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V는 희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작년 가을의 끝자락에서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고 또 시간이 흘러 봄을 맞습니다. 몇 개월 안 되는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월급이 안나오고, 용역깡패들이 회사를 점령하고, 모닥불을 피우며 구호를 외치고, 조합원 한명은 갈비뼈를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가고, 정파가 되고, 마침내 저를 비롯한 선배, 동료들은 실업자가 됐습니다.
방송인의 꿈을 실현하고 기뻐한지 채 2년도 안된 저로서는 큰 혼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업을 해서 얻은 게 무엇인가?’, ‘이렇게 되려고 시작한 싸움인가?’ 이 같은 의문들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직장인이 아닌 방송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다달이 월급을 받고 시간 되면 진급을 하고 그냥 그럭저럭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방송인이었기에 좀 더 나은 방송,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우리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강성노조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합니다. 파업을 몇 달째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가고, 모회사를 몰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겉모습을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전파살리기’ 서명을 받는 중에도 일부분들께서는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면서 서명을 기피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 당시 노조가 주장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직원 수는 전혀 늘지 않았고, 프로그램 제작비는 밑바닥을 기면서 악순환이 반복될 뿐 iTV는 아무런 발전도 성과도 갖지 못했습니다. 반면 대주주는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겨갈 뿐 방송사를 경영하는 기업으로서의 책임은 온데 간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유구조 개편’과 ‘사장공모 추천제’는 그 같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화도 이뤄지지 못했고, 아무런 절충의 노력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 회사에는 용역깡패가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방송장비를 보호한다고 우리를 몰아내고 회사는 그들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쓰던 장비이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우리가 가장 아끼던 장비인데 그걸 보호한답시고 우리를 회사에 발도 못 들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동기가 그들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나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음식을 담을 때 그릇을 사용합니다. 밥은 밥그릇에 담고, 국은 국그릇에 담고, 술은 술잔에 따라 마십니다. 같은 그릇이라도 담을 수 있는 내용은 각기 다릅니다. 와인을 마실 때 소주잔에 마시면 맛과 분위기가 떨어지듯이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먹어야만 그 음식이 최고의 맛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제철화학과 전 iTV경영진의 그릇은 방송이라는 내용을 담기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회사로서 얼마나 좋은 회사이고 경영진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몰라도 방송이라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분명 아니였습니다.
이제 조만간 제2창사 준비위원회가 발족합니다. 선배들은 지금껏 들었던 수족과 같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전과는 분명히 다른 방송사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 정치세력과 교류를 하고 준비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향후의 과정은 어떻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더 가기 힘든 가시밭길 일수도 있고, 여유를 느끼며 콧노래 부르며 가는 즐거운 길 일수도 있습니다.
정말 멋진 방송사로 거듭 태어난다고 확신하지만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배들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선배들과 같은 길을 걸었고, 방송인으로서 져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지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찍히는 우리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해직 itv 카메라기자 희망조합원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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