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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빗나간 계산
김 용 빈
B는 지금 걱정의 포로가 되어 있다. 불쌍하게도 지하철역 음침한 구석에 숨어 있던 걱정에게 납치되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숨도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친구가 며느리 보는 날 있었던 일 때문이다.
예식장은 조그만 사거리 옆 왕관호텔 2층에 있었다. B는 결혼식장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웃음으로 하객들을 맞이하는 친구인 혼주의 손을 꽉 잡아주면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아무것도 받지 말게” 총무가 등 뒤에서 B보고 한 말이다. “아무것도 받지 말게. 돈도 식권도…….” B가 접수대에 축의금을 건네자 답례 봉투를 주었다. 헌데, 언제 왔는지 총무가 그의 등 뒤에서 아무것도 받지 마란다. “다들 그러기로 했는가?” “하!” 그는 총무 말대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지난달 모임에 불참한 그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친구들 간에 이야기가 다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보니 총무의 말과는 달리 모두 답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돈 봉투로, 또 어떤 친구는 식권 봉투로. 안 받은 친구는 없어 보였다. 총무도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안 먹고 밖으로 나갈 거야. 우리끼리 회의도 해야 하니까. 식권을 받은 친구들은 돈 봉투로 바꿔 오라고.” 그러자, 식권을 받은 친구들이 접수대로 갔다. 그때 그도 갔어야 했다. 그리고 돈 봉투를 받았어야 했다. 그랬다. 그랬었다. 그랬으면 지금 이처럼 걱정의 포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바빴다. <친구야, 나도 결혼식 보려고 왔다. 얼굴 좀 빨리 보자.> 친구가 보낸 문자는 아직도 똑같은 말을 휴대폰 속에서 되뇌고 있었다. B는 식장 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하객 사이에서 삼십여 년 전 친구 얼굴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저쪽 신랑 측 의자 중간쯤에서 중년의 얼굴이 휴대폰을 펼쳐 들었다. 친구였다. 옛날 친구의 얼굴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문자나 전화통화는 간혹 하였지만 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여기야, 여기.” B는 손을 들어 친구에게 위치를 알려 주었다. 친구가 일어나서 나오려 것을 그가 말렸다. 멀리서 온 친구가 어렵게 잡은 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나중에 보자 하고, 그는 친구들이 있는 데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였다. 한 친구가 지갑을 꺼내다 답례봉투를 땅에 떨어트렸다. 그것을 본 B도 봉투를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왜냐하면, 총무가 말했듯이 예식이 끝나면 가까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것이고, 답례봉투를 걷어서 계산을 할 것이고, 그가 봉투를 안내면 계산이 틀릴 것이고, 자기 하나로 인해 계산착오가 생기면 안 될 일이고……. 그는 곧바로 접수대로 갔다. 접수대에서는 그가 봉투를 안 받은 것을 기억하는지 아무 말도 않고 주었다. 그리고 막 돌아서는데, “왜, 왜, 왜?” 혼주가 어느새 달려왔다. 그는 황급히 달려온 혼주의 다급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으응……,총무가……, 식권을 돈 봉투로 바꿔오라 해서…….” 얼떨결에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하, 그러면 돼.” 혼주는 두말 않고 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꼭 죄지은 사람마냥 말을 더듬거린 것도 마음에 걸렸다. 혼주가 급히 돌아가는 바람에 짧게라도 설명할 시간이 없었지만, 사실대로 말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가 바쁜 사람 붙잡고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도 뭐했다.
