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산 德政山(325m)과 鎭江山(443.1m) 2009년 12월 15일
경로 ; 강화터미널-강화농경문화원(농업기술센터-덕정산(군사격장)-진강산-가릉-강화 나들이길(카톨릭대학-도장리-석릉입구) 5시간 20분 (夫婦山行)
강화 터미널에서 양도가는 차편으로 9km정도 간다.
도중 안양대학교(강화 캠퍼스)와 기상 관측소를 지나면
신호대가 있는 농업 기술센터(농업 기술대학)입구에서 하차,
길을 건너 마을 진입로를 따라 한참을 가면 돈사에서 나오는 심한 악취를 맡으며 임도길을 마루금까지 따른다.
밤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다,
마루금에서는 왼쪽으로 계속 희미하지만 뚜렸한 길을 따르면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덕정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곳까지 한시간정도 걸리며 정상은 사격장 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위험한 곳이다.
훈련중에는 통과 할수없는 곳이다,
덕정산 정상에서 방화선을 따라 안부까지 계속 내려오면 초소를 30여m지난 우측에 있는 1등 수준점이다.
수준점은 보통 도로변이나 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산 속에 있는것이 좀 색다르다 하겠다.
사격훈련을 할때는 이곳에서 통제를 하기에 접근 할수가 없지만 그러질 않더라도
사격중엔 위험해서 가라고 해도 못갈것만 같은 곳이다.
진강산 정상이다,
안부에서 이곳 까지는 길이 없다.
사격장 때문에 못 다녀서 그런 모양이다.
정상 조금 아래엔 넓은 공터가 있고 통신탑이 있었으며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해서
기분이 아주 좋았으며 이곳 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상당히 춥다. 바로 바닷 바람이라 뺨이 얼얼하다.
보기 드문 1등 삼각점이 있었지만 글자는 식별이 좀 어려웠다.
바로건너 길상산과 뾰족한 숙피산이 바로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은곳이다,
사방 막힘이 없는 곳이다.
양도 앞 바다가 둥그렇게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것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석모도가 전체적으로 다 보이며 외포리 선착장도 잘 보인다.
바로 앞엔 마니산이 버티고 있으나 낮아보인다.
강화에선 마니산(469m) 혈구산 (466m)진강산(443.1m)의 순서이다.
정상 조금 아래 있는 뽈똥나무(보리수)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본다,
바로 아래엔 인천 카톨릭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하산길에 가릉을 보기로 했다.
바위틈에 자라는 아주 건강한 해송,
강화에는 고인돌 무덤이 많은데 사용했을 바위들이 많은게 특징이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인천 기념물 제 28호)
진강산 남쪽에 있는 고려시대의 무덤이다.
지하에 석실을 만든후 그 위에 흙을 쌓아올린 봉분과
난간석, 石獸를 배치하고 곡장을 둘렀다.
가릉(嘉陵) 사적 제 370호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로 책봉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고종 31년(1244)에 사망, 그후 충렬왕이 즉위하자 (1274) 순경태후로 추존 했으나
훼손된 무덤을 1974년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를 했다.
석실은 아무것도 없었고 유리로 된 출입문이라 안에는 양치류(고사리과식물)가 자라고 있었다.
조산리에 있는 한옥인데 한옥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릉에서부터 시작한 강화 나들이 길.
카톨릭대학까지는 리번이 계속 있으나 대학을 벗어나자 찾을수 없었다.
도장리 마을 회관앞으로 해서 석릉과 곤릉을 찾아 보려 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강화 탐방 6일째다.
갑자기 날씨가 추어져 아랫목이 그리울 때 이지만 백두대간(도래기재-고치령)을 다녀와서 하루를 쉬고 나니 벌써 답답해져 마눌에게 의향을 물어보니 쉽게 호응한다.
앞으로도 강화의 산길은 3일 정도는 더 가야 하겠지만 오늘로서 본섬의 산은 다 보게 되는 것이다.
덕정산은 군 사격장이 있는 곳이라 등산객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다행히 오늘은 사격이 없어서인지 조용해 출입통제 안내판을 무시하고 들어갔으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빨리 통과를 하려고 서두르기도 했다.
정상은 붉은 깃발(통제용)이 두 개나 펄럭이고 있으며 방화선인지는 몰라도 깨끗이 정비되어 있어 시계는 좋았지만 서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거치지 않고 바로 얼굴을 때리기에 상당히 따갑기도 했다.
극한에서는 오히려 고통이 사라지며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면서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는 자신을 체험할 수 있으며 또한 산에서는 깊은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며 실존적인 근본 경험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도 할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어떠한 한계를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신체적 한계라면 멈추거나 쉬게 되면 곧 회복이 되지만 심리적이거나 정신적 한계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며 막을 수 있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독과 공포감이 먹구름처럼 밀려올 때면 이성을 뛰어넘는 자기성찰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지만 다행은 요행을 부르기도 한다지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사격장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화선을 따라 안부로 쉼 없이 내려 와서는 진강산을 향해 오른다.
접근성의 어려움 때문인지 길이라곤 없다.
낙엽이 수북한 마루금은 이따금 산짐승이 지나간 듯 뒤집혀진 낙엽만 그 흔적을 알려주었다. 시그널을 하나씩 걸어두며 오르는 경사 길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마루금에 도착하니 무너진 성터 같은 곳이 정상까지 계속하며 잣나무도 길을 같이한다.
반대방향으로 종주를 한다면 이어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다.
정상 조금 아래엔 아주 큰 광장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쉼터도 마련되어 있었다.
정상은 역시나 나무로 만든 정상목이 우뚝하며 그 앞엔 보기 드문 1등 삼각점도 있었다.
북쪽으로는 통신시설(소규모)도 있으며 사방 막힘없는 시원한 곳이다.
그러나 추워서 오래 있을 수 없어 아래 바람막이가 될 덧 한 언덕을 기대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바로 앞에 있는 마니산과 지난번 다녀왔던 길상산 사이 넓은 평야지대가 무한한 인간의 미약함과 불안전성을 동시에 깨닫게 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만 하는 사실을 직접 느끼면서 남쪽 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산행 중 가장 쉬운 산행은 혼자서 하는 것이다,
자기 체력과 능력에 맞는 맞춤 산행이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는 공간을 즐길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에서 인천 카톨릭대학 쪽이 아닌 嘉陵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릉은 사적 제 370호로 고려 제24대 원종의 비 순경태후의 능이며 남한지역에 남아있는 단 2기의 고려왕비의 릉(陵)이라고 한다.
30여분 신나게 내려오니 복원 관리하고 있는 능이 있었으며 주변 정화도 잘 되어 있었지만 고구려 뒤를 이은 고려국의 왕비무덤인데 요즘 졸부들의 무덤과는 비교가 안 될 초라한 무덤임을 보는 사람은 느낄 것이다.
여기도 요사이 유행하고 있는 올래길(나들이길)이라는 옛길이 조성된 모양이다.
산행량도 적고 해서 우리도 이 길을 따라보기로 했다.
산의 경계점인 허리를 돌아가는 길인데 한참을 돌고 도니 카톨릭대학으로 안내 표지가 있어 따라갔더니 이후론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도로를 따라 석릉 입구까지 왔으나 1,7km나 되어 포기하고 승강장에서 지나는 차를 히치 터미널까지 올수 있었다.
한 가지 강화도 여행이 좋은 점은 모든 차들이 터미널을 경유하기에 어느 곳에서라도 쉽게 차를 얻어 탈 수 있는 그런 점이 아주 편리했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지만 추위와 맞선 산행 아주 멋지고 유익하게 즐겨본 하루였었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