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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리스트를 꿈꾸었지만 155마일 해안을 지키고자 결정했습니다
군인들에게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고 21개월 간 기다려 준 여자친구를 만난다든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나서는 맛 기행,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전역 후 전우회 사무실을 가장 먼저 찾아 선배 전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평생 전우로 살겠다고 선언한 23세 젊은이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불타는 젊음을 군에 바치는 게 싫어 갖은 방법으로 군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병대 기 김성헌 씨는 올 4월 제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와 동시에 재입대를 꿈꾸며 부사관 시험을 치루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월 15일 입대 전 보컬리스트가 되고자 실용음악을 전공한 음악도가 돌연 방향을 전환한 이유를 들어보고자 만났습니다.
<해병대 부천시전우회 민맹호 회장과 함께 한 김상헌 씨. 민 회장은 든든하고 꾀 부리지 않는 후배라며 격려했다>
-왜 재입대인가요? “제대 말년에 발목을 다치고 인대가 늘어나 마무리를 잘 못했습니다. 그런 아쉬움도 있었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입니다."
-빡 세다는 해병대를 지원한 이유는 “ 원래 발목과 무릎이 안 좋아 부모님은 방위산업체에 근무하기를 원했습니다. 2010년 있었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보며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안보가 불안하면 내 조국은 물론 가족, 사람이 짓밟힌다는 생각에 '나'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남한의 1개 해안사단을 북한의 7개사단이 감시한다고 할 정도로 북한의 해안 경비가 투철하다고 들었습니다. 155마일 해안을 지키고 싶어서 해병대를 지원했습니다. 친척의 영향도 큽니다.”
- 친척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막내 삼촌이 해군중사로 제대하셨는데 군악단원이셨습니다. 해병대는 해군이 할 수 없는 육상 전투가 가능하고 숫자도 반 이상 적다고 해서 희소가치를 느꼈습니다. 또 해병대 987기인 사촌형을 보며 중학교 때부터 관심이 갔습니다."
-직접 해병대 생활을 해본 소감은 “남자가 돼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순탄치 않았지만, 역경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누나 둘 속에서 자랐기에 집에서는 보호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군 에서는 선임, 후배들 속에서 채찍과 당근도 받아보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했습니다. 소심했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
<실용음악을 전공, 보컬리스트를 꿈꾸던 김씨가 재입대를 결정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누나들 밑으로 귀한 아들인데 재입대에 대한 부모님과 주위의 반대는 없었는지. “처음에는 완고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불안한 음악인보다 국가에 봉사하는 직업인으로 살고 싶다고 설득하자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은 군 생각만 하면 ‘재수 옴 붙었다. 꿈이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군에 대한 연원이 꿈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철학, 소신에다 표현력도 돋보입니다. 책을 많이 읽었을 것 같은 데 군에서의 독서는. “일주일에 두 세권을 읽었습니다. 군에 있는 동안 100권 정도 읽었을 것 같습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아는 것들>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삶의 지표가 되는 말이 가득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 이라는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혜민 스님은 승려가 된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며 과감한 결정을 했습니다.”
<해병대 부천시전우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는 선배 전우들>
-부사관으로 재입대를 한다면 일반사병 때와는 다른 각오일텐데 “해외파병으로 국위선양을 하고 싶습니다. 선배님들이 베트남 파병으로 명성을 떨치며 국제사회에 기여했듯이 소말리아나 이라크, 아이디 등 파병지에 가서 한국 해병대의 건재함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말이 휴전이지 전쟁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어 하시라도 틈을 주면 안 된다는 23세의 옹골찬 청춘 김상헌 씨를 만나고 오는 날은 더위를 잊엇습니다. 10대 1의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는 해병대 부사관 시험 결과는 9월 7일 나옵니다. 이런 젊은이가 선발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스팩의 지원자가 합격자 명단에 오를까 싶습니다.
<평생 군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김상헌 씨의 확신에 찬 모습>
<공동취재: 청춘예찬 조우옥(사진)‧ 최정애 어머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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