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토) 오후 8시, 대구 칠성동 메가박스 영화관 앞이다.
사람들 따라서 영화표 구입하는 줄을 섰다.
요즘 명화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줄은 그리 길지 않다.
내 앞으로 십여 명 정도 있는 것을 보니 조용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설 쇠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영화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토요일 오후는 굽이굽이 줄을 서서 20분 정도 기다려야 내 차례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1~2분 정도 후에 바로 난 표를 살 수 있었다.
최근 뜨고 있다는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방화다.
시작은 8시 30분, 장소는 총 10관 중 6관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평상시 같으면 벗씨와 같이 왔을 텐데 오늘은 혼자 와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것 같다.
망설이다가 그 동안 매우 궁금해 했던 사주팔자/관상/타로점이라고 적힌 데스크 앞 의자에 덜렁 앉고 말았다.
그 데스크는 영화 매표소 맞은 편 벽쪽 한켠에 항상 서너 명의 상담원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명물이다.
보통 때 같으면 벗씨와 난, '사람들 참 이상도 하지. 저런 것을 뭐 하러 봐. 안 좋은 얘기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얘기를 나누어 오던 대상인데, 내가 의자를 책상 앞으로 당기고 이 자리에 앉고 보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마 이런 용기를 얻게 된 것은 오늘 따라 기분이 싱송생송했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고, 올해도 지난해의 연장선상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뭔가 심상찮고 기분이 안 좋다.
벗씨도 오늘 점심시간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일찌감치 나가 버렸다.
난 혼자 거실에서 리모컨만 잡고 버튼을 조작하다가 집을 나왔다.
회사에서 다음 주 할 일 몇 가지 챙기고, 혼수 이불집에서 일하고 계시는 연로하신 어무이를 모시고는 돼지고기 삼겹살 집에서 저녁도 같이 먹었다.
그래도 기분이 영 개운치 못 하여 혼자 이렇게 영화를 보러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많은 시간을 방황한 것 같다.
굳게 다문 입과 딱딱한 인상으로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먼저 제 사주를 들어보고, 상담일지에다 이것저것 적더니 대뜸 말을 뱉아냈다.
"김 선생님이시네요?"
"네? 아, 네!"
"김 선생님은 귀가 참 얇네요?"
"네?"
"귀가 얇다고요. 남이 하는 말에 신경을 참 많이 쓰신다고요. 잠을 못 잘 정도로."
"어떻게 알았죠?"
지금의 내 기분을 바로 알아맞히는 것이 신기했다.
"아, 그건 제가 아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그리고 주위에 여자가 많네요?"
"여자가 많다니요?"
"남한테 해코지를 잘 못 하고, 칭찬 같은 좋은 말만 많이 해 주어서, 주위에 사람들이 들끓어요. 그리고 주위에 특히 여자가 많아요."
"정말 이상하네요. 제가 근무하는 곳이 여직원들만 있는 곳인데요."
"그리고 김 선생님은 참 착하네요. 그런데 고집도 세고······. 남한테 지지 않고 제 뜻대로 하려는 고집이 엄청 세요."
"그것도 맞는데요."
이건 뭔가 정말 이상하다.
지금까지 말한 몇 안 되는 단어가 모두 내 심정을 대변하고 있고, 성격도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여자 조심하세요."
"왜요? 여자가 많으면 좋지, 왜 조심해야 돼요?"
"여자가 많으면서 잘 대해 주고 하면 사고가 나요. 사모님이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히 있지 그만한 일로 가만히 안 있을 이유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사모님을 참 잘 만났네요. 착하고, 순종적이고, 남편 잘 따르고. 그런데 늘그막에 조심해야 돼요. 안 좋아질 수가 있거든요."
"뭐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 그래요. 그리고 김 선생님은 운이 요 몇 년 새 아주 좋았어요. 또 장래는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확 필 운이예요. 기대해 보세요."
"아, 그런 기분 좋은 말씀을 해 주시니 제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데요."