식이 끝나자, 친구들은 삼삼오오 차를 나누어 타고 비싸기로 유명한 ‘맛존회 센터’에 모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총무가 봉투를 걷었고, B도 그럴 줄 알고 받아온 봉투를 아주 당당하게 냈다. 총무가 걷은 봉투를 손에 높이 들고 외쳤다. “오늘 부족한 식대는 혼주가 내기로 했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B는 분명 돈 계산이 틀릴까 봐 봉투를 받아 와서 냈는데, 그렇다면 총무 말처럼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었던가. 자신이 쓸데없는 짓을 했음을 알았다. 가까운 식당에 가서 밥 먹을 것이라는 생각도 빗나갔다. 식사를 마칠 무렵, 혼주가 왔다. 혼주는 친구들 보고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다면서 친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B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저녁은 타지에서 온 친구들이랑 자기 집에서 밤샘을 하자고 제의도 했다. 친구들이 모두 좋아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런 중에 오늘 축의금 계산이 틀렸다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에 잘 듣지 못했지만, 분명 그리 말했다. 그리고 혼주가 B를 쳐다봤다. B도 그를 마주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B는 별생각 안 했다. 친구들은 술 한 잔씩 더 하고 혼주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B는 저녁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가 준비하고 소집한 회의라 빠질 수도 없다. 오늘 이렇게 늦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회의 날짜를 변경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 변경할 수도 없다. 그래서 B는 밖에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에 혼주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내가 안가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자네 집엘 못갈 것 같네. 미안하이.” “별소리를 다 하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네.” B는 혼주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걱정은 지하철역에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B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주가 왜 그런 눈으로 너를 바라봤을까? 혼주가 계산이 틀렸다며 너를 바라본 것은 너를 의심한단 이야기 아닐까?> 걱정은 계속 씨부렁거렸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입이 바싹 마른다. 접수대에 앉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무조건 봉투를 줄 턱이 없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고 되뇌어 보지만, 그래도 혼주가 자기 때문에 계산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네 혹시, 나를 의심하는가?” 이렇게 되돌아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B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당장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물어서 “아니.” 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안 물어보자니 혼주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집에 와서도, 일터에 가서도, 누구를 만나도, 항상 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헛소문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을 것 같고, 그만큼 자기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 인간이 되어 가고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혼주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의심 간다고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소문낼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생각은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B가 송금할 일이 있어 은행에 갔다. 돈 받을 예금주에게 계좌번호를 물어보려고 휴대폰을 찾았다. 한데, 없다. 포켓을 아무리 뒤져도 없다. 요즘은 정신이 깜박깜박한다. 남들은 건망증이라고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너무 한 생각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은 할 여유가 없어 생긴 증세 같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휴대폰은 그 사이 ‘부재중 전화’라는 메모를 입에 문체 한가로이 책상 위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혼주였다. 반가웠다. 혼주가 전화를 했다는 것은 그 일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그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이다. 일단 끊었다. 그러자, 휴대폰이 울었다. 혼주였다. 다시 혼주가 전화한 것이다. “여, 여보세요.” B는 반가움에 목소리까지 떨렸다. 그런데 혼주는 하나도 반가운 목소리가 아니다. 결혼식에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 전화였지만,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아까 전화해도 안 받데.” 혼주의 목소리는 약간 퉁명스럽게 들렸다. 어감이 꼭 ‘자네가 내 전화를 피하는 것 같네.’ 하는 것 같았다. <봐라, 혼주가 널 의심하고 있다고 했잖아.> 옆에 있던 걱정이 또 B한테 덤벼들었다. ‘그래. 혼주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결혼식 날 돈 봉투를 남들보다 더 받았다 생각하고, 회의가 있다며 일찍 온 것도 자리를 빨리 피하기 위한 거짓이라 생각하고, 오늘 휴대폰도 지은 죄가 있어 얼른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쩜 일이 이렇게 꼬인단 말이냐.’ 그는 엉덩이에 불붙은 원숭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걱정이 올가미를 만들어 B를 칭칭 휘어 감고 계속 겁을 주었다. 그는 걱정의 포로가 되어 옴짝달싹 못했다. 혼주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것인데도 긁어 부스럼 될까 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주위는 온통 깜깜할 뿐이었다. 숨 쉴 공간도 없이 답답하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휴~,관세음보살.”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뒤 단어가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생각지도 않은 관세음보살이 한숨 뒤에 나온 것이다. 분명 이것은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돕기 위해 나타나심이라.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몇 년 전이다. 오른쪽 옆구리가 아팠었다. 누워 있으면 모르겠는데, 앉아있던가 걸어 다니면 옆구리 전체가 등 쪽으로 아팠다. 용하다는 의원, 대학병원도 찾아 가 보았지만 <원인불명>이라고만 했다. 그때도 그는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아플 때마다 찾았다. 그래서인지 옆구리가 거짓말처럼 나았다. 그는 관세음보살이 치료해주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런데 그 관세음보살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는 마음 모아 “관세음보살님~.”하고, 아주 간절하게 불렀다. 그의 몸에 칭칭 감긴 뱀 똬리 같은 올가미가 풀어지는 같았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 맛에 그는 괴로울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하루에도 수없이, 매일 불렀다. 마음이 시원하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 관세음보살이 이렇게 대답했다. “너의 잘못이 없음을 내가 안다. 너의 잘못이 없음을 네가 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왜 그리 불안해하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그 후,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 졌다. 걱정이 얼음 녹듯 녹아내렸다. 잃어버린 밥맛이 웃으며 밥상머리에 앉았다. 마음속 파란 하늘에 비둘기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렇게 치료가 되는가 싶었다.
