는데 이中(중) 李克松(이극송)은 高麗(고려)高宗23年 明經文科(명경문과)에 壯元及第(장원급제)하고 淸廉强直(청념강직)한 淸白吏(청백리)로 判三司事(판삼사사)의 벼슬에 올라"맑고 깨끗하여 아무티가 없는 精神(정신)을 지녔다"하여 高宗(고종)이 親(친)히 永玉(영옥)이라는 號(호)를 내렸다.特(특)히 始祖(시조)의 10世孫(10세손) 李擁(이옹)의 아들 4兄弟中(형제중)長男(장남) 李堅幹(이견간)은 高麗(고려)忠烈(충열),忠宣(충선),忠肅王等(충숙왕등)3王代(3왕대)에 걸쳐 벼슬이 進賢館大提學(진현관대제학)에 이르렀다.
朝鮮時代(조선시대)에 不事二君(불사이군)의 節義(절의)를 지킨 李孟專(이맹전)들어 李氏家門(이씨가문)의 忠義(충의)와 節介(절개)의 脈(맥)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사람이다.世宗(세종)때 親試文科(친시문과)에 及第(급제)司諫院 正言等(사간원정언등)에 오른 그는 世祖(세조)가 端宗(단종)을 몰아내고王位簒奪(왕위찬탈)을 꾀하는데 憤慨(분걔), 벼슬을 버리고 故鄕(고향) 善山(선산)으로 내려가 거짓으로 눈멀고 귀먹었다며 草野(초야)에 묻혔다. 金宗直(김종직)의 門人(문인)으로 成宗(성종)때 大司成(대사성)에이른 李鐵均(이철균),丙子胡亂(병자호란)때 江華(강화)에서 自決(자결)한 李尙吉(이상길)은 높은 學文(학문)과 忠義(충의)의 人物(인물)로 李氏家門(이씨가문)을빛냈다
또한 己卯八賢(기묘팔현)의 한사람으로 中宗(중종)때 大司憲(대사헌),兵曺判書(병조판서)를 지낸 李長坤(이장곤),朝鮮末期(조선말기)의 巨儒(거유) 李恒老(이항로)等(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