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뇌중풍
글 신경외과 전병찬 과장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시다 쓰러져 의식을 잃곤 하던, 어릴 적 기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어떤 중풍인지도 모른 채 그저 손가락을 따거나, 침을 맞거나, 우황청심환을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처럼 풍이 오면 중풍 또는 뇌중풍이라고 부른다. 무엇에 맞아 떨어져 나간 상태를 졸중(卒中)이라 하는데 원래 졸중풍의 준말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졸중에 “뇌”를 넣어 뇌졸중이라 부른다.
지난 해 겨울인가. 친구 부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밤늦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쓰러져 모 병원에 입원 중인데 치료 중에 상태가 악화돼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 한다고 했다. 필자가 있는 병원으로 급히 후송하여 CT사진을 찍었다. 뇌출혈이었다. 뇌혈관이 터진 것이었다. 평소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는데도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탓이다. 아주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그만 혼수와 반신마비가 덮친 것이다. 응급 뇌수술로 뇌출혈을 제거하였고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후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남게 되었다. 출혈 덩어리가 뇌신경을 압박하여 손상을 초래한 탓이다. 그 후에 재활치료를 하여 이제는 혼자서 걸을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만 장애인이 되었다.
뇌출혈이 오면 무조건 마비?
뇌출혈이 왔다고 해서 모두 마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부위에 따라서는 성격, 인지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고 시력을 잃기도 한다. 때로는 숨골에 뇌출혈이 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겨울철에는 뇌혈관이 잘 수축하여 혈압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 뇌출혈이 잘 온다. 특히 고혈압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고혈압 약을 제대로 먹었는데도 출혈이 오는 병이 또 있다. 뇌혈관이 풍선처럼 늘어나 있다가 터지는 병이다. 뇌동맥류의 파열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수술을 받더라도 사망률이 80-90%였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의료기술과 장비가 발전하여 사망률과 후유증의 발생이 30-40%로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망률이 높으므로 최근에는 평소에 뇌 검사를 하여 이 병이 있는 지를 미리 알아 보는 경우가 많다. 예방검진에서 발견되면 터지기 전에 미리 수술을 받거나 심장시술처럼 코일을 삽입하여 터지지 않도록 시술을 한다. 매 년 부산에서는 뇌동맥류 파열 환자가 수 백 명 발생하는 데 특히 겨울철에는 빈도가 더 높다.
겨울철 뇌질환 특히 조심!
이처럼 혈관이 터져서 오는 출혈성 중풍이 있는가 하면 뇌의 혈관이 막혀서 입이 돌아가거나 수족에 마비가 오는 중풍도 있는데 이를 소위 뇌경색이라 한다. 뇌경색은 크게 나누어 일시적으로 오는 경우와 영구적으로 마비가 남아 있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일시적으로 뇌의 혈관에 피가 적게 들어가서 중풍증세를 나타내는 경우를 일시적 허혈발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 대개 24시간 또는 3일 또는 종류에 따라서는 7일까지 그 증세가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큰 뇌혈관이 막히면 치료를 받아도 심각한 후유장애가 오기 마련인데 발병하자마자 3시간 이내 병원에서 뇌MRI검사를 받아 막힌 혈관에 용혈제주사를 맞으면 막힌 혈관이 뚫려 증상이 잘 회복되기도 한다. 뇌출혈과 마찬가지로 겨울철이 되면 뇌혈관이 잘 수축하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뇌경색도 잘 오는 것이다.
뇌중풍도 검진 필요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중풍은 암, 심장병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추정통계를 보면 매년 부산에서 뇌중풍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이나 된다. 한참 일할 나이인 50세 전후에 뇌중풍에 걸린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평소에 병원을 찾거나 생애전환기 검진이라고하여 발병 전에 건강진단을 받아 암을 조기에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암 진단에만 관심이 많고 뇌중풍의 검진에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특히 현기증, 두통, 이명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나 고혈압, 당뇨, 비만, 고지혈증, 흡연의 병력이 있는 50대는 반드시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 최근 연구에서 이런 병력이 있는 분들의 약 56%에서 뇌혈관에 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본원에서 수 년 간 기장군민을 대상으로 무료 뇌 검진을 해 왔는데 약 70-80%에서 뇌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예방검진을 통하여 사전 상담이나 처방을 하고 있어 뇌중풍의 예방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고혈압, 당뇨 약 부작용 없어
고혈압이나 당뇨 약은 과거에 비해 거의 부작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가 약을 먹으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분도 많다. 이 들을 조절하지 않고 방치하면 뇌혈관, 안구혈관, 심장혈관, 콩팥혈관에 손상이 오고 결국 터지거나 막히기도 하며 평생 투석을 받기도 한다.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고지혈 환자도 아주 많아지고 있는데 이 또한 약으로 조절하면 뇌혈관이 부드러워져 뇌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 식이요법이나 운동도 매우 중요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자가요법에 매달리면 대개 심각한 후유증이 반드시 온다.
우황청심환, 아스피린 알고 복용해야
또 중풍이 와서 정확한 진단을 받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먹이면 기도를 막아 의식불명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명약이라고 하더라도 자가진단이라는 우를 범하여 아까운 목숨을 잃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의를 요할 일이다. 반드시 병원에서 진료를 하기 전에는 일체 자가진단이나 치료를 금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뇌혈관에 좋다고 친구가 권하여 무턱대고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런 분의 뇌에 동맥류가 있거나 출혈경향이 있는 분이라면 뇌혈관이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절대 삼가야 할 일이다. 사람마다 병의 정도나 상태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음, 건망증이나 치매로 이어질 수
술은 마시면 즐겁고 좋다, 하지만 과하면 뇌에 위축이 빨리 와 건망증이나 치매가 빨리 오게 된다. 젊을 때는 잘 모르나 50-60세가 되면 수 십 년간 과음하신 분들의 뇌MRI에서 퇴행성 변화나 뇌에 위축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담배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겨울철에 특히 뇌혈관에 이상이 잘 오지만 곧 다가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환절기에도 뇌혈관질환이 잘 온다. 그러므로 위에 나열한 대사증후군이 있는 분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가진단, 자가치료는 금물이다. 운동도 하고 뇌질환에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인근에 있는 주치의를 자주 찾아 사전에 상담하고 관리를 잘하는 것이 뇌중풍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출처 : DIRAMS Vol.11, 부산이야기 Vol.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