B가 다른 때와 달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 모임에 갔다. 그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기분도 덩달아 피어올랐다. 그는 어느 단체에 출마한 후보자처럼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술을 따랐다. 그리고 차례가 되어 혼주에게도 따랐다. “자네 복 많이 받게.” 그는 설날에만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사람들에게 자주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래서 혼주에게도 별 뜻 없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혼주가 한참을 더듬더듬하다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자네는……, 돈 많이 받게. 하하하…….” “응. 그러지. 하하하…….” 그도 덩달아 기분 좋게 웃었다. 복을 많이 받는 거나, 돈을 많이 받는 거나 매일반 아닌가.
그는 그렇게, 기분 좋게 놀고 늦은 시간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혼주가 ‘돈 많이 받게.’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바로 그 돈 봉투를 이야기하는 거야. > 걱정이 지하철역에서 또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겁을 주었다. “뭐라고!”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도 그 친구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고?” 그는 지하철역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멀리 가지 못했을 혼주 뒤를 쫓았다. 저 멀리 가로등 밑을 그 혼주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불렀다. 혼주가 멈칫 섰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혼주 앞을 가로막았다. “헉, 헉……. 자네……. 헉, 헉……. 아까, 한 말이 무슨 뜻인가? 휴~.” “무슨 말?” “돈 많이 받으라는 말.” “…….” “혹시, 자네 나를 의심하고 한 소리였나?” “…….” “가만, 무슨 말부터 할까? 그렇지. 자네 아들 결혼식 날, 총무가 나보고 ‘아무 것도 받지 말게.’ 하드만. 그래서 봉투를 안 받았지. 헌데, 친구들을 만나보니까 다 받은 거 같더라고…….” 그는 계속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밥 먹고 다 들 봉투를 낼 건데, 나 혼자만 안 내고 있으면 계산착오가 생길 것 같더라고. 그래서 봉투를 받으러 갔던 거야. 그걸 자네가 본거지.” “…….” “오늘 이렇게라도 자네에게 이야기하고 나니 이제 속이 좀 후련하네. 나를 믿고 안 믿고는 이제 자네 몫이야……. 하기야, 자네는 나를 의심 안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괜히 나 혼자 지레짐작하고 밤잠 못 면서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B는 장황하게 떠들어 댔다. 그러나 혼주는 아무 말이 없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철커덕, 철커덕……. B는 눈을 천천히 떴다. 왼쪽 저편에서 불빛 하나가 스르르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집에 데려다 줄 지하철이다. 막차라고 안내 멘트가 나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로 몰렸다. 그는 도착한 지하철을 탈 생각을 안 하고 혼주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갔나? 아니다.” 그는 도리질을 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혼주를 만나러 가지도 못했고, 혼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건 생각뿐이었다.
김용빈 (率筆) 약력 · 소설가/ 부산남구문인협회 이사/ 글밭문학회장/ 한국역리학회 부산시지부 대의원/ 부산광역시 시정 모니터/ 부산 남구 우암2동 선거관리위원장 겸 상시홍보대사/ 죽이야기 동아대학교병원점 대표/ 사주팔자연구소장[사주이야기]
· 작품 「젠장」, 「칼로 물 베기」, 「골초」, 「오염」, 「변소 없는 집」, 「비가 된 눈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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