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하늘 초등학교 4학년 2반 이아름입니다. 우리 반에는 저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어요.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다운이지요. 다운이는 저보다 5분 늦게 태어났는데, 저희 둘이 너무 똑같아서 엄마 아빠도 구별하기 힘드셨대요. 지금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면 가슴에다 이름표를 붙여 놓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저는 늘 다운이와 함께 다녀요. 학교에 갈 때도 다운이가 옆에 있어서 심심하지 않고, 집에 오는 길에 가끔 사나운 동네 개를 만나도 겁이 덜 나거든요. 아마 저 혼자였으면 무서워서 엉엉 울어버렸을 거예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친구들이 쌍둥이 동생이랑 항상 같이 다니는 저를 많이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쌍둥이라 해도 다운이와 저는 다른 점이 많답니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오늘 아침에는 자명종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요.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다운이도 잘 잤니? 얼른 씻고 아침 먹자.”
“네, 엄마.”
역시 다운이는 일찍 일어났네요. 이제 곧 엄마가 저를 깨우러 오시겠죠? 아웅, 난 좀 더 자고 싶은데….
“아름아, 그만 일어나야지.”
“아, 10분만 더 이따가요.”
“안 돼. 그러다 학교 늦으려고. 그러게 엄마가 일찍일찍 자라고 했잖아. 늦게까지 텔레비전 보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겨우 일어나서 욕실로 갔지만 잠이 쉽게 깨지를 않아요.
“아름아, 얼른 씻어!”
엄마의 재촉에 정신을 차려보니 세면대에 물이 철철 넘치고 있어요. 깜짝 놀라 후다닥 세수를 하고 나와 식탁에 앉았지요. 다운이는 그새 밥 한 그릇을 다 비워 가고 있어요. 잔소리 듣기 전에 얼른 밥을 먹어야 될 것 같아 숟가락을 들었지만 영 입맛이 나지 않아요. 게다가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반찬이 계란말이 하나밖에 없어요.
“아름아, 계란말이만 먹지 말고 시금치 무침이랑 골고루 먹어야지.”
하지만 전 시금치가 싫어요. 먹으면 입안에 떨떠름한 맛이 돌아서 기분이 나쁘거든요.
“배불러요. 그만 먹을게요.”
계란말이를 다 먹고는 엄마 눈치를 보며 슬쩍 숟가락을 놓았어요. 엄마가 혼내실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냥 넘어갔답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한 뒤 다운이랑 손을 잡고 집을 나섰어요. 오늘도 엄마는 창문 너머로 저희들이 횡단보도를 잘 건너는지 지켜보고 계세요. 저와 다운이는 뒤돌아서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학교 앞 문구점에 들렀어요. 다운이가 지우개를 사겠다고 해서요. 동생이 지우개를 고르는 동안 저는 문구점 앞에 진열된 과자를 보러 나갔어요. 새콤달콤한 사탕, 과일 모양의 젤리, 별사탕이 들어 있는 과자…. 그중에서도 전 단맛이 나는 뽑기 과자를 제일 좋아해요. 먹고 나면 가끔 배가 아플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어요.
하지만 엄마는 뽑기 과자를 못 먹게 해요. 그래서 먹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집에 가기 전에 다 먹으면 될 것 같아 얼른 사서 한 입 베어 물었어요.
“어머, 쟤네들 쌍둥인가 봐.”
“그러게, 정말 똑같이 생겼네.”
문구점에 들어오던 중학생 언니들이 저와 동생을 보고 수근거렸어요. 늘 겪는 일이라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계속 과자를 먹으면서 다운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집어 드는데 다시 그 언니들의 말소리가 들렸어요.
“근데 있잖아. 저기 지우개 고르고 있는 애가 더 예쁜 것 같아. 안 그래?”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쌍둥이라도 조금씩 다르긴 한가 봐.”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젤리를 떨어뜨렸어요. 세상에, 다운이가 나보다 더 예쁘다니 정말 말도 안 돼요. 도대체 어째서 다운이가 더 예쁘다는 거죠? 다운이보다 제가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하얗고 그리고 제 볼에는 다운이에게 없는 보조개도 있는데 말이에요. 운동장을 지나다 날아오는 축구공에 맞았을 때처럼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어요.
“언니, 나 이 딸기 지우개 샀어. 예쁘지?”
다운이가 빨간 딸기 모양 지우개를 내밀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대신 환하게 웃고 있는 다운이의 얼굴이 보였죠. 이상하게 화가 났어요.
“아니, 안 예뻐.”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휙 뒤돌아섰어요.
“어? 언니가 좋아하는 딸기 모양인데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다른 걸로 바꿀까?”
“됐어. 그냥 가!”
버럭 짜증을 내고서 집을 향해 빨리 걸었어요. 다운이가 황급히 뒤쫓아 와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전 양손을 주머니에 쑥 넣어버렸지요.
“언니, 왜 그래?”
“….”
영문도 모르고 제 뒤를 졸졸 따라오는 다운이한테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운이랑 나란히 가고 싶지 않아요.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런데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다음 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저는 다운이보다 앞서서 걸었어요. 어제 일이 다운이 잘못이 아니란 걸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걸요. 같이 다니다가 또 다운이가 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떡해요.
그런 저 때문인지 다운이 표정이 좋지 않아요. 아마 지금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언니가 돼 가지고 동생에게 이렇게 못되게 굴면 안 되지만 너무 속이 상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오늘 오전에 신체검사하는 거 알죠? 자, 모두들 차례로 줄을 서서 검사를 받도록 해요.”
신체검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키예요. 저도 일 년 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요.