"그런데요, 올해는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나쁜 운은 아닌데, 좀 절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보자, 내년도 그렇네요. 내년까지만 조심하시면 쫙 피일 겁니다."
"아, 그래서 여기 온 것입니다. 지금 기분이 좀 안 좋거든요. 제 딴에는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 뭔가 남들이 오해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하는 얘긴데요. 올해는 매사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좋아요. 올해와 내년만 지나면 2009년, 2010년은 김 선생님의 해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뒤의 인생도 잘 되고요."
"햐, 그럼 1~2년만 조심하면 만사형통이네요?"
난 뭔가 말을 많이 해서 지금 나의 우울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싶어서 자꾸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장래도 한 번 볼까요? 어디 함 봅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안 좋을 수가 있네요. 형제라든가 가족이라든가······."
"많이 안 좋아요?"
"네, 그래도 조심만 하면 다 극복이 됩니다. 그리고 김 선생님 건강도 심히 걱정이 됩니다."
"아, 예, 제가 간이 안 좋거든요."
"그렇긴 해도 55~57세만 잘 넘기면 65세까진 아무런 걱정 없이 잘 갈 겁니다."
"전, 52세가 목표인데요. 그 때까지만 살면 돼요."
"호호, 무슨 그런 말씀을요. 52세라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기본적으로 65세까진 아무 걱정 없어요. 단지 그 중간에 한 번 위기가 오니까 조심만 하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정말이지요? 제 기분이 갑자기 억수로 좋아지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김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운이 탁 트일 운이예요. 잘 될 테니 한 번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얼마 드리면 되죠?"
'네, 만 원입니다."
"오늘 기분 좋아졌는데 만 원밖에 안 받아요?"
"네, 만 원입니다. 전 만 원 어치밖에 상담 안 했기 때문에 만 원밖에 안 받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난 만 원 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어 복채함에 넣고는 일어섰다.
사주팔자 상담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상담 받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텐데, 오늘은 기분 안 좋은 상태로 와서 단돈 만 원으로 원기회복을 하고 가니 말이다.
그리고 겸손하고, 절제하고, 돌아보고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한 번 더 다졌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여기에 올 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으로 룰루랄라 하면서 극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는 천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360ml짜리 시원한 콜라 한 컵을 사 들고서.
2007년 4월 14일
멋진욱 김지욱 서.
첫댓글 김샘! 좋으시겠심다. 좋은 것만 기억하세요... 어제 잠시 들어니 장래에 벗씨와의 불화에 대한 부분은 순 엉터립니다. 운이 탁 트이실 것은 확실한거 같고... ^^ ㅎㅎ (건강문제는 절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의학이 얼마나 발달 할 건데요. 안심 푹~~~)
전 이제 도통했어요. 누가 뭐래도 소신껏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벗씨, 정말 사랑하거든요. 팔불출. 히히.
그 이야기 듣고 어젯밤 저.. 잠자다가 꿈에서 막 울었다는 거 아님니까? 우는데 소리는 안나고.. 눈물은 눈가에 고이고..욱이 안아주는데도 심장이 벌렁벌렁..진정이 안되더이다. 사주에 따르면 난, 58세밖에 못사는데 지금부터 막 바쁩니다. 무슨 일 부터 하지?ㅎㅎ
어제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한밤중에 당신이 막 우는 바람에 깜짝 놀랐잖아요. 내가 꼬옥 안아 주기는 했지만 당신이 영 불안해 하는 것이 원...... 그렇게나 오랫동안 엉엉 울다니. 히히.
김샘! 주착 떠실 때 알아봤다니깐요... ^^ ㅎㅎ
우리도 한번봐야 하는데 최재원씨가 당채 안볼라카네요.
쭈우쭉 탄탄대로를 달리시는 우리들의 등산대장님! 멈칫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세용! 근디 파랑새는 좋겠당! 멋진 윤과 멋진 욱 서로 사랑하는 모습 찡해요. 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