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봉유설(芝峯類設) 제18부 잡사(雜事) . 제1장 족성(姓族) 부분을 보면,
○ 선우씨(鮮于氏)는 기자(箕子)의 자손으로서 나라로 씨(氏)를 삼았다. 권씨(權氏)는 신라의 주신(冑臣)으로서 고려에서 권씨로 사성(賜姓)되었다. 혹은 말하기를, 한씨(韓氏)와 기씨(奇氏)는 기자로부터 나왔고, 옥씨(玉氏)와 전씨(田氏)는 곧 왕씨(王氏)를 고쳐서 부른 성이라고 하지만 알 수가 없다. 고구려. 백제 이후에까지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 唐나라 때의 발해(渤海) 국왕 대조영(大祚榮)은 역사에 고려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고구려의 자손이라 한다.
○ 고려 태조 때 류달(柳達)은 수레로 군량을 운반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차달(車達)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또 이도(李棹)는 배를 가지고 군사를 건네주었다. 그래서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김행(金幸)은 신라의 자손으로서 고려를 섬겼다. 그래서 그 권도를 잘 쓴 것을 가지고 권(權)이라는 성을 하사했다. 이 세 성의 자손은 드디어 우리나라 번성한 씨족이 되었다.
○ 조선(朝鮮) 태조(太祖) 때 동두란(童豆蘭)이란 이가 있었다. 원래 북청(北靑;함경남도)에서 나서 활을 잘 쏘더니 전쟁에서 따라다녀 공을 세웠으므로 이(李)라는 성을 하사했는데, 그의 자손들은 대마다 벼슬하는 이가 끊어지지 않았다.
위의 기록은 정사(正史)와 부합하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야사(野史)적인 내용이거나 다분히 호사가(好事家)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당대의 지식인인 지봉 이수광(李睟光)도 고려왕조의 인물인 류차달공을 문화 류씨의 시조로서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차씨에 관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류차달공이 문화 류씨의 시조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역사적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첫댓글 본문에 "柳達"로 나오네요.
옛날에는 여기저기 책과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발췌된 내용들을 모아 만들어낸
책들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책들이 또 책을 만드는 형국이지요. 그런 과정 중에
한자가 잘못 들어간 경우도 많고 잘못된 정보도 흔히 들어갔습니다.
여기서는 이름(柳車達)이 잘못된 경우입니다.
(한국고전DB에는 17권 잡사부에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 시조할아버님 함자를 "柳達"로 써야 하지 않나요?
저희는 도저히 알수없는 귀한 자료를 주신것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류"공 휘"달" 시조할아버님.... 낯설지 않은 이름같습니다.
지봉유설은 총 20권 10책 25부 182장 3,435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위의 내용은 채하님의 말씀처럼 17권에서 18부(잡사) 1장(족성)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지봉유설을 읽다가 순간 주목하게 된 것은 저자인 지봉 이수광과 차천로와의 교분이었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도 문화 류씨 시조님에 대한 이수광의 인식은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용대로라면 시조의 함자를 "柳達" 즉 "류"공 휘"달"이라 해야겠네요. 그렇다면 "車" 氏 집안서 자기네가 큰집이니 하는 등 복잡케 엮힐 필요도 없고요.
좀더 문헌을 찾아 연구 해 볼 필요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