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공철 심방. 2010년 백조일손공연에서. |
사랑하는 아시 공철아. 이 빈복한 놈아. 무사 살 만해 지난 가부는 거냐? 이 무정한 놈아. 오늘도 아침부터 비새[悲鳥]가 날아와 낭가지에서 칭원하게 우는구나. 우는 거야 죄 될 일 아니난 막 실컷 울고 가라. 같이 심벡허멍 울어나보게. 내 팔자도 너처럼 기구하여 ‘정공철’이 술만 먹으면 커싱커싱 허멍, "제주대학 국어교육과 졸업하면 제대로 국어선생 할 아이를 막걸리 사주멍 꼬셩 심방 만들어부러시난 내 인생을 책임져. 마벵이 씨-팔 성님아." 허멍 술만 마시면, 악을 쓰며 반항하고 원망하는 '정광질'이를 위해, 그대를 보내는 조사를 쓰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기막힌 일이 아니냐. 아, 이 칭원하고 답답한 놈아. 광대로 사는 게, 심방의 길을 가는 게 그렇게도 고달프더냐.
이 무정한 정광질이야. 공철아. 그렇다면 사과하마. 진짜 원망하는 게 아니란 걸 난 안다만. 너무 아프고 서러워도 마른 목 냉수 한 사발, 냉막걸리 한 사발 벌컥벌컥 마시고, 타는 목 잔질루멍(축이며) 가라. 공철아. 너 술 마시고 내게 원망하는 게 원망이든 애증이든 그게 측은한 사랑임을 알기에 더욱 아프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80년대 대학 3학년이던 김수열과 함께 공철이 너를 꼬드겨 마당극을 하자고 탑동으로 제주중학교 근처 복집식당, 영미식당으로 다니며 술을 사주며 제주대학 다니는 동료들을 10여 명 모아오게 하여 문화운동을 한다며 딴따라판 술판을 만들었던 그때의 '마당굿쟁이 광대질'이 왜 우린 그리워질까. 애증이든 원망이든 그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이었고 그 너의 총기 넘치는 눈동자에 맺히는 눈물 한 방울의 연기 또한 명품이었으니, 오늘 내가 공철이 너 때문에 행복했던 그때를 못 잊는 걸까. 이놈아. 너무 속을 너무 드러내지 말게. 이제 같이 있을 시간도 많지 않네.
너는 심방이니까 잘 알겠지. 넌 이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쯤에 있다는 황량한 벌판, 고사목들 중간 중간에 가시나무 있어 죽은 몸에 걸치고 있는 옷가지, 그게 뭣인가 이승에서 지고 온 슬픔이거나 욕망의 덩어리가 아닌가. 그 모든 것, 아 훌훌 털고 이승의 우리들과 이별하고 저승으로 떠나야 하겠지. 그런 이별이 운명이긴 하지만 다시 만날 길임을 난 아네.
'미여지벵뒤'로 가는 길이 얼마만큼 먼 길인가를. 내 이야기해 줄게. 나 미여지벵뒤에 갔다 왔으니. 아마 거리로 따지면 남아프리카쯤 될 거야. 내가 며칠 전에 남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제주도만 한 섬, 모리셔스에 갔다 왔지. 내 생전에 그렇게 멀리 여행할 줄은 몰랐어. 그곳은 내가 경험한 현실세계의 끝이었어. 바로 현실세계가 끝나는 지점에 저승의 피안으로 가는 저승 올레가 모리셔스라는 곳. 그곳에 나의 이여도가 있었고, 바로 그곳이 꿈에 그리던 나의 이여도, 그곳이 바로 '미여지벵뒤'라 생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그곳이 나의 현실세계 여행의 끝에서 만난 이승의 끝에 있는 천국, 제주도와 같으면서도 모든 슬픔이 다 녹아 없어져 버리고 평화로만 남은 이여도, 그곳이 미여지벵뒤였다는 거지. 그러니 공철아. 네가 먼저 가서 내가 오길 기다리는 저승은 지옥이 아닐 거야.
이 세상에도 광대들이 꿈꾸는 새 세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가 잘 아는 서천꽃밭. 먼저 떠난 착한 누이들이 물을 주어 키우는 생명꽃, 번성꽃, 환생꽃 들이 만발한 서천꽃밭이 있지 않은가. 내가 이여도에 갔다 왔다면, 넌 나를 믿을까? 내가 이승의 끝 남아프리카 모리셔스에 갔다 온 건 모두가 알지. 그런데 내가 천국 이여도에 갔다 왔다 믿는 사람은 없지. 그건 나의 꿈이었지. 꿈속에서 보았던 이승의 피안, 광대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 말일세. 천하의 광대 정공철아. 결이 고운 친구, 아름다운 우리들의 벗 공철아. 우린 갈 길이 머네. 그 먼 길 아름다운 광대의 길을 가기 위해 잠시 이별하는 거지.
오, 지긋지긋하게 착한 아이, 말썽꾸러기 삐돌이 정공철아. 늘 정신으로 살아 있으라. 쓸데없이 문무병을 원망 말고. 저승과 이승 길을 틀 순 없지만, 이승 사람 이승의 법도에 맞게 저승사람 저승 법에 맞게 살아가도록 하자. 당분간은 너와 내가 중음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니, 눈물도 슬픔도 사람으로 있으면서 흘려야 하는 거라면 우리 오늘 실컷 울고 가세. 술맛도 즐기며. 쩨쩨하게 놀지 말고, 내가 너를 만날 날은 오늘뿐, 그래서 오늘은 나도 할 말이 많았네. 공철아. 영게울림으로 저승과 이승의 역사를 쓰기엔 너무 짧은 순간일세. 본을 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니 먼 훗날 어느 새끼 광대가 나타나 “공철이형. 어시난 생각남수다.” 하면, 어서진 단오 멩질날이면 날 생각해 달라 하며 픽 웃고 마는 그런 역사. 광대들의 역사 속에만 남아 있으라. 민족광대 정공철이여. 안녕 / 문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