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토 마태오 19, 13-15- 꼴배 신부님
「줄무늬 죄수복, 빡빡 깎은 머리, 유대인, 그리고 가스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그러나 낯선 곳-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남쪽,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에서 불과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폴란드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지어진 이 수용소는 1942년부터 유럽 최대의 유대인 학살지로 변했다.
교통의 요지면서 주변 도시와 격리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수용소에 들어서자 커다란 벽면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여자 머리카락 더미를 만났다. 약간 구불거리는 회갈색의 머리카락들. 독가스에 바랜 탓도 있지만 염색을 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을 모아 염색을 했을까’하는 의문은 바로 옆 전시대를 보는 순간 풀린다.
성글게 짜인 옷감 끄트머리에 삐져나온 머리카락들. 숨이 멎는다.
장애인, 어린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인체실험을 했던 연구실, 다음 죄수가 입을 수 있도록 죄수복을 발가벗겨 죽였다는 ‘총살의 벽’….
인간에 대해 절망을 할 때쯤 지하 감옥 18호실이 구원처럼 나타난다.
가족이 있는 다른 수용자를 위해 “대신 죽겠다.”고 나섰던 폴란드의 성자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숨을 거둔 곳이다.
그 방의 좁은 창살 틈에 순례자가 끼워놓은 손바닥만한 그림 속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미소 짓고 있었다.」
위의 글은 어느 여행 저널리스트의 글입니다.
이 저널리스트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끼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막시밀리안 콜베신부님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941년 7월 실레시아에 사는 잔이라는 젊은이가 아우슈비츠에 있는 포로 43수용소에서 우연한 기회에 탈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망자로 인해 10명이 아사실(가스실)에 들어갈 것을 지휘관은 명령하고, 그중 한 사람이 사색이 되어 거부하자 콜베 신부님은 지휘관에게 자신이 사제임을 밝히며 대신 아사실에 들여 보내줄 것을 청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돌아가신 콜베 신부님의 삶은 그분의 생전 편지글에서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사랑합시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합시다. 우리의 순명이 바로 이 완전한 사랑의 증거이어야 하겠습니다. 순명이 우리 자신의 뜻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더라고 순명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 진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읽어야할 더 고상한 책을 우리는 모릅니다.”(성무일도 독서기도 중)
콜베 신부님의 삶은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벗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콜베 신부님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가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타인을 위해 내 자신을 내어줄 때, 내 이웃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하고 이웃을 위해 내 생각과 고집을 접으려 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런 용기를 은총으로 주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데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콜베신부님은 우리게 그런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성모님을 공경하며 살았기에 그런 용기를 지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콜베신부처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성모님의 용기를 닮아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콜베 신부님에 대한 동기 신부님의 강론이 좋아 올립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 진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읽어야할 더 고상한 책을 우리는 모릅니다. 아멘!... 날마다 좋은강론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