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오전에 김해 삼방동을 출발하여 창원,함안, 진주를 지나 하동IC에서 내려 남해로 가는 길에 하동 진교면이 보여서
시내를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앞전 일기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김해에 살면서 처음 하동 전도를
가던날 육적인 생각으로 기름값을 아끼려고 차량 전도를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가게 되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동에서는 차량 전도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번에 남해 전도를 갔다가 덤으로 하동에서
차량 전도를 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으로 유명한 하동군과 남해군을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도착하여 바로 남해대교를 건너지 않고
남해대교 아래로 형성된 마을을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였던 대로 그곳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마침 낮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이 밖으로 나와 있어서 차량 전도를 하는 저를 유심히 보셨습니다. 항구에 주차를 하고 주변에서
낚시하는 사람과 놀러온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다가 초등학생 남자 두명이 있어서 복음을 전했더니 교회를
다닌다며 동네에 있는 교회 목사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전달하라며 저의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역이 전도로 교회를 돕는 사역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남해대교를 지나서 충무공 충렬사와 많은 횟집들과 거북선을 전시한 남해대교 아래 마을에 가서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잠시 주차를 하고는 동네에서 상인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7년 임진왜란 당시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이순신 제독을 처음 묻은 장소였습니다.
이순신 제독이 순국한 바다와 충렬사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에 고요하고 엄숙한 감동이 몰려 왔으며 이순신 제독의 나라 사랑함과 백성 사랑함을 본 받아 믿음 안에서 이 민족의 안녕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애국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넘어로 용그림을 한 특이한 배가 보여서 그쪽으로 가봤더니 무슨 유람선을 타는 곳으로 보이는데 선착장에 연등이
수없이 걸려있어서 굉장히 특이한 유람선 선착장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세계 최초의 반야용선 해상법당이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하였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우리도 몇십명
탈 수 있는 중고 배를 구입하여 세계 최초로 해상교회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ㅎㅎㅎ
사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배 위에서 설교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오래전 서울 사랑의 교회를 다니고 있을 때에 세계를 다니며 선교를 한다는 '로고스 호프' 둘로스 선교 배가 인천에
입항하였다며 교회 버스로 출발하니까 시간되는 사람은 구경하고 오라는 광고를 듣고는 제 기억으로는 그곳을 구경하려고
일도 하지 않고 다녀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둘로스는 1914년 화물선,이주자 수송선으로 쓰이다가 제가 태어난 1978년
독일에 있는 비영리 구호단체인 GBA에 인수되어 전 세계를 항해하며 개발도상국에 책을 보급하며 구호활동에 쓰이는 "떠다니는
유엔"으로 알려져 있으며 30년간 100개국의 560여 항구에 정박해 약 2,000만명의 사람들이 둘로스를 방문하였다고 하며
그곳에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모인 350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기독교 국제선교단체인 OM에 소속되어 2년씩 자비로
구호활동 및 선교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로스 처럼 큰 배는 우리가 구입하지 못할지라도 작은 중고 유람선 같은 배는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구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배를 타고 전국의 있는 항구와 주변 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좋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고 선교를 다녔기에 항구도시로 부터 선교가 이루어 졌으며
점점 주변 도시로 선교가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만약에 선교배를 한다면 그곳에서 숙식하며 낚시로 바다의 있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도 잡아먹고 교회가 없는 섬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항구에 정박하고 내륙으로 이동을 할때는
배의 실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ㅎㅎㅎ 아니면 임진왜란 당시 처럼 수륙병진으로 세력을 나누어 항구에서
서로 만나서 자동차를 타고 선교를 다녀도 될 것입니다.^^
노량 마을을 떠나기 전에 주차장에서 생선을 말리시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곳에는 교회가 없냐고 물었더니 예전에는
마을 입구에 있었지만 1년 전에 산넘어 마을로 예배당을 짓어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지나서 이충무공전몰유허지 이락사가 있는 곳에서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관광객들과 상인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복음을 전했으며 조금뒤에 고현면에 도착하여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빨리 시내로 가야
