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분명한 원인이기 때문에, 유일하고 안전한 낙원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주님을 따를 뿐, 그 외의 어떤 의지도, 지혜도 버리는 것이다. 내게 섬김이란, 말로 순종해야 함은 물론, 육적인 감정을 벗어 버린 지성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부르심에 무조건 복종하는 걸 의미한다.”
내게 칼빈주의를 근본적으로 납득시킨 것은 책, 학회, 또는 잘 편집된 잡지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이었다. 칼빈은 살아서 활동하는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살고 호흡한 기독교인이었는데, 참된 칼빈주의자라면 모두 그런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칼빈,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올바르고 건전한 교리를 내 것으로 하려면 성경 학도가 되어야 한다. “참된 경건이 우리를 비추게 하기 위해서는, 천상의 교리로부터 경건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 학도가 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올바르고 건전한 교리의 맛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외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촉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모습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함을 명심하자.”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성경에 일치되게 기독교를 요약한 책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책이다. 칼빈은 언제나 전통은 성경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교정되어야 하고, 성경 가르침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의 칼빈주의 세 가지 기초는 헌신, 교리, 영광의 찬가- 감성으로 성경의 하나님께 헌신하고, 지성으로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추구하고, 전 존재를 다해 영광의 찬가를 바침-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 찬란히 빛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종들을 통해 말씀하실 때마다 마치 그분이 우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분 말씀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기술한다.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칼빈처럼 생각하고 칼빈처럼 살려고- 칼빈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살아간 한에 있어서- 분투 노력하는 사람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인식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어떤 허물을 피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위가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성과 의지 때문에 우리의 계획과 처신이 흔들리지 않게 하자.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육에 따른 사욕의 추구를 우리의 목표로 삼지 말자.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잊어버리자.
달리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죽고 하나님의 위해 살자. 우리는 하나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생의 모든 부분이 유일하고 적법한 푯대이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하자. 오,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님을 배운 뒤, 이성을 하나님께 굴복시키기 위해 이성의 지배와 통치를 포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유익을 얻는지! 자기 유익을 따라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멸망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독이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구원의 유일한 행복은,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 말고는 그 무엇에도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
파커에 따르면, 칼빈은 “성경의 복음 대신 자기 사상을 설교하는 사람들을 혐오해서, ‘우리는 강단에 오를 때 자기의 꿈과 환상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칼빈은 자기 마음의 기묘한 묵상록을 회중에게 바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설교를 하는 가운데 회중에게 “자기 마음을 쏟아 부으려고” 분투 노력하는 일이 유행이 되었지만, 칼빈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칼빈은 이미 그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이었다.
그런 칼빈은, 항상 변하는 마음의 열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스며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회중이 자기를 바라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회중이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목회자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필요하다면 모든 목회자가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12:21)라는 성구가 적힌 휘장을 강대상 뒤에 걸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칼빈의 설교와 전 생애의 푯대였다.
- 버크 파손스 편저, 「칼빈」, pp 2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