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카페에는 제가 글을 자주 안올렸습니다만 가족들 또는 저혼자 틈틈이 시간이 나는데로 성지 순례를 하였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다보니 즐거움도 생기고 어려움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그동안 가족끼리 진행하지 못했던 성지 순례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을 벗어나는 일정이라 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대성지 (http://www.chonjinam.org/index.asp)를 순례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성지 순례는 성인의 탄생지나 순교지 였다면 이번의 순례지는 뿌리를 찿아가는 순례였던거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창립 성현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고하 할까요...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천진암 성지에 들어서는 순간에 느낀 감정은 굉장히 장중함과 엄숙함...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였습니다. 미사를 천진암 대성당터가 있는 성모당에서 드렸는데 모든것을 그레고리안 성가를 하여서 힘들었지만 장중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아울러 장미 향기를 맡아서 주변에 여자 교우분들이 많아서 그런가 하였는데 그분들이 떠나도 향기로운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난후 밑으로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올라가 순례를 하였습니다. 창립 성현들의 묘역에 가니 봉사자가 안내를 하고 계셨습니다. 성현들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듣다보니 때로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승훈 성현은 배교자라고 인식하여 인천에서는 소홀하게 여기셔서 수원교구에서 모셔간다고 하실때 쉽게 승낙하셨고...정약전 성현은 무연고 묘지로 되어서 개발로 파헤쳐지는 걸 모르고 서울 교구에서 등한시 여기는걸 보고 수원교구에서 천진암으로 모셔왔다고 합니다. 광암 이벽 성조의 묘역은 포천에서 옮겨오고...
일부 성직자분들 사이에서 위 5분의 창설 성현들을 예비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승훈 성현만 신부님께 세례를 받고 다른 분들은 신부님들로 부터 세례를 안받아서 그런가요???
그런데 이 다섯분들이 하느님의종 125위에 포함되어서 시복승인에 들어가니까 성현들께서 기존에 묻혀 계시던 장소를 정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인천 만수동에 있는 이승훈 베드로 님의 묘는 가묘 인것 입니다. (저의 이모부네 집안 어르신 묘역 입니다. 평창 이씨 가문에서 수원교구에서 잘 모시겠다고 하셔서 이장을 승인하셨다고 이모부님께 들었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우리는 선교사들께서 오셔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고 선조들께서 학문으로 받아들이다가 신앙으로 발전 시킨 세계에서 유일한 가톨릭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그분들에 대한 대접은 엉망 진창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때는 17세에서 2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이벽 성조께서는 17세부터 공부를 하셨다고 하네요. 내 나이 40대인데 나는 무엇을 하는 나이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천진암 성지는 이분들이 공부를 하던 주어사라는 절이 있던 장소 입니다. 주어사 스님들이 박해가 일어 났을때 모두 의금부에 끌려가 처형을 당하고 절은 폐사지가 되었습니다. (절두산 성지에 그 스님들을 기리는 비석이 있습니다.)
천진암 성지에는 창립성현 5분과 그분들의 가족들의 묘역이 있습니다. 아울러 저의 주보성인이신 성 유대철 베드로의 부친 성 유진길 아우구스띠노의 묘도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분의 묘역에 가보지 못했기에 다음에 가면 저의 주보성인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올려고 합니다. 되도록 저의 주보성인의 순교일인 10월 21일 전후로 가보려고 하는데 올해는 힘들더라도 내년에는 꼭 가보려 합니다.
천진암에서 제가 느낀 마음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천진암 성지 꼭 순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형제님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게됩니다
지난번에 본당신부님께서 소개하신 한국천주교 성지순례라는 책을구입하여 성지를 방문하려고노력중입니다 전국을 돌며 살던 덕분에 많은 성지를 가까이 살며 가보았다 자부했지만 ,막상보니 100여곳이 넘는 성지중 28곳정도만 순례하였네요....형제님의 글을보며 제가 가기를 희망하는 성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있어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