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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논설위원 | 오는 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입니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발효된 날입니다. 1910년 8월 29일이지요. 흔히들 경술국치(庚戌國恥)일이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일본과 조선을 강제로 합쳐 두 나라가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친일파들은
한일합병(韓日合倂)또눈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고 합니다. 두 나라가 평온하게 합쳐졌다는 어의(語義)가 강하지요. 놀랍게도 우리는 학창시절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한일합방이라고. 또 그렇게 사용하는 이가 아직도 대부분입니다. 특히 옛 초등학교를 다닌 세대들은 거의 모두 한일합병 또는
한일합방이라 배웠고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일강제병합이거나 한일강제병탄이라고 해야 합니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조선을
자기네 나라에다 강제로 합병시켰으니까요. 일본은 될수록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합병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당시의 대신들을 협박도하고, 이간질도
시켜가며 온갖 술수를 다 동원했지만, 그게 온전히 자기들 속내대로 이루어질 수야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나라가 힘이 없고, 못난 위정자들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을사조약 또는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라는 것입니다. 1905년 11월 17일을 말하는데 이
역시 일본이 우리를 다른 나라로부터 보호해주겠다는 명분으로 강제된 조약이 아닙니까? 그래서 친일파들이 사용해 온 용어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해야 합니다. 강제로 우리나라, 당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해 간 조약이니까요.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을사조약이니 한일합병이니 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간단한 호칭문제 하나를 두고도 정부마다 다르고,
교과서마다, 학자마다 다른 주장을 펴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거기다 일본이 보이는 작금의 행태를 보면 100년도 더 지난 옛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교과서왜곡문제, 총리를 비롯한 위정자들의 반성 없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사실상의 재무장을
위한 헌법개정시도 등 도무지 이웃하기 거북한 존재로 변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보이는 행태는 또 왜
이렇습니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게 마땅한 도리일 것임에도 너무도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에 함몰되어 있지 않습니까? 한일강제병합
당시에도 조정은 친러파와 친일파로 나눠져 국론분열이 극심했듯이 지금도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등 얼마나 많은 갈등과 분열로 시끌벅적합니까?
정말 하루도 영일(寧日)이 없습니다. 심지어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까지 나타나 국론이 분열되고 있으니 100년 전과 다를 바가 뭐가
있습니까? 최근에는 세월호침몰이라는 미증유의 대참사를 겪고, 이의 수습방안을 놓고도 나라전체가 온통 갑론을박입니다. 너무도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정치는 실종되고, 경제마저 휘청거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104번째의 국치일을 맞아 온 국민이 좀 냉철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개인도 그렇지만,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냉정한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도와줄 국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한 번 더 되새겨야겠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한일강제병합당시 만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먹어 삼키지 않았다면
러시아에게 강제합병 됐을 거라고 합니다. 정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곁에 아무런 힘도 없는 나라가 있다면, 어느 나라가 그냥 가만
놔두겠습니까? 서양 강대국들 치고 어느 한 나라라도 남의 나라 침탈하지 않은 나라가 있던가요? 힘이 있으면 옆에 있는 나라 강제병합 하는 것은
역사의 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국론분열로 날이 샌다면, 또 다시 한 세기 전에 겪었던
국치(國恥)라는 전철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글/ 김길수 논설위원 |