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무덥던 8월이 지나고 올 것 같지도 않던 가을의 들머리인 9월에 들어서니 아침, 저녁 제법 서늘한 기온이 감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 무섭게 경북지역 산악계는 벌써 들뜬 마음으로 저마다의 산악축제를 위해 분주하다. 올해는 가장 먼저 지난 7일 안동시산악연맹에서 산악축제의 테이프를 끊었다. ‘2013 안동시산악축제’를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한 농암종택(聾巖宗宅) 앞에서 ‘안동시장배 등산대회’와 ‘산악구조대 시범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임을 자처하는 안동에서도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도산구곡(陶山九曲) 예던 길’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낙동강변에서 많은 산악인들과 안동시민들이 함께 한 운치 있는 산악축제가 펼쳐졌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선생의 종택(宗宅)이 자리 잡은 가송리(佳松里)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에 걸맞게 옛 선현들이 거닐던 사색의 길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과 아찔한 단애(斷崖), 반짝이는 금빛모래밭까지 가히 낙동강 700리(里) 중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뽐낼만하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굽이쳐 흘러 예부터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는 명산 ‘청량산(淸凉山)’의 열두 봉우리(6.6봉)를 감아 내린 강물이 벽력암(霹靂岩) 높은 절벽을 때리며 흘러 지금은 수몰되어 버린 도산구곡 중 5개 곡(曲)을 삼키며 안동호 깊은 물속으로 옛 추억을 담고 있다. ‘도산구곡(陶山九曲) 예던 길’에 얽힌 스토리텔링에 안동의 진면목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대목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도산구곡’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 꼽히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께서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며 거닐었던 낙동강 제일의 절경 아홉 군데를 후세들이 중국 남송 때 주자(朱子)가 거닐었던 ‘무이계곡(武夷九曲)’에 견주어 이름 지은 것으로 옛 고어로 ‘녀던 길’(선현들이 걷던 길)을 따 ‘예던 길’로 부르며 붙여진 안동관광의 명소가 이곳이다. 옛 선현들이 사색하며 거닐던 그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는 구곡 하나하나가 빼어난 풍광이었다 하니 그 시절 선현들의 시심(詩心) 또한 명문(名文)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도산구곡(陶山九曲) 예던 길’과 함께 산꾼들이 즐겨 찾는 ‘왕모산(王母山. 648m)’ 또한 안동에서 손꼽히는 명산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왔을 때 어머니와 함께 숨어들었다는 전설로 ‘왕모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곳에는 왕모산성과 갈선대, 왕모당 등 볼거리와 재미난 등산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갈선대 전망대에서 내려 보는 단천리 낙동강 태극선(太極線)은 구비치는 강물의 진수와 함께 이육사(李陸史)시인이 시심을 발휘해 노래한 시(詩), ‘절정(絶情)’ 그것이다. 왕모산을 넘어 축융봉(845m)까지 가는 종주산행 또한 산악인들의 산행 욕심을 자극할만한 코스다. 6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 종주산행은 안동의 산악단체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코스로 ‘안동둘레 칠백리’ 책자에도 잘 소개되어 있어 우리지방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꾼들에게도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산구곡’의 면면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문헌과 자료를 찾아보면 1곡은 운암곡, 2곡은 월천곡, 3곡은 오담곡, 4곡은 분천곡, 5곡은 탁영담곡, 6곡은 천사곡, 7곡은 단사곡, 8곡은 고산곡, 마지막 9곡은 청량산곡이라 한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과 함께 어우러진 산세(山勢)마다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9곡(曲)이 제 각각 특유의 풍광을 연출하니 과연 천하 절경이 따로 없다. 안동시 산악연맹이 유서 깊은 이곳 ‘도산구곡’을 배경으로 산악축제를 개최하니 참석한 모두가 선인(先人)의 경지에 든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들떠진다. 벽력암 높은 암벽에서 뛰어 내리는 산악구조대의 힘 찬 모습이나, 낙동강 깊은 물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티롤리안 브릿지(Tyrolean Bridge:수평횡단구조방식)시범도 한층 돋보인다. 등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건강한 웃음소리와 빼어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 산악문화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옛 선인들도 이런 연유로 산과 강, 자연을 사랑하고 좋아 했던 모양이다. 선현들의 참된 삶의 길, ‘예던 길’을 우리 후손들도 함께 걸어 행복한 삶을 영유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아름다운 ‘도산구곡 예던 길’에서 펼쳐진 안동시산악축제에 대한 단상(斷想)에 젖어본다. 경북산악연맹 수석부회장 김유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