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4 주일설교
본문: 고후 3:18
제목: 영광에서 영광
1.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고후3:18)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서 40일을 보냈다.
내려오니 그의 얼굴에서 영광의 빛이 발하였다.
그 영광으로 인하여 모세를 볼 수 없으니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백성을 대하였다.
수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신 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말씀은 하나님이셨고, 그 하나님이 육신 곧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그러나 그 육신은 하나님이요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가득하였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셨다.
그의 얼굴에 있는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 하나님의 영광이셨다.
하나님의 영광이시기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것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은혜도 진리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믿음 생활과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은 영광을 아는 빛을 사탄이 비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빛)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4)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길가에 뿌려진 씨이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것이다.
천국 복음 곧 구원의 복음은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다.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가 믿고, 성령이 그 마음 가운데 초자연적인 빛을 비춰주셔야 한다.
유대인의 율법 지식으로는 거리껴지는 것이요, 헬라인들의 지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아무 공로 없이 죄를 밥 먹듯이 살아온 우리에게 은혜와 믿음을 선물로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요, 우리 마음에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감사와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받았으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영광을 가리는 세상의 수건을 벗어야 한다.
사탄이, 이 세상 신이 영광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수건을 벗어 버려야 한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전 휘장이 둘로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들을 가르고 수건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죄요, 세상의 지혜들이다.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들과 행위와 습관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몸은 광야로 나왔지만 속은 여전히 애굽의 것들로 가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없애려고 광야에서 고난을 주시면 원망 불평으로 대항하였다.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들과 행위들을 버리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더라도 가나안을 살거나 누릴 수도 없다.
출애굽 1세대들은 애굽의 것들을 버리지 못해 광야에서 멸망 당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2세대들은 은혜로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가나안에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멸망당했다.
애굽은 떡으로만 사는 곳이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곳이다.
애굽의 수건들을 벗어야 가나안을 살 수 있다. 천국을 살 수 있다.
세상의 지혜와 능력들을,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
세상의 전통과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혼잡하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들이 영광을 가리는 수건들이다.
사람의 전통들과 계명들과 철학들이 찟겨져야 하는 휘장들이다.
세상의 초등학문들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인간들의 자기 소견에 옳은 진리들이 얼마나 많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말씀으로 영으로 분별하여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미혹의 역사에 속아 거짓 것을 믿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야 한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그리스도의 얼굴만 보기로 작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만 보기로 작정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야 한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자주 보는 것 같이 예수를 봐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사람은 보는 것을 닮게 되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
예수를 보면 예수를 닮게 되어 있다.
2.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면,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다른 것만을 보니까 다른 것을 닮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들이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셨다.
바울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다.(갈4:19)
해산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것은 성화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함이다.
성화,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룸으로 우리는 천국을 누리고 살 수 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곳이다.
바벨탑을 쌓는 곳이 아니다. 누가 누가 복을 많이 받나 축복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형상이 곧 영광이요 영광이 곧 형상이기 때문이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아야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 이를 것이고,
그래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한 영광은 작은 영광에서 크고 무한한 영광으로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연단을,
연단은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소망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단지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연연해 할 것이 못된다.
그것들은 오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나 낳고 이생의 자랑으로 끝이 나고 만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고 삶의 목적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그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고 채워주시고 누리게 하신다.
우리의 소망을 정함이 없는 재물에 두지 말고, 소망을 보이는 것에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마음이 넓어질 것이고, 시야가 확 트일 것이고, 얽매임에서 자유하게 될 것이다.
땅의 것만을 찾을 때 어두워지고 혼란에 빠지고 공허에 시달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에 메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새 마음 새 영을 창조해 주신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게 한다.
3.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영원 전에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그 구원을 이루시고,
그 이루신 구원을 우리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도록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우리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이루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이룬다.
육신의 생각이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육신의 생각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
육신과 성령은 우리 안에서 서로 대적하고 거스른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육신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을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영의 사람들이요 영이 쓰신 말씀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속에 거하게 하셨다.
성령을 모르고 성령을 받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는지 알 수가 없고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딴 소리들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고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사람의 지혜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생각들은 결국 사망을 낳고 사망으로 끝이 나고 만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없고, 천국도 없다.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요, 성경의 종교요, 성결의 종교이다.
성령께서 저자들을 통해 성경을 쓰셨고 우리의 성결을 이루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성결이, 거룩함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 축복과 영광을 가져온다.
욕심과 야망은 축복과 영광을 주지 못하고 멸망과 사망만을 줄 뿐이다.
이에 대한 확신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수건을 벗고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하시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알고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고 힘입어 그리스도의 형상과 영광을 이루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