했기에 할머니 한 분에게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현면 공설시장 입구에는 지역주민들이 손수 돌을 깍고 다듬어서 세운 정지 석탑이 눈에 들어왔는데 남해를 구해준
정지장군(1347~1391)을 기념하는 석탑이였습니다. 정지 장군은 최영,이성계와 함께 고려 말 조정의 부패로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에 남해안을 침략한 왜구를 무찌르는데 큰 활약을 하였던 명장이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의 군사로서 졸개가 아닌 명장이 되어 믿음으로 복음으로 큰 활약을 합시다!!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며 남해읍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말로만 들었던 '도마마을'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사실 다른 지역은 모겠으나 김해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은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와서 활동을 하였다는 얘기를 한 번 정도는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김해에서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후가 인도 공주인데 하나님의 계시와
사도 도마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며 거기다가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선교를 하다가 실제로 삼국시대에 가야국이 있는 김해에 와서 활동을 하였고 경산과 대구와 하동군 남해군등에서 활동을 하였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으며
그 당시 유적물에서도 그러한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만든 유리잔,기도 석상,양을 품은 석상,돌십자가,오병이의 그림, 마리아상등)
그래서 특히 김해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믿는 분들이 제법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처음에 저도 너무 황당한 얘기 같아서 무시하고 믿지 않았으나 경북 영주시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석상에서 히브리어로 도마(타우,멤)라고 적혀있고 보는 사람들도 두 손으로 하아름의 장미꽃을 감아쥐고 있는 모습과 한국에
없는 샌달을 신은 듯 양발가락 10개가 선명한 이 석상은 유대인 형상을 지녔으며 입고있는 복장이 언뜻 보아도 기독교 성식자를
연상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주님 오실날이 가까운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 복음화 되고 세계 선교의
크게 쓰임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이 땅을 마지막 때의 사용하도록 계획하셔서 자신의 종을 미리 이곳에
파송하여 훗날 복음을 받아 드릴 수 있는 토양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얘기들은 믿거나 말거나
자유입니다.^^
그런데 남해군과 마주하는 광양에는 '이순신대교'가 있는데 그 교각 아래에는 '도독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독마을 이름은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수군 도독인 진린장군이 주둔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제독의 수군 본영은 통영시 한산도에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통영시에 옛 이름은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라고 불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도마마을'이라는 것도 그냥 무시하기
에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인 것입니다. 도마마을 좁은 골목을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그곳에 교회도 있었는데 교단은
처음 들어보는 총공회였습니다. 마을 언덕위로 올라가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을회관이 보이는데 그곳에 '서도마회관'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데 앞에 '서'에서 'ㅓ'를 'ㅏ' 돌려서 생각해보니 마치 '사도도마'라고 적혀있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남해읍에 도착하여 차량으로 시내 여기저기를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어느 정도 차량 전도를 하고는
이번에는 전도지를 가지고 나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시내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하나님께는
시장 상인들을 예배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물만난 고기처럼 시장을 다니며 복음을 많이 전하였습니다. 시장에는
생선을 파는 곳도 많았지만 특히 유자가 많이 보였는데 남해가 유자 생산지로 보였으며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시장 전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 사람들도 어느정도 다니고 있어서 학생들을 비롯하여 노인까지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있는 빌딩 앞에서 옛날 우물을 보게 되었는데 해방이 되고 얼마되지 않은 1945년 11월에 남해에 미군이 최초로
진주하여 판 곳이였습니다. 그 우물을 보면서 우리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을 주시는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한복음 4장 13~14절 -
그리고 그 옆에는 광복이 있기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비석도 있어서 사진에 담아왔습니다.
그런데 공공시설 게시판에는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에 시민들을 초청한다는 홍보물이 붙여져 있어서 종교 기관 같아서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박찬호도 나오고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스타 강사도 나오는데 그 강사는 기독교학과 교수였기에
조금 놀랐습니다.
