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없이 이 두려운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양이 비치기 시작했지만,
십자가는 여전히 암흑에 싸여 있었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니
짙은 구름이 도성과 유대 평야를 덮고 있었다.
의의 태양이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한때 은총을 받았던 예루살렘 도성으로부터
그 빛을 거두고 계셨다.
하나님 진노의 무시무시한 번개가
이 운명 지어진 도성에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둠이 십자가에서 걷혔다.
그때 예수께서는 천지를 울리는 듯한
나팔소리 같은 음성으로 부르짖으셨다.
“다 이루었다!”
가야바도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았다.
옛 예언자들의 수많은 예언이 남김없이 성취되었다.
지금 굴욕과 고통 속에서 인사불성이 된
그분이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이
틀림없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알아들었을 그리스어 표현으로 회계 용어였다.
양피지에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라고 적힌
세금 영수증들이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되는데,
‘완불되었음’이라는 뜻이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시면서
예수님은 죄의 빚이 청산되어 완전히
말소되셨음을 선포하셨다.
더는 아무것도 없다. 선행도, 후한 기부도,
참회나 고해나 침례도,… 그 밖의 무엇도 필요 없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며, 우리는 모두 가망 없이
빚 가운데 태어났다.
그런데 그분께서 우리의 빚을 완불하셨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말을 마치신 후,
그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맑은 음조로 고요하게 말씀하였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한 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렀다.
구주의 얼굴은 해와 같은 영광으로 빛났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머리를
가슴 위로 떨구고 운명하셨다.
서기 31년 4월 27일
침침한 금요일 오후 3시경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표면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으셨다.
무서운 흑암 중에서 인간이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그분께서는 항상 기쁨으로 즐겨 순종하셨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셨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이 세상은 전에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결코 없었다.
군중들은 넋을 잃고 서서 숨을 죽인 채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은 다시 땅을 덮었고 맹렬한
천둥소리와 같은 둔탁한 울림이 들려왔다.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함께 흔들렸다.
극도의 혼란과 경악이 계속되었다.
근처 산에서는 바위들이 산산이 갈라져서
평야로 굴러떨어졌다.
무덤들이 갈라져 열리고 시체들이
무덤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삼라만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제사장들, 지도자들, 군사들, 사형 집행자들과
백성들은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십자가 밑에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사형을 지휘한 로마 장교는
백부장 아나니아스(Ananias)였다.
구주의 거룩한 인내와 그분의 입술에서
승리의 부르짖음과 운명하시는 광경이
이 이방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상처를 입고 십자가에 달려 찢어진
그분의 몸에서 그는 하나님 아들의 모습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는 확신에 빛난 얼굴로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에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었다.
그리스도를 표상(表象)하는 양을
잡기 위하여 끌고 왔다.
아름다운 예복을 입은 제사장은
칼을 높이 들고 서 있었다.
큰 흥미를 느끼고 백성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가까이 오시자
땅은 떨며 흔들렸다.
성전 안의 휘장이 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그곳에 세키나가 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보라! 이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어져,
지상 성소의 일부인 지성소는
더 거룩한 장소가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기 위하여 쳐진 것이었다.
이 육중한 10cm 두께인 두 폭의 휘장을
사람의 손으로 찢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한 쌍의 휘장은 세 규빗(135cm)
사이를 두고 처져 있었다.
성소 쪽의 것은 북쪽 끝이 열려있고
지성소 쪽의 것은 남쪽 끝이 열려있었다.
그 휘장은 속죄일(贖罪日)에 대제사장이
가장 엄숙한 의식을 집행하러 지성소에 들어갈 때
속인(俗人)들의 눈에 그 신성한 내부가
엿보이지 않게 하려고 처져 있는 것이다.
두 폭의 휘장이 주님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갈가리 찢어졌다.
십자가에 달려 수난당하신 거룩한 몸이
괴로움의 막바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칠 때 찢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