“이아름.”
제 차례가 되자 실내화를 벗고 키 재는 기계 위에 올라섰어요.
“142센티미터.”
작년보다 5센티미터 더 컸네요. 생각보다 많이 커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다운.”
다운이도 기계 위에 올라섰어요.
“144센티미터.”
‘어? 내가 다운이보다 더 컸었는데 언제 다운이가 저렇게 컸지?’
“그럼 이제 다운이가 아름이보다 더 크네. 아유, 이아름 어떡하냐? 동생한테 밀려서.”
가뜩이나 속상한데, 장난꾸러기 동호 녀석이 약을 올리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뭐라고? 나보다 더 조그만 게, 넌 네 걱정이나 해!”
저는 동호를 확 밀쳐내버렸어요. 다운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저를 달래려는 듯 다가왔지만 못 본 척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요. 그러고는 다운이랑 눈이 마주칠까봐 다운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요.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종례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실을 나왔어요.
“언니, 언니!”
다운이가 따라 나와 몇 번이나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뛰어서 집에 왔어요.
“아름아, 다운이는 어쩌고 혼자 오는 거니?”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데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물으셨어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 엄마가 그러시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제가 꼭 다운이를 챙겨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몰라요. 알아서 오겠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웠어요. 얼마 뒤, 다운이가 돌아왔는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도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이제 엄마까지 알게 됐으니 어쩌면 좋아요. 그냥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요. 한참 후, 엄마가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아름아, 다운이가 아름이보다 더 커서 속상한 거야?”
“….”
“너도 참, 자라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그게 다운이 탓도 아니잖니.”
엄마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떡해요. 그런 내 마음을 엄마가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다운이 편만 드는 것 같아 서운해요.
“엄마도 나보다 다운이가 더 예쁜 거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아름이도 다운이도 똑같이 예뻐.”
내 질문에 당황하는 엄마의 모습이 꼭, 나보다 다운이를 더 예뻐하는 걸 감추려는 듯해 마음이 더 상했어요.
“거짓말 마세요. 저도 다 안다고요! 중학생 언니들이 그랬어요. 나보다, 나보다 다운이가 더 예쁘다고…. 흐어어엉.”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고 나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아름이 마음이 아팠구나. 이렇게 예쁜 아름이를 보고 그런 말을 하다니 못된 언니들이네.”
엄마는 울고 있는 저를 꼬옥 안아주셨어요. 그날 저는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휴일을 맞아 아빠가 다 함께 소풍을 가자고 하셨어요.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아빠 차를 타고 공원으로 가면서 다운이와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불렀어요. 공원에 도착해 엄마 아빠가 돗자리를 펴는 동안 다운이랑 저는 자전거를 타고 호수도 구경하고 알록달록한 꽃밭도 구경했어요.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얼굴에 닿는 게 참 기분 좋았어요.
자리로 돌아와 도시락을 열어 보니 계란말이, 불고기, 스파게티…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가득이에요.
“언니, 이거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신 거야. 나도 옆에서 조금 도와드렸어.”
“어? 어, 그래.”
엄마 아빠, 그리고 다운이까지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엄마, 어제는 죄송했어요.”
“아니야. 엄마가 우리 아름이 마음 아픈 것도 몰라줘서 미안해.”
“아니에요. 다 제 탓인걸요. 엄마 말씀 안 듣고 텔레비전 보느라 늦게 자고 밥 먹을 때도 좋아하는 반찬만 먹고 또 엄마가 먹지 말라는 과자도 몰래 먹어서 다운이보다 키도 안 크고 살만 더 쪘어요. 그래서 다운이가 나보다 더 예뻐 보이나 봐요.”
“하하하하! 우리 아름이가 몰래 과자를 먹는 줄은 몰랐네. 아름아, 아빠가 보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너희 둘이 똑같단다. 그런데 가끔 다르게 보일 때가 있지.”
“언제요?”
아빠 말씀에 저와 다운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맞춘 것처럼 동시에 물었어요.
“똑같은 얼굴이라도 밝게 웃고 있을 때와 찡그리고 있을 때는 확실히 달라 보이지. 생각해 보니 아름이가 다운이보다 찡그린 얼굴을 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구나. 누구나 찡그린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란다.”
“아, 그렇구나!”
아빠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운이가 저를 보고 말했어요.
“참, 언니. 옆집에 사는 현진이 언니가 예전에 나보다 언니가 더 예쁘다고 한 적이 있었어. 처음엔 나도 기분이 나빴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언니가 예쁘다는 건 결국 나도 예쁜 거잖아. 우린 똑같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어.”
“그, 그랬어?”
다운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저만 속 좁게 군 것 같아 창피했어요.
“그러고 보니 쌍둥이라서 예쁘다는 말을 두 배로 듣네. 아름이랑 다운이는 두 배로 더 친하게 지내야 되겠는걸?”
“네, 아빠!”
“우리 아름, 다운 공주님들,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세요.”
“네, 엄마!”
하루 종일 엄마 아빠 그리고 다운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정말 좋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운이는 피곤한지 금세 잠이 들었어요. 다운이의 머리에 쿠션을 대주다가 차창에 비친 우리 둘의 얼굴을 보았지요. 제가 봐도 정말 똑같이 생겨서 피식 웃음이 나지 뭐예요.
이제는 다운이가 나보다 더 예쁘다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다운이는 나랑 똑같이 생긴 소중한 내 동생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는 다운이를 더 많이 아껴주고 사랑할 거예요. 그래서 엄마 아빠가 바라시는 아름다운 쌍둥이 자매가 될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