남해읍을 출발하여 이동면을 지나서 독일 마을로 가는 길에 봉화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이름에 맞추어 길 옆에 있는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데 마치 봉화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봉하는 나라에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낮에는 연기를 올리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파수꾼이 되어 적이 침략하였다는 것을 복음의
봉화로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전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 이사야 21장 6,11절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 에스겔 3장 -
독일 마을에 도착하니 저는 조금 시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신도시 주택 단지에는 서양식 건물을 많이 짓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서양식 건물을 볼 수 있고 부족하지만 저는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22개국 구석구석을 다녔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는 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마을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것은 저의 큰 매형이 독일 사람이며
현재 큰 누나가 독일에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아래 해변에 있는 요트 선착장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곳에는 물건이라는 해수욕장이 있었으며
해변가 바로 뒤로는 숲이 형성되어 있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수많은 나무가 보여서 신비로움을 자아냈습니다.
알고보니 이 숲은 370여 년 전에 바닷바람에 의한 염해와 해일이나 밀물등의 피해를 막을 목적으로 조성 되었으며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이 1.5키로 너비 약 30미터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엽, 이 숲의 일부 나무를 베어낸
다음 폭풍을 만나 마을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자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 라는 말이 전해 내려와 더욱 잘 보전해
왔으며 매면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을 나와서 삼천포 대교를 향해서 가는데 갯벌 체험장이 있는 마을이 보이는데 이름이 '전도마을'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성경적이라서 그 마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오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조금 전에 보았던 독일 마을은
1960년대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고국으로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2001년 남해군이 조성한 마을인데 독일 교포들이 직접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가져와 전통적인
독일양식으로 주택을 건립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 전도자'들도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되면 적당한 지역에 '전도자마을'을 또는 '전도마을' 형성하여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실제로 '전도마을'이 생긴다면 복음 전도자들과 전도의 소명을
받은 성도들이 노년을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초대교회 처럼 함께 지내면서 테마공간을 만들어 우리들에 지난날 전도 발자취를
남겨 놓아 전국에 있는 교회 성도들을 초청하여 전도 사명을 후세들에게 심어주고 가능하면 실습으로 함께 복음을 전하러
나가서 교육을 시키며 후원금이 들어오면 그 수입으로 생활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죽는 날까지 은퇴할 마음은 없기 때문에 자금이 되고 뜻이 같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만 있으면 굳이 노년이 아니더라도
'전도마을'을 만들어 동역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마을은 국내에서 장수마을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다니엘 12장 3절 -
그곳에서 상동면을 지나가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고 창선교를 건너서 창선도로 들어갔습니다.
섬으로 조금 들어가니 창녕읍 다음으로 커 보이는 창성면이 보여서 조금 어두워 졌지만 차량으로 말씀을 전하였으며
시내 중심이 되는 길 옆으로 라이온스클럽에서 기증한 사자 두마리가 보이는데 왠지 성경에 나오는 우는 사자과 연상이 되어
마귀의 공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해를 비롯하여 최근에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하게도 대부분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그곳에서 젊은 남자 청년이 아주 예의없게 복음을 거절하여서 안타까웠습니다.
그곳을 지나서 삼천포 대교를 건너기 전에 있는 남해 끝자락 횟집 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며
전도지를 나누어 주다가 그곳에서 멸치쌈밥을 먹었는데 사장님은 가게 밖에서 저에게 전도지를 받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가게는 음식도 맛이었지만 사장님과 어머니 되시는 분도 참 친절하셔서 다음에 가족들과 함께 오겠다고 하니까
교회 사람들과도 오시라고 하여서 여기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는 바로 함안 여항전원교회로 가서 잠을 자려고 하다가 네비로 검색해 보니 80키로가 나와서 계획을 바꾸어 사천시에서 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전도를 삼천포대교를 건너면 바로 위치하는 사천시에서 하기로 하였고 더욱이 아침
전도를 계획하였기에 지금 함안까지 갔다가 아침 일찍 다시 오려면 아무래도 몸도 힘들고 기름값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급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남해읍 시내 차량 전도
충렬사
남해대교에서 바로보는 노량
물건 해수욕장에 조성된 숲 언덕 위에 보이는 독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