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좌도 ((安佐島)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에 소속.
요력도, (증산도, 휴암도, 자라도), 부소도, 박지, 반월도, 우목도, 부소도, 상,하사치도의 유인도와
무인도를 합해 63개의 도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쪽의 팔금도와는 신안 제1교로 이어져 있고, 부소도·내호도와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면적 : 59.88㎢,
인구: 자라도출장소와 포함 3596명(2011.07) , 1785세대
지리적 위치및 특징: 목포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21㎞ 지점에 있다. 북쪽의 팔금도와는 연도교인 신안 제1교로 이어져 있고
목포에서 읍동항과 복호항간에 여객선이 운항된다. 승용차로는 압해도 송공항에서 암태, 팔금을 거쳐 진입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 시대에 기좌도는 아차산현에, 안창도는 거지산현에 각각 속하였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기좌도는 압해군에, 안창도는 안좌현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기좌도는 압해군에 속하였고, 안창도는 장산현에 배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기좌도는 영광군에, 안창도는 나주목에 속하다가, 후에 기좌도와 안창도 모두 나주목에 속하게 되었다.
1690년 김해김씨가 해남에서 들어와 각 마을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마씨와 차씨가 기좌도 한운리에 처음 입도
1896년 기좌도가 지도군에 소속 되어 있다가
1914년 지도군 폐지로 무안군에 편입 되었다.
1917년 안창면의 9개 리와 팔금면의 7개 리를 합하여 안창과 기좌의 이름을 따서 안좌면으로 개칭
박지와 내호의 2개 리를 더하여 32개 리가 되었다.
1969년 다시 무안군에서 분리되어 신안군으로 분군
1983년 안좌면에서 팔금면이 분면(分面)하였다
1990년 신안군 최초로 안좌도와 팔금도가 연도교(신안 제1교)로 연결
2003년 상수도 준공
특산물: 감태 돌김, 대하 등이 많이 생산된다.
숙박시설 & 식당
여관: 유성모텔 061-261-1223, 정원장 061-262-0654
민박 펜션식 민박 061-261-6621, 오션민박 061-261-6621 하누이민박 061-262-4817
한식 유성가든 061-261-1223, 동국식당 061-261-4024, 봉선화식당 061-261-3485
한식 다도식당 061-262-6173, 천지연 061-262-4119, 섬마을음식점 061-262-2626
예전에 동쪽에 있던 안창도(安昌島)와 서쪽의 기좌도(箕佐島)섬 으로 있었는데
수로를 간척매립하여 두 섬의 이름자 하나씩을 빌어 안좌도라 부르게 되었다.
팔금도에서 신안 제1교를 타고 들어오면 좌측에 마진리 해안가
읍에 있는 안좌 종합고등학교 입구에 백제 석실 고분 안내판을 보고 들어 왔는데
이미 문화재 발굴을 마치고 비닐포장으로 덮어 놓고 유물은 볼수가 없습니다...
나홀로 여행에서 중요한것은 숙식인데 이번 여행은 예약을 전혀 못했습니다
방을 구하느라 찾아 헤메였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밤8시가 되서야 어렵게 구했습니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개를 받아 정원장에서 1박을 했습니다
가깝게 4개 섬이 있다보니 자동차 여행인 경우 따로 예약은 필요 없습니다
읍동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새벽 일찍 나와 근처에 있는 김환기 화백 생가를 갑니다
읍동리에 있는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생가. 지방 기념물 제146
김환기
한국 현대 미술에 있어 모더니즘 제1 세대를 대표하는 화가
1936년 니혼(日本)대학 미술과를 졸업
1936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작품활동.
1940년 서울에서 개인전
1946∼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1956~ 1959년 프랑스 유학
1965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작품활동
1970년대에 들어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사각 공간 속에 점묘(點描)로 운학(雲鶴),달, 산, 나목, 꽃 등을 배열해
한국 근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세워져 1992년 개관되어 뉴욕 시대 대표작 1,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읍동 소공원에는 김환기 화백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전시 되어 있다.
그의 이력을 보면 뜻을 품고 그뜻을 행동으로 옮긴 여러 사실들을 볼수 있다.
섬안의 개구리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작고 후에도 안좌도 주민들은
그가 자랑스런 안좌도 사람이라는데 대리 만족을 하는듯 섬 전체가 그를 기념하는 기념물들을 볼수 있다..
방월리로 가는 새벽길
부지런한 농부가 밭을 돌아 봅니다
방월리지석묘
지방무형문화재 제117호(1984년 2월 29일 지정)
소재지 안좌면 방월리 401-1,402-2
고인돌을 지석묘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무덤입니다.
방월리 지석묘의 형식은 바둑판형의 남방식으로 원래 7기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렀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4기가 남아 있다.
무덤 안에서는 주로 돌칼·민무늬 토기·돌화살촉 등이 출토 되었습니다.
한운리에서 바라다 보는 하치도
안좌 읍동에 간이 여객선터미널은 하루 3회 목포에서 여객선이 운항(오전7시, 오후1시, 3시)되며
바닷가는 김환기 화백의 조형물들이 여행객을 편하게 맞이 합니다
창고 벽면에도 그의 작품들을 그려 놓았습니다
면사무소가 있는 읍동이다
지도상 팔금도에서 건너와 계속 남동방향으로 직진하면 대리의 우실을 보면서 도로의 종착지인 복호리에 다달으게 된다
대리로 가는 길목에 여흘리 전경으로 면소재지에서 4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변은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마을 뒤에 후동산(해발 151m)이 주위에서는 큰산이다.
큰산아래 해발이 높은곳에 위치한다는 의미로 여흘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 말기 효자 약헌과 안교익의 효행을 표창하면서 세운 ‘안효자비’가 있다.
여흘마을에서 2km를 남진하면 면에서 가장 큰마을이라 해서 대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팽나무가 즐비한 곳이 우실입니다~
양바위 및 음샘
남근석은 남해 물건리 등 여러 곳에 있지만 안좌면 대리 남근석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음바위가 있는데 동네 아낙들이 이 음바위를 보면 바람이 나 마을이 이롭지 못하다 하여
동네 어른들이 음바위를 쪼개어 두 개의 남근석을 만들어 동네 앞쪽에 세웠다는 설이 있다.
대리 마을 안을 돌아봅니다~
오랜세월동안 시간이 멈추었던 것처럼 옛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대리 마을회관과 그 주위에는 농사에 쓰일 비료가 산더미만하게 쌓아 두었습니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섬 중앙에있는 마을은 바다를 볼수 없고 주로 농업에 의존 합니다
과연 쌓아둔 비료만큼 농작물이 나오는지, 농사로 생계는 걱정 없는지 많이 궁금 합니다...
산간마을은 주거환경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나이 많으신 분들이 농사를 꾸려 나가다 보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동안 섬을 돌아 다녀 보면서 잘사는 섬과 못사는 섬의 차이에 대해 조금은 눈이 뜨인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잘사는 섬과 비교 해 보는 포스팅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사진이 살아져서 아쉽지만, 자세한 내용 설명 감사합니다.
엇^ 수정하려 들어왔더니 사진이 보이네,,,어쩐일이죠^^?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좌 화이팅 ~~
(추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35009)
사진이 나왔다 안나왔다 해서 재 등록 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